[부산=비즈니스포스트]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며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활용해 삶의 문제들을 실험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리빙랩'을 구축한 나라가 전세계에 얼마나 될까? 얼핏 생각하면 제법 있을 것 같지만 개인정보와 신뢰성 문제 등으로 리빙랩을 도입한 나라가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공산국가인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운영되는 대규모 리빙랩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부산 에코델타 스마트빌리지는 현재 주민들이 생활하면서 데이터를 쌓고, 또 그 데이터를 도시 운영에 활용하는 리빙랩이다.

하지만 큰 기대를 품고 간 스마트빌리지에서 처음으로 느낀 인상은 의외로 일반적 타운하우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만큼이나 일상 속으로 스마트시티 기술과 노하우가 깊이 스며들어 있는 탓이다.

비즈니스포스트는 7월11일 대한민국 스마트시티의 미래를 체험하기 위해 부산 에코델타시티 스마트빌리지를 방문했다.

스마트빌리지에는 이층집과 삼층집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들어서 있었다. 단지 곳곳에 설치된 LED 알림판 등 특이해 보이는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타운하우스 단지의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인식은 에코델타시티를 운영하는 한국수자원공사(수자원공사)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방문자에게 근미래적인 분위기를 주기 위한 조형적인 목적에서 설치한 것이 아닌가 기자가 의심했던 LED 알림판은 그 자체가 복합 센서를 탑재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스마트 폴이었기 때문이다.

부산 에코델타시티 스마트빌리지는 에코델타시티의 첫 번째 입주 단지이자 리빙랩이다. ‘생활 실험실’을 뜻하는 리빙랩은 공공과 민간 그리고 주민의 협력을 통해 도시를 혁신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스마트빌리지에는 모두 합쳐 56세대 200명의 주민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

세대 구성을 살펴보면 관리세대 6세대를 포함해 특별세대 12세대, 일반세대 36세대, 체험세대 2세대다. 이 가운데 일반세대는 표본으로서 가치를 갖추기 위해 인구 구성을 반영해 추첨으로 모집됐다.

스마트빌리지는 도시를 바꾸어갈 혁신 기술을 기꺼이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기에 국가 차원의 실증 테스트 베드로써의 가치가 큰 것으로 여겨진다.

◆도시 통합관리의 미래, 디지털 트윈으로 데이터 통합 관리에 시뮬레이션까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타운하우스로 보이는 스마트빌리지이지만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을 살펴보면 단지 전체가 스마트시티 혁신 기술 실증을 위한 하나의 연구 표본으로서 작동하고 있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민들의 생활 데이터가 통합관리의 대상으로서 상세히 기록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마트빌리지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플랫폼 센터를 방문하자 초대형 상황판에 다양한 데이터가 쌓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단순히 물 사용량을 원 단위로 집계하는 것이 아니라 온수를 정확히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세부 단위까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어디서도 구할 수 없을 시민의 생활 데이터가 쌓이고 있었다. 주차 공간 정보에서 실시간 출입 이력, 세대주 건강정보까지 그 범위도 넓었다.

이에 더해 유동 인구를 파악하고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 90대 이상의 지능형 CCTV가 설치돼 다양한 교통 관련 데이터도 실시간으로 집계됐다.

여기서 의문 하나가 들었다. 데이터의 축적이 사생활 침해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안내를 맡은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있는 표정으로 “데이터 축적은 철저히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신뢰에 기반해 이뤄지고 있다”며 “스마트빌리지에서 리빙랩 운영이 가능한 것은 대한민국의 사회적 합의 능력이 높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스마트빌리지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밝힌 다른 관계자 또한 “해외 방문객이 스마트빌리지에 오면 가장 놀라는 부분이 바로 사람이 살고 그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모인다는 부분이다"며 “다만 데이터가 자동으로 수집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민들로서는 사생활 침해라는 인식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스마트빌리지 플랫폼센터의 통합 관리시스템에는 데이터 수집 기능뿐만 아니라 실시간 모니터링 및 시뮬레이션 기능도 탑재됐다. 

수자원공사는 에코델타시티 전망대 꼭대기에 고성능 초소형 레이더를 설치해 주변 60km를 관측하고 있다. 
  레이더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는 현실을 가상세계에 똑같이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과 접목을 통해 주변 환경 변화를 시각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변환된다.

이에 더해 침수 예상 순서 및 지역 등을 시뮬레이션하고 알맞은 대응 계획을 마련하는 데에도 디지털 트윈 기술이 활용된다.

◆집안으로 스며든 혁신기술

플랫폼 센터에서 도시 통합관리의 미래를 잠시 체험한 뒤에는 스마트빌리지 체험을 위해 마련된 세대로 이동했다. 

체험 세대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스마트 기능이 기자를 맞이했다. 현관문에는 거울 기능을 겸하는 거대 디스플레이가 설치됐는데 이를 통해 가전의 상태를 확인할 수도 있고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외에도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로 물품을 자동 인식하는 기능을 갖춘 냉장고, 공기정화와 관상 기능을 동시에 충족하는 그린 월, 시나리오 기반 음성 명령어로 조작이 가능한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혁신 기술을 체험할 수 있다.

