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기자 swaggy@businesspost.co.kr2024-01-05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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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서 신년 덕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김진표 국회의장, 윤석열 대통령, 조희대 대법원장, 한덕수 국무총리, 최재해 감사원장.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총선을 앞두고 재외국민 선거의 저조한 투표율을 개선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 등록 독려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재외국민 선거의 편의성을 높이지 못하면 투표율 제고가 쉽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이전부터 재외선거 우편투표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국회에 관련 법도 나와 있으나 여전히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번 총선 역시 기존대로 현장 투표가 진행돼 재외국민 선거에서 극적인 투표율 상승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5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재외국민 투표를 위해 재외선거관리위원회에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발송할 수 있도록 우편투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모두 9건 발의돼 있다. 개정안 발의는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 서영교·설훈·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은주 정의당 의원 등 여야 의원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재외선거 우편투표와 관련한 법안 처리는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진전 없이 소위에 계속해서 계류하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이성만 의원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지난 대선 전에 국민의힘이 관련 법안에 전향적 태도를 보여 논의에 진척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대선 이후부터 논의를 전혀하고 있지 않다"며 회기 내 통과 전망을 어둡게 봤다.
정치권에서 우편투표를 도입하고자 하는 것은 심각하게 낮은 재외국민 투표율을 제고하려는 이유에서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자수는 4만858명으로 전체 재외선거권자(추정) 대비 1.9~3.2% 수준에 그쳤다.
재외선거 투표율이 낮은 이유로는 떨어지는 편의성이 꼽힌다. 재외국민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재외공관 등 지정된 장소를 직접 찾아 현장 투표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에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우편투표 도입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국회 청원이 제출되기도 했다.
‘재외국민유권자연대 우편투표 도입 촉구 청원추진위원회’는 2020년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미국 대선에서 6500만 명이 우편투표를 했는데 우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비행기, 기차, 자동차를 몇시간씩 타야 한다”며 “나라 밖 유권자들이 직접방문 투표와 우편투표를 병행하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우편투표 도입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우편투표가 재외국민의 선거 참여 제고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국민 참정권 보장 확대 차원에서도 도입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비밀투표원칙 훼손, 대리투표 등의 우려가 뒤따르고 우편시스템이 불안전한 국가에서는 투표지 분실, 배달지연 등 문제가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미 국회 입법조사처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20년 재외선거 문제점 개선을 위해 자체연구와 용역연구를 진행했다. 입법조사처는 재외국민 선거 개선방향으로 우편투표제 도입도 건의했다.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재외선거를 실시하고 있는 108개 국가 가운데 54개 국가에서 우편투표, 대리투표, 팩스투표, 전자투표 등 을 단일 또는 복수방식으로 허용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우편투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투표부정의 우려와 관련해 선거의 공정성과 주체적 권리행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고 바라봤다. 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실시하는 투표 및 신원인증, 본인확인서약서 작성과 같은 방안을 통해 제도적으로도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 새해 첫 날이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100일 앞둔 1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현관 화면에 '디데이' 표시가 되어 있다. <연합뉴스>
재외선거 우편투표의 비용 문제는 고려해야 하는 대목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재외선거인수가 2배로 증가한다는 가정 하에 향후 5년 동안 총 180억4900만 원, 연 평균 36억1천만 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분석했다. 2024년도 재외선거관리비는 98억9100만 원으로 편성됐는데 우편투표를 가정하면 약 135억100만 원의 예산이 필요하게 된다.
최근에는 재외선거에 우편투표 뿐 아니라 인터넷 투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입법조사처는 2023년 12월26일 '인터넷 투표제도 쟁점과 도입 방향'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재외선거가 공간의 제약이라는 직접투표의 한계를 잘 보여줬다며 전자투표를 안정적으로 도입한 에스토니아와 재외국민투표에 전자투표를 도입한 프랑스 사례를 소개했다.
프랑스가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전자투표를 시행한 결과 2012년 선거와 대비해 2022년 선거에서는 투표소 투표 이용자가 약 41%에서 약 23%로 줄어들었고 인터넷 투표 이용자는 약 57%에서 77%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법조사처는 "우리나라도 재외선거에 한정해 인터넷 투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재외선거에 도입될 경우 유권자 편의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선거 비용 절약 등 효율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재외선거는 2007년 헌법재판소가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는 당시 공직선거법을 두고 재외국민의 선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도입됐다.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함으로써 재외국민의 참정권 확대와 권익 향상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가지지만 재외 선거 도입 과정에서 선거의 공정성이나 선거관리의 안정성 등이 문제로 제기된 바 있다. 또 재외선거 실시 이후 낮은 투표율로 인해 재외선거 폐지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2022년 12월 기준 재외국민 숫자는 246만7969명인데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재외투표에 등록한 인원은 22만6162명이었다. 등록인원 대비 투표율도 71.6%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 선거보다 통상적으로 투표율이 저조하기 때문에 4월 치르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의 투표율 역시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재외국민 투표율은 23.8%로 제20대 대통령 선거보다 47.8%포인트 낮았다.
재외국민이 투표를 하기 위해선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영사관 방문, 순회영사 방문지에서도 가능하지만 우편접수, 인터넷 홈페이지, 전자우편 등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재외국민들이 등록을 해야만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모르는 대상자들이 많아 등록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LA총영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2일까지 총선 신고·신청자는 955명으로 20대 대선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9명이 줄었다. LA 지역의 재외국민 유권자는 약 18만 명으로 추정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2월10일까지 선거인 등록을 마치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재외선거관리위원회는 한인회관, 교회, 한인마켓 등 재외유권자 등록 순회접수에 나섰다. 또한 인천발 미국행 국적기 탑승객을 대상으로 재외선거 유권자 등록 안내문을 배포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