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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거린 수탁자책임위에 주총 시즌 힘 빠진 국민연금, 올해도 파격 없었다

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 2024-03-28 15: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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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올해 국내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국민연금의 파격적 의결권 행사는 없었다.

강해지는 주주환원 요구와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등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춘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위해서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 구성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삐걱거린 수탁자책임위에 주총 시즌 힘 빠진 국민연금, 올해도 파격 없었다
▲ 국민연금공단이 올해도 주총 시즌에 파격적 의결권 행사는 드물었다. 

2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코스닥 등에 상장된 12월 결산법인 2614곳 가운데 700곳이 정기 주총을 열었다.

3월 마지막 금요일인 29일 425곳의 정기 주총까지 마치면 올해 주총 시즌은 마무리된다.

다만 이번 주총 시즌이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국민연금은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번 주총 시즌에서 가장 많은 정기 주총이 열리는 날인 28일을 보면 한미사이언스, KT&G 등 세간의 이목을 끄는 주총이 열렸다.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서는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갈등을 벌이고 있는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 측과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임종훈 한미정밀화학 사장 측 사이 표 대결이 펼쳐진 끝에 임 사장 형제가 승리했다.

KT&G 주총에서는 방경만 대표이사 사장 선임을 놓고 반대 움직임이 있었으나 결국 선임 안건이 통과됐다.

한미사이언스, KT&G 등 주총은 모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결과에 크게 영향을 줄 주총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사전에 밝힌 의결권 행사 방향을 보면 한미사이언스에는 송 회장 모녀 측의 손을 들어주고 KT&G에는 방 사장 선임 건에 찬성했다. 주총 결과와 무관하게 국민연금은 기존 사측 제안에 찬성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국민연금은 한미사이언스, KT&G 외에도 올해 주총 시즌에는 경영권 분쟁,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 신규 회장 선임 등이 걸렸던 주요 주총에서 대부분 사측 제안 안건을 지지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환원 강화 요구가 나왔던 삼성물산을 비롯해 장인화 회장 선임이 문제 됐던 포스코홀딩스, 숙질 사이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금호석유화학 등 주요 주총에서 국민연금은 모두 찬성 의결권을 행사했다.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한 것 정도가 국민연금이 반대 태도를 보인 사례다. 다만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등과 관련해서는 이전부터 꾸준히 반대를 이어온 만큼 과거 태도를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대한항공의 지분 구조상 국민연금의 반대가 결과를 좌우할 상황도 아니었다.

정부가 올해 3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개정하는 등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음에도, 결과적으로 ‘사측 거수기’라는 국민연금을 향한 비판은 올해도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국민연금이 주총 의결권 행사에서 사측 제안을 대부분 따르는 소극적 태도를 이어가는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구성이 꼽힌다.

수책위는 국민연금 산하 전문위원회로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기 곤란하다고 판단한 사안, 자체적으로 판단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안 등에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방향을 결정한다. 

과거에는 사용자단체, 근로자단체, 지역가입자단체가 추천한 각 3명씩, 모두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당시에도 확실한 캐스팅 보트가 없어 과감한 의사결정이 어렵다는 지적은 있었다.

여기에 지난해 3월에는 정부가 수책위 구성을 놓고 단체별 추천을 각 2인씩으로 줄이고 전문가단체 추천 3인을 추가하기로 결정하면서 수책위의 독립성과 중립성 문제까지 불거졌다.

당시 참여연대, 한국노총, 민주노총을 포함해 306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정부의 결정에 “정부가 정한 전문가단체는 금융자본과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가 대부분”이라며 “가입자단체의 감시와 통제 역할은 약화하고 대신 자본과 금융계의 영향력이 강화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성주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57명은 지난해 3월8일 정부의 결정에 성명을 내고 “수책위 내에 사용자단체에 가까운 위원의 비중이 과반이 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수책위 위원 인선이 지난해 주총 시즌 이후 마무리되면서 올해 주총은 새 수책위의 색깔을 보여줄 첫 주총 시즌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올해 주총 시즌에도 수책위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주총 시즌 직전에 전문가단체 추천 위원인 강성진 고려대 교수가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 공천 신청을 이유로 위원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수책위로서는 결원을 둔 채로 올해 주총 시즌에 의사결정을 해야 했던 셈이다.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는 위원회의 특성상 짝수 위원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데 어려움도 클 수 있다.

강 전 위원이 최종적으로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으나 수책위의 중립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수책위 구성에 전문가단체 추천 몫을 추가하면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안건을 판단할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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