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일본 베끼기' 거리두는 증권가, “한국 기업 밸류업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역할 할 것”
김태영 기자 taeng@businesspost.co.kr2024-02-26 16: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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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두고 지나치게 일본의 정책을 따라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 증권업계가 차이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26일 한국거래소에선 금융당국, 유관기관, 증권업계가 참여한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가 개최됐다.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6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 축사를 전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인사말과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축사로 막을 연 뒤 정지헌 한국거래소 코스피본부 상무와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지난해 4월부터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실시한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소위 ‘저 PBR’ 상장사들에 PBR 제고를 강력하게 주문한 이후 닛케이 지수가 크게 상승했다.
일본은 이를 위해 △PBR 등 주요 지표 비교공시 △상장사에 PBR 개선 방안 마련 요구 등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도 큰 틀에서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만 일본의 정책을 지나치게 모방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증권업계는 정책 추진의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일본과 차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 한국만의 독자적인 밸류업 시행방안이 이날 공개됐다.
정지헌 상무는 “기업 스스로 주주가치 제고를 원활히 수립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예정이다”며 “또 거래소 내에 밸류업 전담조직을 상설기구로 신설해 특히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컨설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학계 등을 중심으로 밸류업 자문단을 구성하겠다고도 말했다. 또 기업 밸류업 공시를 위한 통합 홈페이지를 창설해 모든 상장사들의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한다고도 밝혔다. 일본의 경우 기업들의 주주환원 노력을 확인하기 위해선 개별 회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해야 한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이효섭 실장은 “일본의 경우 처벌이란 방법을 중심으로 PBR 개선을 강요하지만 한국의 경우 혜택 제공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점이 차이다”고 강조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PBR이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은 거래소에서 퇴출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밸류업 프로그램에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다. 반면 이날 세미나에서 공개된 한국 밸류업 프로그램은 PBR 개선을 달성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혜택을 담고 있다.
금융당국은 기업가치 제고 관련 우수기업에 △세제 지원 △표창수여 △공시 우수법인 등 선정시 가점 부여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다만 이처럼 한국의 밸류업은 일본과 달리 기업의 자율에 맡겨져 있으므로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효섭 실장은 세부안에서 발표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석탄 등 ESG 투자와 마찬가지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에 기업가치 제고 우수 기업을 더 중시하는 원칙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기관투자자의 러브콜을 받기 위해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효섭 실장은 “대부분 자율적 규정 가운데서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강행규정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보다 한국의 밸류업 정책의 범위가 더 포괄적이어서 기대효과가 더 강할 거란 의견도 나왔다.
김동양 NH투자증권 ESG리서치 총괄 연구원은 “일본의 경우 PBR 1배 미만인 기업만을 대상으로 해 주주가치 제고 참여율이 낮았다”며 “반면 한국 밸류업은 모든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므로 그 효과가 더 강할 것”이라 전망했다.
주주가치 우수기업을 대상으로 구성하는 밸류업 지수에 대해서도 “일본은 이미 밸류에이션이 높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수를 구성하고 있지만 한국의 밸류업 지수는 ‘기대 기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점이 긍정적이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일본의 경우 재무 지표들을 중심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일본 외 다양한 국가들처럼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 측면에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 차이점에 해당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편 이날 패널 토론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추가적으로 개선돼야 할 점도 제시됐다.
▲ 주제발표 이후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개선안들이 제시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겸 한국 증권학회 신임 회장은 “우리나라 시가총액은 유통주식 수가 아닌 발행주식 수로 계산된다”며 “시총을 유통주식 수로 계산하면 한국증시 저평가가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고 PBR 기업에 대한 상속증여세 감면, 민간 기관투자자에 대한 장기보유 인센티브 부여 등도 더해지면 좋을 것이다”고 말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장별, 업종별로 투자지표를 공표한다고 하는데 코스닥의 경우 대기업 하청이나 중소기업 등 모험자본 성격이 강한 기업들이 많다”며 “기업 규모에 따라 투자 지표를 공표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라 말했다.
또 “너무 재무지표에만 중점을 두면 현재 ESG 등 비재무적 전략을 추구하는 기업들에겐 혼선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박민우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관기관과 논의해 왔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일각의 물음에 대해 해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