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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GM의 ‘회복 탄력성’과 메리 바라의 ‘적응형 리더십’

이재우 sinemakid222@gmail.com 2024-03-25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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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GM의 ‘회복 탄력성’과 메리 바라의 ‘적응형 리더십’
▲  GM을 10년 동안 이끌고 있는 메리 바라 CEO 겸 회장. 과거에 거대 기업에서 여성 CEO로 장수한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1999년 휴렛패커드 CEO에 취임했던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 △2006년부터 12년 동안 펩시코(PepsiCo)를 이끌었던 인드라 누이(Indra Nooyi), △2012년 IBM CEO에 올랐던 지니 로메티(Ginni Rommetty)가 대표적이다. 모두 여성 최초로 해당 기업의 수장에 오르면서 ‘유리천장’을 깼던 이들이다. <메리 바라 페이스북>
[비즈니스포스트] ‘조해리의 창(Johari Window)’이란 게 있다. 심리학자 조지프 루프트(Joseph Luft)와 해리 잉햄(Harry Ingham)이 고안한 모델로, 둘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명명됐다. 이 모델은 자기 인식(self-awareness), 타인과의 관계 등을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조해리의 창’에는 4개의 영역(open area, blind area, hidden area, unknown area)이 등장하는 데 주목할 것은 ‘눈먼 영역(blind area)’이다. ‘눈먼 영역’이란 조직의 바깥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정작 조직 속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조직의 단점을 내부에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자동차 메이커 제너럴모터스(이하 GM)가 딱 ‘눈먼 영역’에 가까운 조직이었다. 2014년 1월 메리 바라(Mary Barra·62)가 GM 최초의 여성 CEO로 취임하기 전까지는. 

필자는 이번 칼럼에선 ①‘조해리의 창’을 비롯해 ②‘유리 절벽(Glass Cliff)’ ③‘터널 시야(Tunnel Vision)’ 현상 ④‘회복 탄력성(Resilience)’ ⑤‘적응형 리더십(Adaptive Leadership)’이라는 개념을 빌려와 메리 바라(GM CEO 겸 회장)와 GM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GM의 관료주의를 꼬집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EDS(일렉트로닉 데이터 시스템즈)라는 IT 서비스 회사를 창업했으며 미국 대선주자로도 나섰던 억만장자 로스 페로를 기억할 것이다. 

페로는 1984년 26억 달러에 회사를 GM에 매각하면서 그 대가로 GM 이사회 멤버가 됐다. 그런 그는 GM의 느린 의사결정에 혀를 내둘렀다. 외부인이었던 페로의 눈에 비친 GM의 모습은 이랬다. 

“만약 GM 공장에서 뱀이 발견된다면 GM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뱀을 어떻게 할지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엔 뱀에 관한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어 몇 년 동안 그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당장 뱀부터 잡는 게 급선무인데 해결책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세월아 네월아’ 했던 것이다. 원래 EDS의 모토는 ‘Ready(준비), Fire(사격), Aim(조준)’이었다고 한다. 말인즉슨 먼저 총을 쏘고 나서 겨눌 정도로 의사결정이 빨랐다는 얘기다. 이는 로스 페로의 성공 법칙이기도 했다. 

반면 일부 평론가들은 GM의 모토는 ‘Ready(준비), Aim(조준), Aim(조준), Aim(조준)’이라고 비꼬았다. 조준만 하다가 날이 샜다는 것이다. 두 회사는 그렇게 완전히 달랐다. 결국 GM의 이런 관료주의는 치명적인 인명 사고를 불러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자. 

2001년 몇몇 GM 엔지니어들은 일부 소형차 점화 스위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GM은 별다른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CNN의 표현을 빌리면 회의가 열리고 보고서가 작성되고 위원회까지 구성됐지만 그런 모든 조치가 유야무야 되었다.(Meetings were held. Reports were written. Committees were created and forgotten.) 

그렇게 13년 동안 숨겨온 차량 결함의 위험성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GM 운전자 124명이 사망했다. 차량 리콜(3천만 대)은 2014년 메리 바라가 취임하고서야 이뤄졌다. 리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주위에선 메리 바라가 ‘유리 절벽(Glass Cliff)’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여성의 사회적 장벽을 상징하는 ‘유리 천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유리 절벽’은 영국 엑서터 대학의 심리학 교수 미셸 라이언(Michelle Ryan)과 알렉스 하슬람(Alex Haslam)이 만든 용어다.  

