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SK그룹의 사업 재편 전략을 총괄하고 있는 최재원 SK온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이 배터리 계열사 SK온의 지난 2021년 출범 이후 지속되는 영업적자와 재무부담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그룹이 반도체와 함께 배터리를 미래 핵심사업으로 키우키로 한 만큼, 배터리 사업에 계속 투자해 SK온을 세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야 하지만,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가 언제 반등할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적자가 계속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전기차 제조사와 약속한 합작 투자 등 투자비가 올해 8조 원 가까이 들어가야 하는데, 자금난에 예정된 투자 사업마저 힘겨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최 부회장은 그룹 전체 사업 재편에서도 SK온 살리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업 재편 자체에 난항을 겪고 있다.
▲ 최재원 SK온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이 출범 이후 지속되는 SK온 영업적자와 재무 불안정 속에 그룹 전체 사업 재편에도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3일 증권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하반기에는 상반기와 비교해 세계 배터리 시황이 다소 호전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가장 확실한 실적 개선 신호 지표인 전기차 수요 회복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리튬, 니켈 등 배터리 원료 금속 가격이 하락세를 멈추고 안정화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배터리 업체로선 희망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탄산리튬 가격은 올해 초 kg당 86.5위안에서 5월 말 기준 103.5위안까지 상승했다.
원료 가격이 제품 가격에 반영되는 데까지 시차가 있어, 상반기 금속 가격 상승분이 배터리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반기부터는 배터리 평균판매단가(ASP) 상승에 따라 실적이 다소 개선될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배터리 업체들의 출하량 눈높이는 여전히 낮은 상황인 것으로 파악된다. 전기차 시장이 일시적 수요 정체(캐즘) 국면을 지나갔다는 징후가 아직 포착되고 있지 않은 데다, 미국 고금리 지속과 11월 대선 결과에 따른 전기차 지원 불확실성 등으로 전기차와 배터리 판매가 하반기에도 계속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전환에 비우호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완성차업체들도 전동화에 더 소극적으로 나설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완성차 업체들로서는 대선 전에 위험을 감수하고 전동화에 속도를 낼 유인이 크지 않다. 게다가 미 연방준비제도(FRB)의 기준금리 결정이 계속 미뤄지면, 고금리에 전기차 구매 수요가 줄고 덩달아 배터리 판매도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같은 전기차와 배터리 불황 국면이 올 하반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몇 년을 더 갈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SK온은 업황 불확실성에 따른 기업 스트레스 강도가 경쟁사들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출범 이래 매번 적자를 낸 탓에 영업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데다 재무구조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올해 실적 목표를 손익분기점(BEP) 수준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증권업계에서는 SK온이 올해도 영업적자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들의 올해 SK온 영업손실 평균치(컨센서스)는 약 6천억 원이다.
SK온의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기준으로 188%로 LG에너지솔루션(85%), 삼성SDI(72%)와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차입금의존도는 53%로 역시 LG에너지솔루션(26%), 삼성SDI(18%)보다 높다.
SK온은 절대적 총차입금 규모도 19조 원으로 LG에너지솔루션(13조 원), 삼성SDI(6조 원)보다 많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막대한 설비투자(CAPEX) 부담도 안고 있다. 회사는 올해 약 7조5천억 원의 설비투자 금액을 책정해 놓고 있다. 회사가 보유한 현금·현금성자산은 1분기 말 기준으로 3조3216억 원으로 자체 현금만으로는 설비투자를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일정 부분 외부 자금조달을 해야 하는 형편이다.
SK그룹은 SK온을 미래 사업 중추 역할을 담당할 핵심 계열사로 보고 있고, SK온 자금 조달을 위해 그룹 전사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룹은 현재 영위하고 있는 모든 사업을 원점부터 재검토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방향을 설정했는데, 사업 재편의 무게가 점점 SK온 살리기로 쏠리면서 일부 계열사의 각종 재산 매각, 비중심 사업의 외부 매각 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배터리소재 계열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매각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SK온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최근 공시를 통해 표면적으론 "SK아이이테크놀로지 지분 일부 매각 등 배터리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관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 최재원 SK온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이 4월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훈동 SK온 관훈사옥에서 '정해진 미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Envisioned future, Together we move forward)'를 주제로 구성원 대상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 SK온 >
SK이노베이션 아래 SK인천석유화학과 SK엔무브 등의 지분 매각도 추진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SK엔무브는 SK온과 합병해 상장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배터리소재 계열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 역시 전기차 수요 정체에 따른 업황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는 점은 SK온과 마찬가지다. 현재 SK아이이테크놀로지 시가총액은 3조 원을 웃도는 수준인데 불확실한 업황을 감수하고 막대한 몸값을 지불할 인수자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게 재계 관측이다.
지분 매각 가능성이 거론되는 SK케미칼, SKC 등 정유·석유화학 계열사들은 이익을 많은 내는 현금창출원(캐시카우)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업종 특성상 성장성이 제한된다는 단점을 지니기 때문에 투자금융시장에서 매력적이기만 한 매물은 아니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투자금융업계 일각에서는 SK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 작업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SK그룹이 언제 반등할지 모르는 배터리 사업 때문에 전체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래 성장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