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신발 제조업체 씨루가 TSMC 실리콘 폐기물을 재활용해 신발 소재로 사용한다. 페트병 등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는 씨루의 운동화 제품 이미지. <씨루>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신발 제조 및 판매업체 씨루가 TSMC에서 배출하는 반도체 실리콘 폐기물을 활용해 슬리퍼, 운동화 등을 생산한다.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여 환경 보호에 기여하는 동시에 대만의 상징적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는 TSMC의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27일 대만 CNA에 따르면 씨루는 세계 최초로 TSMC에서 발생한 실리콘 폐기물을 재활용해 신발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출시된 슬리퍼에 처음으로 재활용 실리콘이 사용됐고 올해는 운동화와 지압신발 등 더 다양한 제품에 반도체 실리콘 폐기물을 원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쑤지아밍 씨루 CEO는 CNA와 인터뷰에서 재활용 소재업체의 제안을 받아 처음으로 TSMC의 반도체 폐기물 소재 사용을 검토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TSMC는 대만을 지키는 ‘성스러운 산’으로 불리고 있다”며 “TSMC의 폐기물 소재를 재활용하면 씨루의 제품도 ‘성스러운 신발’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TSMC가 대만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대표 기업인 만큼 여기서 발생하는 실리콘 폐기물을 재활용해 사용하면 홍보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의미다.
쑤지아밍 CEO는 반도체 폐기물로 슬리퍼 한 켤레를 생산할 때마다 원유 사용량을 0.5리터, 탄소 배출량을 1kg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는 일이 환경 보호에 기여하는 효과도 분명하다는 의미다.
그는 재활용 실리콘을 쓰는 첫 슬리퍼 제품을 내놓기까지 수 년의 연구개발 기간이 필요했다며 시장에서 성장 잠재력을 두고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TSMC 실리콘 폐기물을 소재로 한 슬리퍼는 대만에서 1880~2080대만달러(약 7만8천~8만6천 원)에 판매된다.
쑤지아밍 CEO는 CNA를 통해 “씨루의 제품은 저렴하지 않다”며 “소비자들이 우리의 신발을 구매해 순환경제에 참여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TSMC는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자연히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양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폐기물 가운데 실리콘 소재를 재활용하는 비중이 늘어난다면 반도체 산업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환경 측면의 악영향 문제를 어느 정도 만회할 길이 열릴 수 있다.
씨루는 2012년 설립된 신발업체로 사업 초기부터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신발 생산과 이를 통한 지속가능성 확보를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었다.
반도체 실리콘 폐기물을 활용하기 전 출시된 신발에는 대부분 재활용 페트병 소재나 커피 찌꺼기 등이 사용됐다. 부츠 한 켤레를 만드는 데는 15개 불량의 페트병이 사용된다.
씨루는 이러한 차별점을 인정받아 워너브라더스와 협업해 배트맨 및 원더우먼 캐릭터가 그려진 재활용 소재 신발을 선보이고 PGA(미국 남자 프로골프) 투어 공식 파트너사에 선정되는 등 성과를 냈다.
재활용 소재를 신발 생산에 활용할 뿐만 아니라 폐기된 신발을 연료로 발전기를 가동해 이를 신발 제조에 활용하는 기술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현재 씨루 신발은 미국과 일본 등 세계 40여 개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과거 한 유통업체를 통해 공식 수입된 적이 있다.
쑤지아밍 CEO는 씨루를 창업하기 전 10년 넘게 씨티뱅크에서 근무하며 임원까지 승진했다.
그는 환경 보호 효과 상업적 성과를 모두 거둘 수 있는 ‘지속가능한 혁신’에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해 씨루를 창업하고 창업하고 재활용 소재 신발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씨루가 판매 부진과 재고 증가로 막대한 손실을 볼 당시 쑤지아밍 CEO는 사업 중단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결국 친환경 중심의 기술 혁신을 지속해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미국 경영전문지 CIO뷰스는 2021년 쑤지아밍 CEO를 ‘세계 10대 혁신적 사업가’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하며 “신발업체에서 끊임없는 발전과 차별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평가를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