위기에 처한 기업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여성을 CEO로 선임한 후 절벽 끝에 놓인 회사를 살려내지 못하면 해고하고 다른 남성 CEO로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엔 여성들이 절벽 위에서 버둥거리며 넘어지는 광경을 보고 싶어 하는 남성 심리가 깔려있다. 

하지만 메리 바라는 ‘유리 절벽’에서 추락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리콜 상황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면서다. 그는 조직의 무엇이 잘못됐는지 근본적인 원인 조사에 나섰다. 

조사 과정에서 누락된 데이터가 포함된 보고서가 자주 제출됐고 부서들은 ‘고립된 사일로(isolated silos)’처럼 일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넓게는 관료주의 팽배와 책임 전가 문화, 그리고 ‘눈이 먼 무대책’(blind inaction)이 전사적으로 퍼져 있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덧붙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자동차 한 대가 깜깜한 터널 안으로 진입한다. 출구 쪽의 밝은 빛 이외에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터널 시야(Tunnel Vision)’라고 부른다.

조직심리학자이자 와튼스쿨 교수인 아담 그랜트(Adam Grant)는 그런 ‘터널 시야’가 조직에서 발생할 경우 나타나는 위험성을 이렇게 경고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GM의 ‘회복 탄력성’과 메리 바라의 ‘적응형 리더십’
▲ GM은 ‘마차 산업의 제왕’이던 윌리엄 듀란트가 1908년 설립했다. GM의 4대 핵심 브랜드는 쉐보레(Chevrolet), GMC(트럭, SUV), 캐딜락(Cadillac), 뷰익(Buick)이다. 이중 쉐보레는 GM의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다. 윌리엄 듀란트가 루이 쉐보레(Louis Chevrolet)와 손잡고 1911년 출범시킨 브랜드가 쉐보레다. 캐딜락은 디트로이트를 처음 발견한 프랑스 탐험가의 이름에서 따왔다. 뷰익은 윌리엄 듀란트가 GM을 설립하기 전인 1904년 인수한 브랜드다.
“조직의 시야를 좁게 하여 인식을 가둘뿐만 아니라(...) 대안으로 선택할 가능성(alternative possibilities)까지 보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랬다. 당시 GM은 스스로를 가둔 조직이었다. 메리 바라의 최종 조치는 어땠을까? 그는 관련 직원 15명을 해고하고 업무 관행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안전에 대한 문제를 인지했을 때 즉각 보고하도록 하는 ‘안전 핫라인(safety hotline)’을 개설하는 등 새로운 정책들을 도입했다. 

메리 바라의 혁신은 인수와 매각에서 두드러졌다. 2016년 10억 달러 거금을 들여 무인자동차 소프트웨어 업체 ‘크루즈(Cruise)’를 사들였다. 자율주행 기술을 선점하고 새로운 혁신 역량을 수혈하기 위해서다.(최근엔 ‘크루즈’의 자율주행 차량이 테스트 도중 인명사고를 내면서 사업이 삐걱거리고 있다)  

메리 바라는 2017년엔 80년 넘게 운영해 오던 유럽 브랜드 오펠(Opel)과 복스홀(Vauxhall)을 시트로엥과 푸조를 만드는 프랑스 회사 PSA그룹에 팔았다. 적자를 보던 브랜드를 넘기면서 대차대조표의 위험성을 해소한 것이다. 

메리 바라는 그렇게 낭떠러지로 떨어진 GM을 서서히 건져 올리면서 예전의 명성을 복구해 나갔다. 그런 그의 어록 중에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에 관한 것이 눈여겨 볼 만하다. 

“회복 탄력성은 좌절을 학습의 기회로 본다.”(Resilience is about seeing setbacks as learning opportunities.)

회복 탄력성의 정의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원래 심리학 용어였던 회복 탄력성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0년 초 무렵.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최초의 심리학 에디터였던 다이안 쿠투(Diane Coutu)가 ‘회복 탄력성이 작동하는 방식(How Resilience Works)’이라는 글을 쓰고 관련 책을 내면서다. 

다이안 쿠투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회복 탄력성의 수준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다고 했다. 메리 바라 역시 GM이 겪었던 과거의 좌절(파산, 대규모 리콜)에서 새로운 반등을 도모했다. 

