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최근 몇 달 사이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HQ체제에 대한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4대 HQ체제의 한 축이었던 호텔군HQ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호텔군HQ를 이끌던 이완신 전 호텔군HQ 총괄대표 겸 호텔롯데 대표이사 사장이 7월 건강상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난 뒤부터 HQ체제에 대한 회의론이 힘을 얻고 있다.
호텔군HQ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조직이다. 하지만 경영전략과 마케팅 조직 인원들이 롯데호텔과 롯데면세점, 롯데월드 등 각 사업부로 복귀해 현재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재무 등 일부 기능만 남아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해체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 신동빈 회장이 9월22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기자단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호텔군HQ 조직이 대폭 축소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열사별 경영이 무리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HQ체제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일부 임직원들은 본다. 사실상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조직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다른 사업군HQ에서도 이런 의견들은 적지 않게 나온다.
유통군HQ, 화학군HQ, 식품군HQ가 존재하지만 이들이 만약 해체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각 계열사별 미래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이들이 무용론을 지지하는 근거다.
HQ체제가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시각도 있다. 각 사업군에 소속된 계열사들의 시너지를 도모하겠다는 것이 롯데그룹의 의도였으나 외부에 내놓을 만한 구체적 성과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속사정을 들어보면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유통군HQ의 경우 각 계열사의 혜택을 한 데 묶은 통합 마케팅 행사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 식품군HQ도 지난해 롯데제과와 롯데푸드를 합병해 롯데웰푸드를 출범한 뒤 경영 효율화 작업을 추진해 실적 개선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HQ체제를 운영하기 위한 인력과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HQ체제가 꼭 필수적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임직원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된다.
의사결정 구조가 더뎌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계열사에서 무엇인가를 추진하려고 해도 HQ의 검토를 얻어야 하는 문제들이 있어 새 사업에 속도를 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HQ의 검토를 거쳤다 할지라도 롯데그룹의 모든 방향성을 결정하는 롯데지주의 결정도 받아야 한다.
이른바 ‘옥상옥 구조’의 문제인데 이는 HQ체제의 전신이었던 BU체제 때부터 지속적으로 거론됐다.
▲ 롯데그룹 내부에서도 HQ(헤드쿼터)체제에 대한 긍정론과 부정론이 대립한다. 사진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모습. <롯데그룹>
부정적 의견만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계열사만 97개인 롯데그룹의 특성상 HQ체제가 사업을 추진하기에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보는 임직원들도 많다.
롯데그룹의 한 직원은 “애초 BU체제를 도입했던 이유를 살펴보면 HQ체제에 대한 무용론이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아니다”며 “업태가 같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계열사들끼리 힘을 합쳐보자는 취지를 살린다면 긍정적인 면들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BU체제를 도입하기 전 그룹의 컨트롤타워로 정책본부를 운영하고 있었다. 정책본부는 각 계열사의 중복사업을 정리하고 그룹의 미래를 그리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각 계열사의 모든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각 회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다보니 각 계열사 임직원들의 불만도 상당했다.
이런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제시됐던 제도가 바로 BU체제였다. 유통과 화학, 식품, 호텔&서비스 등으로 비슷한 사업군을 묶어놓으면 각 사업군 수장이 계열사 대표들의 말을 충분히 들어보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굳이 협력하지 않으려 했던 계열사끼리 소통이 원활해졌다는 점도 HQ체제의 성과로 꼽힌다.
롯데그룹의 다른 직원은 “과거에는 다른 사업부에서 협조 요청이 오면 ‘그걸 왜 우리 회사가 해야하지’라는 조직 이기주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며 “하지만 BU체제, HQ체제로 묶이면서부터는 ‘하나의 팀’이라는 조직문화가 생겨 계열사 시너지를 내는데 상당한 이득을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