집 안에서 녹지를 즐길 수 있는 그린 월에 특히 감명을 받은 기자가 혹시 자동 관리 기능이 있는지를 물어보자, 원래는 가능하나 체험 세대에 설치된 그린 월에는 해당 기능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기존에 이미 건설이 끝난 공간이라 새로운 혁신 기술 등을 넣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라면서도 “체험 세대를 통해 가능한 다양한 기업의 혁신 기술을 소개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스마트빌리지에는 삼성전자에서 제공한 세탁기, 에어드레서, 인덕션, 오븐, TV 등 16종의 가전이 빌트인으로 제공된다. 연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뽑아내기 위해 표본 오차를 줄이기 위함이다.

이 가운데 스마트단지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혁신 기술은 스마트미러였다. 스마트미러는 입주민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고 몸 상태를 시각적으로 알려주는 데 더해 적당한 운동 방법을 알려주는 기능을 갖췄다. 

스마트미러에 입주민이 갑작스러운 위험 상황에 빠졌을 때 위험 신호를 웰니스센터에서 즉각적으로 알리는 기능이 갖춰지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그러나 착한의사 홈닥터 클로이 로봇을 통해 생활 반응이 너무 오랫동안 없으면 자동으로 알람을 보내주는 기능을 갖춰 이러한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하고 있었다.

아직 개선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상 깊었던 것은 스마트미러를 통해 수집된 입주민의 건강 데이터가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는 웰니스센터와 공유돼 단지 측에서 주민의 건강을 맞춤형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시티의 핵심은 통합관리와 맞춤형 관리라는 상이한 두 측면이 스마트 기술을 통해 조화롭게 기능하는 데 있다. 스마트빌리지에선 이 부분이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스마트시티가 만드는 미래에서 살고 있는 입주민에게 거주 감상을 물어봤을 때 돌아온 대답은 예상보다 담담했다.

입주민은 “처음에는 기술 하나 하나에 놀라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이제는 무뎌진 거 같다”며 “2년 반 동안 살다 보니 이러한 기술들이 일상처럼 당연스럽게 느껴져서 솔직히 체감이 나지 않을 정도다”고 옅은 웃음을 보였다.

◆빌딩형 정수장, 스마트빌리지에 정수기가 필요 없는 이유

친수형 스마트시티를 표방하는 부산 에코델타시티의 핵심 시설 가운데 하나는 스마트빌리지 인근의 스마트정수장이다.

기존 정수장은 배수지에서 물 생산 과정을 마친 뒤 이를 배관을 통해 각 가정으로 보내는 방식이기에 생산과 소비 사이에 간격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아무리 좋은 물을 생산하더라도 배관 상황에 따라 2차 오염이 발생하는 문제가 많았다.
  스마트정수장은 빌딩형 정수장으로 생산과 공급의 차이를 확연히 줄이기 위해 고안됐다. 

스마트빌리지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바로 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2차 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 이미 배수지에서 정수된 물을 대상으로 고도의 정수 과정을 진행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상수’ 생산이 가능하다는 특징도 지닌다.

수자원공사는 좋은 물을 생산하기 위해 총유기탄소(TOC)를 중심으로 한 수질 확인 절차도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TOC는 수돗물 내 유기물질을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되는 수치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수질 관리 측면에서 어디서나 질 좋은 수돗물을 생산하기 위해 중요한 핵심 지표가 TOC”라며 “다만 입법 과정 필요성이나 시스템 구축 등의 과정을 밟아야 하는 만큼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 수돗물의 4~5배의 가격을 내고 좋은 물을 생산하는 것이 필요한지와 생산된 좋은 물을 어디까지 사용해야 하는지를 놓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매우 높은 품질의 비싼 물을 생산했는데 변기 물 같은 걸로 쓰이게 된다면 누가 이를 받아들이겠느냐”고 웃었다.

수돗물 2차 오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빌딩형 정수장 등 혁신 기술들이 이미 있음에도 실적용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은 여전한 과제로 여겨진다.

최근 충북 오송 지역에서는 4개월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수도꼭지에서 흙탕물이 쏟아진 사례가 발생한 바 있다. 원인으로 상수도관에서 미세 토사가 발견된 것이 꼽히면서 책임 여부를 두고 청주시와 오송제2생명과학일반산업단지 시행사 사이에서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스마트빌리지는 실증단지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가 시책을 위한 미래를 준비하는 물 친화 연구개발센터로서 연구 데이터를 쌓아가며 새로운 사업 추진과 투자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스마트빌리지에서 다양한 혁신 기술의 실증 작업이 진행될수록 혁신 기술이 우리 삶에 다가오는 날도 가까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양한 혁신 기술 실증으로 경험과 데이터의 축적이 계속 이어진다면 스마트빌리지가 선보이고 있는 미래가 스마트시티의 현재가 되는 것도 기대해 볼 만하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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