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연인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사장이 친환경 발전 터빈 사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 분주하게 뛰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애초 가스터빈을 비롯한 친환경 발전 터빈 기기 분야 기술력을 축적하며 해외시장을 겨냥했다. 현재 사업화의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된 만큼 본격적으로 해외 영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3일 두산에너빌리티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에서 초대형 발전용 가스터빈의 첫 수주에 성공한 뒤 국내 공급실적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 진출에 본격적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가스터빈은 액화천연가스(LNG)발전의 핵심 기자재로 세계적 에너지 전환 흐름에 따라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발전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발전 방식인 만큼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완전한 친환경 방식은 아니다. 다만 석탄화력발전과 비교하면 친환경성이 높아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액화천연가스발전은 황산화물과 일반 먼지가 발생하지 않는다. 석탄화력발전과 비교해 질소산화물은 절반, 초미세먼지는 8분의 1만을 배출한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글로벌 액화천연가스발전은 2022년 1951GW에서 2032년 2402GW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가스터빈과 관련한 성능개선·로터정비·장기유지보수 등 서비스 분야 일감도 많은 만큼 가스터빈 공급 이외에 이익을 확대할 여지가 있다.
가스터빈 기술은 액화천연가스와 수소를 섞어 전기를 생산하는 수소혼소발전과 100% 수소발전으로 확장해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에너지 전환의 중간단계로 사업 잠재력도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연인 사장은 가스터빈의 첫 국내 수주에 성공한 데 이어 해외에서 두산에너빌리티의 가스터빈 기술력을 홍보하며 영업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정 사장은 10월24일 필리핀에서 필리핀 의회, 정부 측 인사들과 잠재 고객사 관계자들을 만나 가스터빈과 수소터빈을 소개했다. 필리핀 최대 송배전 기업 메랄코, 개발사업자(디벨로퍼) 아보이티즈 등도 이번에 정 사장이 만난 잠재 고객사 목록에 포함됐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필리핀이 한국과 동일한 전기 주파수를 사용하는 만큼 향후 가스터빈 수주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상용 전기 주파수는 60Hz(헤르츠)와 50Hz 둘로 나뉘는데 필리핀과 한국은 미국, 캐나다 등과 동일하게 60Hz 주파수를 사용한다.
정 사장은 “그동안 필리핀에서 다수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동일한 주파수를 사용하는 필리핀 가스터빈 시장 진출을 추진하겠다”며 “한국형 가스터빈의 경쟁력을 적극적으로 알려 수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가스터빈 매출은 단기적으로는 국내 수주에서 대부분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정 사장으로서는 장기적으로 해외에서 일감 적정한 규모의 일감을 따내야 새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글로벌 가스터빈시장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독일 지멘스, 일본 MHPS(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 이탈리아 안살도에네르기아 등 4개 업체가 과점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2022년 세계에서 5번째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270MW급) 개발에 성공하며 글로벌 가스터빈 시장 진출의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선발 주자들이 쌓아 놓은 진입장벽을 뛰어 넘는 일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런 점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올해 초대형 가스터빈 첫 수주에 성공한 것은 해외 시장 확대를 위해서도 의미 있는 진전으로 여겨진다.
두산에너빌리티는 6월 한국중부발전과 2800억 원 규모 보령신복합발전소 주기기 공급계약을 맺고 여기에 적용되는 한국형 표준 가스복합 모델에 380MW 규모 H급 초대형 가스터빈을 탑재하기로 했다.
초대형 가스터빈은 300MW 이상 용량을 말한다. 가스터빈은 용량에 따라 소형(20~99.9MW), 중형(100~214.9MW), 대형(215~299.9MW), 초대형(300MW 이상)으로 구분한다.
H급은 1500℃ 이상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초내열 합금 소재로 제작한 고효율 터빈이다.
가스터빈 기술력 확보에 이어 국내에서 공급실적을 쌓으며 해외 시장 진출의 기반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정연인 사장도 한국중부발전과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회사의 역량을 총 동원해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이를 통해 국내 가스터빈 산업 생태계 활성화는 물론 해외 시장 진출의 초석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해외 시장 개척뿐 아니라 가스터빈의 기술력 고도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가스터빈 기술을 적용해 친환경 연료인 수소발전에 필요한 수소터빈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12개 산업계·학계·연구단체와 함께 H급 대형 수소터빈 기술을 개발하는 국책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고효율의 H급 수소터빈을 사용하면 기존 수소터빈(E급) 대비 한해 약 700억 원의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 또한 가스터빈에 수소를 50% 혼합해 연소하면 기존 액화천연가스 전소 대비 최대 21.4% 탄소배출을 저감할 수 있다.
정 사장은 최근 필리핀 출장에서도 잠재 고객사들에게 수소터빈 관련 기술을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가스터빈 사업을 진전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다른 친환경 발전 터빈 사업에서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글로벌 선발주자가 원천기술과 시장 신뢰도를 바탕으로 과점체제를 형성한 시장에 진출하려면 먼저 기술력을 확보한 뒤 국내 실증과 사업화를 통해 사업 역량을 입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스터빈 외에도 풍력터빈에서도 국내에서 먼저 사업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8월 한국중부발전과 차세대 해상풍력 공동개발 및 해상풍력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20MW(메가와트)급 이상 차세대 해상풍력 발전에 대한 연구개발과 실증, 사업화 등 해상풍력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협력하기로 했다.
정 사장은 이 자리에서도 “글로벌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갖춰 해외수출 성장기반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해외 진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현재 두산에너빌리티의 친환경 발전 관련 사업구조는 어느 정도 완비된 상태라 볼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스터빈, 차세대원전(소형모듈원자로), 신재생에너지(풍력터빈과 에너지저장장치 등), 수소를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해 나가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는 해외 수주 대부분이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 분야에서 나오는 만큼 장기적으로 가스와 풍력터빈을 비롯한 친환경 발전 분야의 해외사업 비중을 늘리는 게 두산에너빌리티의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정연인 사장은 친환경 발전 터빈을 비롯한 친환경 분야 사업역량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정 사장은 10월 7일 열린 '2023 인베스트 코리아 써밋' 행사에서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에너지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지난해 두산에너빌리티로 사명을 변경했다"며 "무탄소 에너지에 필요한 모든 기술과 역량을 보유한 만큼 앞으로 이를 통해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