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보조금을 확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이 시행되면서 미국 상무부가 내년까지 1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보조금 지급 방안을 확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 지원이 자국 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지원 규모도 예상치를 밑돌 가능성이 떠오르며 삼성전자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이 받게 될 수혜를 예측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12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는 이르면 내년에 삼성전자와 인텔, TSMC 등 반도체기업을 두고 보조금 지원 대상을 선정해 발표한다는 계획을 두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내년 안에 10~12개 기업 목록을 공개하겠다”며 “일부 기업은 수천만 달러, 일부는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지원금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금은 현지에 반도체공장 및 연구개발 센터를 건설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수백억 달러를 들이는 막대한 투자 계획을 제시한 인텔과 마이크론,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받게 될 유력한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러몬도 장관은 특히 ‘첨단 공정’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기업들이 내년에 정부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이는 인텔과 삼성전자, TSMC를 포함한다.
인텔은 현재 미국에 1천억 달러(약 132조 원) 가까운 금액을 들여 다수의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신설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TSMC는 400억 달러(약 53조 원)를 투자한다.
▲ 미국 상무부가 내년까지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최대 13개의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연합뉴스> |
삼성전자의 투자 규모는 아직 170억 달러(약 22조 원) 수준에 그치는 만큼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우선순위가 밀리거나 경쟁사보다 적은 보조금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부가 첫 지원 대상을 상업용 반도체 제조사가 아닌 미국의 국방용 반도체기업으로 결정했다는 점도 삼성전자의 수혜 전망이 다소 불확실해진 이유로 꼽힌다.
반도체 지원법이 결국 자국 기업 지원을 핵심 목적으로 두고 있는 정책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이 꾸준히 나왔는데 이번 발표를 계기로 이러한 방향성이 더욱 뚜렷하게 확인된 셈이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전투기용 반도체 제조사인 BAE시스템스를 첫 반도체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발표하며 3500만 달러(약 461억 원)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들은 반도체 지원법이 국가 안보에 중요성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상업용 반도체기업이 아닌 BAE시스템스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조가 향후 다른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할 때도 반영된다면 결국 심사 기준은 미국 경제와 안보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고려해 결정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신설하는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으로 미국의 반도체 수급 안정화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AI)과 같은 주요 산업에서 이미 다수의 미국 기업을 고객사로 두거나 이를 직접 개발하고 생산하는 TSMC 및 인텔과 비교하면 아직 기여도는 다소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결국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에 정치적 요소가 중요하게 반영되면서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인텔은 미국 국방부와 직접 협력해 군사용 반도체를 개발하고 제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별도로 긴밀한 협업 관계를 맺고 있다.
▲ 인텔의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 생산공장. <인텔> |
미국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른 보조금 확보 경쟁에서 이미 삼성전자가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놓이며 힘겨운 싸움을 앞두고 있다는 분석도 고개를 든다.
정부 지원이 예상보다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두고 다소 늦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여러 반도체기업에 부정적 요소로 꼽힌다.
상무부는 올해 상반기만 해도 200개 이상의 기업이 정부 지원금 신청에 관심을 보였다며 정책 성과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발표대로라면 내년까지 보조금을 받게 될 기업은 최대 13곳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기업이 예상보다 늦게 지원을 받거나 실질적인 수혜를 기대하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커진 셈이다.
미국 정부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예산 부족 문제로 반도체 지원금에 쓰일 예산을 편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떠오르고 있다.
결국 390억 달러(약 51조 원)에 이르는 투자 지원 계획을 앞세워 여러 반도체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이끌어낸 반도체 지원법이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에 그치고 말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반도체 지원 정책은 결국 군사용 반도체 자급체제를 중심에 두고 추진된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는 세금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