그는 남성들이 지배하는 자동차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10년 동안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동차 산업 역사상 최악의 대규모 리콜 상황에서 회사를 재건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다. 

그런 메리 바라의 경영 스타일은 ‘적응형 리더십(Adaptive Leadership)’에 가깝다. ‘적응형 리더십’은 1990년대 초 하버드대 교수 마티 린스키(Marty Linsky)와 로널드 하이페츠(Ronald Heifetz)가 소개한 개념이다. 

아시다시피 성공했던 기업이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순간에 시장 지배력을 잃어버리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자주 언급되는 코닥(Kodak)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사진에 적응하는 속도가 더뎠고 파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특허를 매각해야 했다. 

이런 비슷한 운명을 피하고 싶은 조직들이 취하고 있는 리더십 스타일이 ‘적응형 리더십’이다. 여기엔 생존을 위해선 적응력이 필수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메리 바라의 경우 남성 중심의 전통적인 명령 및 통제에서 벗어나 여성 특유의 유연함으로 조직을 바꿔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사업 측면에서도 EV(전기차)와 자율주행 자동차로의 전환을 통해 시장 변화에 에자일(Agile)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이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GM의 ‘회복 탄력성’과 메리 바라의 ‘적응형 리더십’
▲ 메리 바라의 만트라(mantra) 중 하나는 ‘지금 혁신하라(Innovate now)’이다. 18세에 인턴으로 팬더 패널과 후드 검수 일을 하던 메리 바라는 2014년 1월 글로벌 공급망 관리 담당 부사장에서 전격 CEO로 발탁됐다. 대규모 리콜 상황에서 “GM을 구하고 자동차 산업을 일신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밝혔었다. <메리 바라 페이스북>  
메리 바라의 개인사는 어땠을까?. 그는 ‘뼛속부터 GM맨’이었다. 핀란드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GM 브랜드인 폰티악 공장에서 금형 제작자로 40년 동안 일했다. 디트로이트 외곽에서 태어난 메리 바라는 고교 졸업 후 GM의 사내학교인 ‘GM 인스티튜트(GMI: 훗날 사립대학 Kettering University로 바뀜)’를 다니며 엔지니어링 과정을 마쳤다. 

GM에서는 펜더 패널과 후드를 검수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이후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기회를 얻어 MBA 학위를 받았다. 그런 그는 한 번도 GM을 떠나 본 적이 없다. 놀라운 건 부녀가 GM에 몸을 담은 햇수가 무려 80년이 넘는다는 사실. 

메리 바라는 GM이 가장 힘든 시기에 여성 최초의 CEO에 올랐다. 2014년 취임 당시 GM의 투자자였던 워런 버핏은 이런 말로 그를 지원사격했다. 

“메리 바라는 21세기의 알프레드 슬로안이 되기를 바란다.”

알프레드 슬로안(Alfred Pritchard Sloan Jr.:1875~1966)이 누굴까? 슬로안을 설명하자면 좀 길지만 최대한 압축해 보자. 슬로안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3년 GM 사장에 올랐던 전설적인 경영자다. ‘마차 산업의 제왕’이던 윌리엄 듀란트가 GM을 설립한 것이 1908년. 그 이후 GM 제국을 건설한 이가 슬로안이다.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 중 하나인 MIT 슬로안 경영대학원은 재산 대부분을 기부한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슬로안은 MIT 전기공학과를 최연소,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많은 경영학자들은 ‘GM 중흥의 아버지’로 불리는 슬로안을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비즈니스 리더로 꼽는다. 슬로안을 ‘현대 기업 경영의 아버지’로도 부른다. 20년(1923~1946년 사장 재직) 넘게 GM을 이끌면서 구축한 기업 구조와 관리 회계 시스템 및 마케팅 기법을 후대의 많은 기업들이 모방했기 때문이다.(예를 하나 들자면 GM은 홍보만 전담하는 간부를 둔 최초의 기업이었다.) 

워런 버핏은 이렇게 바라지 않았을까? 메리 바라가 알프레드 슬로안 같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기를. 메리 바라가 GM 운전대를 잡은 지 10년. 우리는 쉐보레(Chevrolet) 보닛에 올라 GM을 호령하는 ‘또 다른 거인’을 보고 있다.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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