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글로비스가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글로비스가 자동차 해상운송 운임 인상을 계기로 내년까지 수익성을 크게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는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회사 핵심 성장동력으로 점찍었는데, 수익성 확대를 발판 삼아 이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3일 현대글로비스는 2차전지소재 전문기업 에코프로와 업무협약 맺고 국내외 재활용 사업 가치사슬(밸류체인) 강화와 재활용 사업 운영 체계 최적화, 재활용 공정 자동화 구축 등 사업 전반에 걸쳐 협력키로 했다.
현대글로비스는 국내외 네트워크에 기반한 물류 역량과 전처리 역량을, 에코프로는 후처리 역량과 재활용 기술 역량 등을 활용키로 했다. 두 회사는 이번 협력을 통해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공급망 관리(SCM) 최적화 체계를 구축할 계획을 세웠다.
이 대표는 "이번 협약으로 재활용 사업 운영체계 최적화, 스마트한 재활용 공정 구축 등을 갖추고, 국내외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산업 발전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해상 운임이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준으로 하락 중이던 작년 1월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를 맡아 취임 첫 해 영업이익이 1조5540억 원으로 전년보다 13.6% 감소했다.
2022년 현대글로비스는 세계 완성차 물동량 증가와 우호적 환율에 힘입어 역대 최고치인 영업이익 1조7985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자동차운반선(PCTC) 부족 현상으로 인해 용선료(선박을 빌리는 비용)가 치솟으면서 중단기 용선 비중이 높은 현대글로비스는 경쟁사와 비교해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글로벌 자동차운반선(PCTC) 선사들은 사선(보유 선박)과 장기 용선(빌린 선박) 등 고정선복 비중이 더 높은 반면 현대글로비스는 작년 기준 보유 PCTC 81척 중 중단기 용선 비중이 54%로 절반을 넘어선다.
▲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대표(왼쪽)가 지난달 30일 에코프로 서울사무소 인근 별도 장소에서 열린 현대글로비스-에코프로 업무협약식에서 송호준 에코프로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
다만 증권업계에선 현대글로비스가 완성차 해상운송 운임 인상을 통해 내년까지 수익성을 크게 개선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해상운임은 최소 2~3년 장기계약을 맺는다. 올해 1분기 고객사와 완성차 운송 관련 비용증가분을 운임에 반영하는 협상을 진행했다.
김평모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현대글로비스의) PCTC 운임 인상 효과는 자동차 수출 성수기인 올 2분기에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말 현대자동차·기아와의 한국 공장 수출 계약 갱신 시기를 기점으로 글로비스가 내년엔 역대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새로 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말 계약 갱신에 따라 현대글로비스 해운업 영업이익은 지난해 2916억 원에서 2025년 7500억 원으로 뛸 것"이라며 "내년 현대글로비스 전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0% 증가한 1조9천억 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표는 해운업 수익성 개선을 발판 삼아 회사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지난 3월 열린 정기 주총에서 사업목적에 '폐전지 판매 및 재활용업'과 '비철금속제품의 제조 및 판매업'을 추가했다. 또 기존 '폐기물 수집 및 처리업'은 '폐기물 수집, 운반 처리 및 원료 재생업'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 대표는 주총에서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사업은 올해 가시적 사업화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며 "국내, 인도네시아, 미국, 유럽 등 지역별 특성에 맞는 셀 스크랩·폐차장 전처리 거점 및 설비 구축작업을 준비해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사업에서 회수부터 전처리까지 단일화된 시스템으로 사업 체제를 갖추는 전략을 펼친다.
▲ 현대글로비스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프로세스. <현대글로비스> |
전처리는 물리적으로 사용후 배터리에 남아 있는 전력을 방전시키고 해체한 뒤 불순물을 제거한 뒤 양극재 분리물인 블랙파우더까지 만드는 공정을 말한다. 후처리는 이렇게 확보한 원료에서 직접 유가 금속을 추출하는 공정이다.
회사는 전국에서 전기차 보급률이 가장 높은 제주도에서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올해 초엔 배터리 재활용 전문 기업 ‘이알’에 지분을 투자하고 이 업체가 보유한 전처리 기술과 설비 사용에 관한 권리를 확보했다.
이에 따라 현대글로비스는 제주도에 사용후 배터리 전처리 설비 도입할 계획이다. 설비 도입이 완료되면 제주도 안에서 발생하는 사용후 배터리를 경남 김해 등 육상의 재활용 거점으로 운송할 필요 없이 바로 재활용 공정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회사는 사용후 배터리에서 블랙파우더를 생산하는 재활용뿐 아니라 배터리 중 재사용이 가능한 물량으로 에너지저장장치(UBESS)를 만드는 '재사용' 사업도 추진한다. 제주도에선 UBESS를 제작해 지역내 태양광 또는 풍력 발전 장비, 전기차 충전기 등에 활용하는 방침을 정했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재활용 시장 선점을 위해 그룹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도시광산 밸류체인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용 후 배터리에서 희귀 광물을 다시 추출해 활용하는 사업은 성장 가능성이 높아 '도시광산'이라고도 불린다.
그 중 현대글로비스는 시작점인 사용 후 배터리 회수와 재활용까지 과정을 주도적으로 담당한다. 현재 지속적 투자 및 협업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사 발굴 등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작년 5월에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로부터 리튬 배터리 항공운송 인증 자격도 취득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를 계기로 앞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항공 물류 서비스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가 신사업 확대를 통해 현대글로비스 기업가치를 높이는 일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도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2022년 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매각했지만, 여전히 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12개 상장 계열사 가운데 정의선 회장의 소유 지분 가치가 가장 높은 곳이다.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데, 글로비스 주가가 높아지면 지분 매각, 지분 현물출자, 현대모비스와 합병 등 어떤 방식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진행되더라도 정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올해 3월 말 기준 정 회장의 글로비스 보유지분은 749만9991주(20%)로 이날 종가 18만8100원 기준 1조4107억4830만7100원에 이른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