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희 기자 choongbiz@businesspost.co.kr2024-01-21 16: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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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일본의 소수정예 개발사가 만든 오픈월드 샌드박스 게임이 큰 흥행을 거두면서 게임업계 반응이 뜨겁다.
한국 게임업계는 기획자 중심의 기민한 개발시스템으로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일본 인디게임 성공 사례가 이런 움직임에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 포켓페어는 팔월드가 출시 24시간 만에 200만 장 판매됐다고 밝혔다. <포켓페어 트위터>
21일 게임업계 따르면 일본 '포켓페어'가 최근 출시한 오픈월드 샌드박스게임 '팔월드(PALWORLD)'가 200만 장 이상 판매됐다는 소식에 이용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규모가 큰 게임기업도 달성하기 힘든 판매량을 소규모 개발사가 이뤄냈기 때문이다.
팔월드를 개발한 포켓페어는 직원 수 40명 정도의 게임기업으로 팔월드 개발에 투입된 정규직 프로그래머는 2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켓페어는 2020년 전작 오픈월드 샌드박스 게임인 '크래프토피아'가 인기를 끌지 못하자 세계관과 게임 속 디테일을 대폭 강화해 팔월드를 개발해왔다. 오픈월드 샌드박스 게임은 게임 속 환경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탐험과 사냥, 건축 등을 해볼 수 있는 게임을 의미한다. 마인크래프트가 대표적 오픈월드 샌드박스 게임이다.
팔월드가 출시되기 전 닌텐도의 '포켓몬스터'와 비슷한 세계관으로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동안 포켓몬스터를 흉내낸 게임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에 이 게임도 그중 하나일 것이라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출시 직후 귀엽고 아기자기한 세계와 오픈월드 샌드박스 게임 장르의 재미가 잘 어우러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PC게임유통망 스팀에서 동시접속자 55만 명을 달성했으며 뒤 출시 8시간 만에 100만 장, 하루 만에 200만 장을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게임의 미술 스타일이나 많은 요소들이 포켓몬스터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향후 표절시비가 따를 가능성도 없지만은 않다.
▲ 총을 들고 있는 게임 속 몬스터 팔'(PAL)'과 팔에 올라탄 플레이어 캐릭터가 총을 들고 사냥하는 모습. <포켓페어>
팔월드를 만든 포켓페어는 특별한 강점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경영진부터 직원까지 게임에 진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예전부터 이른바 '엘든링 휴가', '몬스터헌터 휴가'로 한국에까지 소문이 자자한 기업이었다. 게임업계를 흔들 만한 명작게임이 출시되면 전 직원에게 한 달 동안 휴가를 제공해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2015년 설립된 이후 포켓페어가 만들어온 게임들을 보면 마피아게임, 플랫포머, 샌드박스 등 유행에 맞는 트렌디한 게임들이 주를 이룬다. 소수정예로 기민하게 움직여온 팀이 성공사례를 만든 것이다.
팔월드 성공사례가 한국 게임업계에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스퀘어에닉스 액션 RPG(역할수행게임) '포스포큰' 공식 이미지.
최근 일본이나 한국의 게임업계를 보면 굴지의 게임기업들이 수 년에 걸쳐 준비한 대작게임들이 넘어지고 아이디어로 무장한 참신한 게임들은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두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게임 이용자들의 취향이 세분화되고 또 관심을 가지는 게임장르도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례를 보면 2023년 1월 일본 굴지의 게임기업 스퀘어에닉스가 출시한 포스포큰은 4년 이상의 개발기간과 1천억 원 넘는 개발비가 투입됐지만 100만 장도 팔지 못했다. 결국 개발팀이 해체됐고 회사가 과거 성공작들을 리메이크하는 전략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대형 게임기업들 사이에서도 개발 시스템의 변화를 고민하는 곳들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한국에서는 넥슨이 대표적이다. 넥슨은 이미 2018년부터 개발자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외부 간섭없이 결과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보고 다수의 개발스튜디오 체제로 전환을 시작했다.
넥슨은 2022년에는 참신한 게임개발만을 염두에 둔 조직인 민트로켓을 출범시켰다. 민트로켓이 2023년 6월 출시한 데이브더다이버가 2024년 1월까지 300만 장 이상 팔리는 성과를 냈다. 데이브더다이버는 2023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스템에서 걸출한 성공작이 나오면서 이제 많은 게임기업들이 넥슨 식으로 가기 위한 준비과정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나의 대형 프로젝트에 기대기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게임을 자주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이다.
팔월드 사례는 최근 불경기 속 어려움을 겪는 게임업계에도 실마리를 줄 것으로 보인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게임업계는 경기를 타는 산업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렇지 않은 측면도 남아있다"며 "콘텐츠 산업이 대개 그렇듯 정말 재밌는 작품이 나오면 이용자들은 돈을 아끼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