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2024-02-19 13: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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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부와 국회가 국민연금 개혁에 나서고 있으나 여전히 이해관계자들 사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해외 주요국가들은 수급연령을 늦추고 수령액을 줄이면서 국민 노후 보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공적연금 개혁을 진행했다. 앞선 사례를 참고해 합리적 제도를 설계하고 여론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떠오른다.
▲ 2월16일 국회 본청에서 국회 연금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 제1차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연금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는 20일 국회 본청에서 제2차 공청회를 진행한다.
1차 공청회에서 수급개시연령 연장, 공적연금 자동조정장치 도입, 다층연금체계 강화 등의 사안이 다뤄졌는데 해외 선진국들의 공적연금 개혁 사례가 2차 공청회에서 또다시 화두로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한민국보다 먼저 공적연금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해외 주요국들은 공적연금 제도 개혁 과정에서 국민이 앞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되는 수명과 연금 수급이 시작되는 나이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기대여명과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연동한 대표적인 국가로는 네덜란드와 덴마크가 꼽힌다.
레이 델센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국제노동브리프에 기고한 ‘네덜란드의 점진적 은퇴’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2010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연금 협약을 마련하면서 2025년부터 기초노령연금의 수급 개시 연령을 평균 기대여명과 연동하기로 결정했다.
네덜란드는 2019년에 진행한 노사정 3자 연금 협약에서 기대여명이 추가로 1년 증가할 때마다 8개월씩 수급 개시 연령을 연장한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마련했다. 네덜란드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연장과 정년을 연동하는 방식으로 근로자들의 반발도 방지했다.
토르벤 안데르센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덴마크 연금제도의 강건함’(Robustness of the Danish Pension System)이라는 보고서에서 덴마크가 은퇴 후 예상 노후 연령을 14년6개월로 고정하고 기대여명에서 14년6개월을 뺀 나이를 수급 개시 연령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세대 형평성과 재정 건정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이 1차 공청회에서 국민연금 지속가능성을 위해 도입 필요성을 주장한 자동조정장치 또한 독일, 스웨덴, 핀란드, 일본 등에서 이미 공적연금 분야에 도입한 제도다.
김대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스웨덴, 독일 공적연금 제도의 급여 자동조정장치 비교’에 따르면 독일은 급여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인구통계학적 요소와 경제적 요소를 함께 반영한 지속가능성 계수를 사용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계수에는 가입자 및 실업자 대비 수급자의 비율로 산정되는 제도부양비(dependency ratio)가 포함되는데 이를 통해 연금 수급자 증가, 근로자 계층 감소, 노동시장 변화 등을 급여에 반영할 수 있게 했다.
스웨덴은 연금 부채와 연금 자산의 비율을 계산하는 안정화 비율이 포함된 자동안정장치를 마련했다. 연금 부채가 연금 자산을 초과하게 되면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자동으로 감소하도록 설정해 놓았다.
▲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가 1월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론화위원회 현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상균 공론화위원장, 주 위원장,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핀란드는 수급자의 기대수명에 비례해 연금 수령액을 낮추는 기대수명 계수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 의학 기술이 발전해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이에 따라 연금도 오래 받게 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핀란드는 이에 더해 1965년 이후 태어난 핀란드 사람은 기대수명이 1년 늘어날 때마다 연금 수령 시기를 자동으로 늦추는 제도도 도입했다.
일본은 2004년 가입자 수의 변화와 평균 수명의 증가를 연금액에 반영하는 ‘거시경제 슬라이드’ 제도를 공적연금 제도에 도입했다. 이에 따라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감소하게 되며 그에 맞춰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이 자동으로 삭감되는 구조가 갖춰졌다.
해외 국가처럼 다중연금체계를 탄탄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한민국은 외형적으로는 공적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다층연금체계를 갖췄지만 고갈을 앞둔 공적연금, 개인별로 차이가 큰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실질적으론 노후 빈곤을 방지할 만한 다층연금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 많다.
최형준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연금 수요자 중심의 다층연금체계의 이용 효율성’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주요국들은 다층연금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연금 정보 제공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연금과 관련한 제대로 된 정보 부족이 국민들이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원인이라고 보고 ‘통합연금예측’(Combined Pension Forecast·CPFs) 서비스를 구축했다.
통합연금예측 서비스는 직장연금 가입자에게 공적연금 보험료 납부 기록을 기반으로 연금 수급 연령이 되면 받을 수 있는 총 급여액(현재까지 획득한 연금)과 계속 가입 시 추가될 급여액을 보탠 예측연금 총액을 민간 연금 사업자를 통해 알려주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영국의 통합연금예측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포괄적 정보제공이다. 영국 국민은 매년 1번 정도 자신의 연금 통합정보를 받는데 이를 바탕으로 은퇴 후 계획을 짜거나 재조정할 수 있다.
스웨덴에는 2004년 도입된 ‘내 연금’(Min Pension)이라는 이름의 통합예측 시스템이 있다. ‘내 연금’은 공적연금, 기업연금 그리고 개인연금 정보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정보시스템으로 스웨덴 사람들은 이를 통해 공적연금과 민간 연금을 모두 포함한 연금 예상 총액을 실시간으로 무료로 확인할 수 있다.
스웨덴은 통합예측 시스템 외에도 강제가입 사적연금인 프리미엄 연금(Premium Pension·PP)을 1998년 도입해 다층연금체계를 자리 잡게 했다.
프리미엄연금은 의무적으로 소득의 2.5%를 민간 금융회사를 통해 적립・운용하도록 한 확정기여방식의 강제 사적 연금제도다. 가입자들은 사적 금융회사의 펀드 또는 정부가 운용하는 펀드에 가입해 적립금을 운용하게 된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