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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아베노믹스와 닮은꼴 정책이다.
최 부총리가 아베노믹스와 같은 길을 가려는 건 우리경제가 일본이 겪었던 저성장기조에 접어들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우려 있다”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정책은 경제심리를 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 부총리는 우리경제가 무기력증에 빠졌다며 우리경제 상황이 침체에 빠진 일본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최 부총리는 26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전경련 최고경영자 하계포럼'에 참석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자칫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우려가 있다”며 "이미 올해 저성장, 저물가, 경상수지 흑자 과다 등 잃어버린 20년의 전형적 현상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가 우리경제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빗대어 말한 것은 이 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 부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24일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지 못하면 우리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16일 취임식 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경제 사정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패턴이 유사하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저성장과 저물가,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때 나타난 전형적 현상”이라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당시 청문회에서 “과거의 틀에 얽매인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정책으로 대응하면 현 경제상황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지난 18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한국경제 난제를 생각해 새 경제팀은 아마 지도에 없는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전과 다른 파격적 정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 부총리는 지난 24일 대규모 양적완화를 골조로 하는 아베노믹스와 유사한 정책을 내놓았다. 최 부총리는 올 하반기에만 41조 원을 풀고 내년 예산도 확장적으로 편성할 것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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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 경제심리 살리기도 아베노믹스와 닮은꼴
최 부총리가 지적한대로 우리경제의 상황은 일본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2차대전 이후 고성장을 지속하던 일본경제는 1989년 닛케이지수가 38957를 기록할 정도로 호황을 구가했다. 당시 닛케이지수는 현재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나 1990년부터 주가와 부동산이 폭락하기 시작했고 1995년 터진 고베 대지진은 경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후 20년 동안 주가는 절반 이하, 최저 6분의 1수준까지 떨어졌다. 부동산 가격도 평균 3분의 1에서 10분의 1까지 하락했다. 일본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0%대에서 맴돌았고 최고 2% 대를 넘지 못했다. 실질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도 크게 둔화되고 있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를 보면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6%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0.6%)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직전분기대비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분기(1%)와 3분기(1.1%)에 1%대를 회복했다가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연속 0.9%로 다시 둔화됐다.
전년동기 대비로 볼 때도 2분기 성장률은 3.6%로 작년 3분기 이후 최저치다. 전년동기 대비 성장률은 지난해 3분기 3.4%, 4분기 3.7%, 올 1분기 3.9%를 기록했다.
정영택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로 민간소비가 부진했다“며 " 구조조정과 감원에 따른 고용시장 불안이 복합적으로 작용되면서 민간 소비의 부진을 불렀다”고 원인을 꼽았다. 문제는 이런 성장률 둔화가 일시적인지 혹은 추세적인지 누구도 쉽게 장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 부총리가 추진하는 정책의 목표는 경제심리 살리기라는 점에서 아베노믹스와 유사하다.
아베노믹스는 일관되게 성장지향의 메시지를 강조하면서 얼어붙은 일본의 경제심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아베노믹스를 두고 “경제학이 아니라 심리학”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최 부총리도 마찬가지다. 최 부총리는 24일 정책발표 후 “경제는 분위기가 중요한데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잃고 위축돼 있다”며 “경제주체들이 미래경제전망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이번 정책은 경제주체들의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덧붙였다.
◆ “화살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경환노믹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총리직에서 물러나기 전 13일 기자들에게 “아베노믹스는 계속 화살을 쏴야지만 유지된다”며 “화살을 쏠 때 괜찮겠지만 화살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아베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세 개의 화살”로 표현한 것을 빗대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현 전 부총리는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다 집행하고 난 뒤에도 경제심리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심각한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베노믹스의 경우 정부주도의 정책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경기부양을 밀어붙인다. 그러나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의 소비심리가 개선되지 않으면 풀어놓은 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이 바닥나 성장동력을 잃으면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현 전 부총리의 말은 최 부총리의 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 부총리가 아베노믹스와 비슷한 정책을 밝힌 데 대한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무리한 경제확장 정책을 쓰지 말라는 충고이기도 하다.
최 부총리도 이런 점은 알고 있는 듯하다. 최 부총리는 인사청문회 때 1년 전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며 “1년 전 경기는 바닥이었다”며 “경기회복을 위해 주사를 놓아야 하지만 지금은 전과 같은 강도의 주사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올해 추경예산은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추경을 편성한 작년 정도의 바닥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최 부총리가 무작정 경기부양책만 고집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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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 “단기 대응은 OK, 근본 체질개선은 미지수”
최경환노믹스가 단기정책 위주로만 흘러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근본적으로 경제의 기본구조를 바꾸고 소비심리를 회복하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김영신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근본적 체질 개선없이 효과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당의 경제통인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도 인사청문회에서 “단기대응하면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이 올 수도 있다”며 가시적 성과를 위해 단기처방에만 집중하는 것을 경계했다.
아베노믹스가 처한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다른 데 최경환노믹스가 지나친 극약처방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미국은 이미 양적완화를 마치고 출구전략을 타진하고 있는 중이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은 내년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최 부총리가 양적완화를 예고하기 전까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장도 향후 금리변동을 인상 쪽으로 암시했다가 최 부총리 등장 후 금리인하로 급선회했다.
또 일본은 20년째 저성장기조를 이어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이 3% 이하로 떨어진지 고작 2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고 보기 이르지 않느냐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최경환노믹스가 거시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 부총리의 강력한 경기부양 의지가 시장에 긍정적 시그널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곽영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우리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겠지만 종합적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최경환노믹스, 경제기획원의 부활
최경환 부총리가 내놓은 경제정책이 아베노믹스와 유사한 점이 많지만 최경환노믹스와 아베노믹스가 서로 다른 부분도 적지 않다.
당장 최 부총리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예고했지만 아베노믹스는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는 등 세제 개편에서 반대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다소 파격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부양을 위해 양적완화를 실시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그동안 미국이나 유럽이 0%대 금리를 유지한 데 비해 다소 높은 금리를 고수해 왔다.
최경환 부총리는 옛 경제기획원 출신이다. 경제기획원은 우리나라가 고도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던 핵심기관이다. 경제기획원은 적극적인 정부주도 경제성장 정책을 펴왔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 성장을 주도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최 부총리로서 당연한 수순이라는 해석이 많다.
정부주도 경제정책은 경제기획원이 재무부에 통합된 뒤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최 부총리 등장 이후 강력한 정부주도 경제정책으로 돌아갔고 이런 점들이 파격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 아베노믹스와 닮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의 강력한 정부주도 경제정책은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초 내놓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닿아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되면 3년 후 우리경제의 모습은 잠재성장률이 4% 수준으로 높아지고,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떠올리게 한다.
최 부총리가 위스콘신대학교 경제학 박사 출신인 것도 한몫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위스콘신대학교 경제학과는 경제에서 법과 제도의 역할을 강조한 제도주의 학자 존 커먼스 등 위스콘신 학파를 배출한 곳이다.
이들은 20세기 초반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정책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뉴딜정책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것으로 정부가 시장에 깊이 개입해 자금을 공급하는 정책이다. 최 부총리도 재학시절 위스콘신 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