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세대교체를 강조한 미래에셋그룹의 최근 인사를 놓고 박 회장이 글로벌사업 확대를 위한 새로운 진용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그룹의 최근 인사는 세대교체와 함께 해외법인 근무 경험이 풍부한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해외사업 전문가들을 대표급으로 중용했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미래에셋그룹은 그동안 해외사업 확대를 위해 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시장을 개척하며 앞을 끌고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이 사업을 고도화하며 뒤를 미는 ‘선 운용사, 후 증권사 진출’ 전략을 펼쳐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회장이 이번 인사를 통해 이런 전략에 더욱 힘을 실을 수 있는 대표급 인적 구성을 마쳤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 새 대표에 오른 김미섭 부회장은 미래에셋그룹이 2003년 홍콩법인을 열며 해외에 처음 진출할 때부터 박 회장과 함께 한 인물로 그룹 내 해외사업 전문가로 손꼽힌다.
김미섭 부회장은 1998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입사해 홍콩법인 설립을 이끌었고 이후 싱가포르법인, 브라질법인 대표, 글로벌경영부문 대표, 각자대표 등을 역임한 뒤 2022년 미래에셋증권으로 옮겨 글로벌사업을 총괄해왔다.
김미섭 부회장은 4월 금융투자협회와 자본시장연구원 주최로 열린 ‘금융투자업의 글로벌 영역 확대’ 세미나에서 직접 ‘선 운용사, 후 증권사 진출’을 미래에셋그룹 해외진출의 핵심 전략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에 새로 내정된 이준용 부회장과 김영환 사장 역시 풍부한 해외사업 경험이 강점으로 꼽힌다.
이준용 부회장은 과거 미래에셋자산운용 영국법인 대표(CEO), 미국법인 최고투자책임자(CIO), 브라질법인 CIO 등을 역임했고 김영환 사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 영국, 브라질, 미국법인 등을 거쳤다.
이준용 부회장과 김영환 사장 모두 이번 인사에서 각각 부회장과 사장으로 승진한 뒤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그룹 내에서 해외사업 확대의 선봉장으로 평가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03년 첫 해외진출 이후 20년이 지난 현재 미국과 베트남, 브라질, 아랍에미리트, 영국, 인도, 일본, 중국, 캐나다, 콜롬비아, 호주, 홍콩, 룩셈부르크 등 14개 지역에 진출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8월 말 기준 국내외 운용자산(AUM) 293조 원 가운데 약 40%에 이르는 121조 원을 해외에서 운용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해외사업의 중심에는 ETF(상장지수펀드)가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11년 캐나다 ETF 운용사 ‘Horizons ETFs’ 를 시작으로 2018년 미국 ‘Global X’, 2022년 호주 ‘ETF Securities’ 등 적극적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 ETF사업을 키웠다.
결국 ETF와 펀드 등 자산운용을 기반으로 한 사업을 통해 글로벌시장을 확장한 뒤 증권사 진출을 가속화하는 전략인 셈인데 이런 흐름은 인도 진출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2008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을 통해 1호 펀드를 출시하며 인도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이후 2019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고 지금은 지주사와 자산운용사를 비롯해 증권, 부동산대출과 기업대출을 하는 NBFC(Non-Banking Financial Company),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 미래에셋재단법인 등 모두 7개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금융회사로 성장했다.
인도시장 확대의 공을 인정받아 이번 인사에서 스와럽 모한티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 대표가 부회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스와럽 모한티 부회장은 미래에셋그룹 첫 외국인 부회장이다.
▲ 박현주 회장(가운데)이 1월13일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인도 진출 15주년 기념행사에서 인도법인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 회장 왼쪽 뒤편이 최근 인사에서 승진한 스와럽 모한티 부회장(왼쪽 네번째)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해외사업을 향한 긴장감도 이번 인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시대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시장 전반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켜 주식 같은 모험자산보다는 안전자산을 선호하게 만들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이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전쟁은 거시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국내 금융사 가운데 해외 부동산사업에 활발한 곳으로 꼽히는데 해외 부동산시장이 거시경제 불확실성에 따라 전반적으로 부진한 점도 부담이다.
미래에셋증권은 3분기 해외 상업용 부동산 익스포저(위험노출액) 평가손실 등의 반영으로 부진한 실적을 이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상반기 연결기준 순이익 3791억 원을 올렸다. 2022년 상반기보다 20% 줄었다.
박 회장은 2015년 해외사업에 강점을 지닌 대우증권을 인수하며 목표에 한 발 다가간 뒤 2018년부터는 미래에셋증권 회장에서 내려와 글로벌 경영전략고문(GISO)을 맡으며 꿈을 현실로 바꾸는 데 더욱 집중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의 해외사업은 지속 성장 중이나 여전히 글로벌 주요 금융사와 비교하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의 자기자본은 2021년 말 기준 JP모건 294조 원, 골드만삭스 110조 원, 모건스탠리 107조 원에 이른다.
반면 미래에셋증권 자기자본 규모는 2022년 말 기준 9조 원대 머무르고 있다. 그룹의 금융계열사 자기자본을 다 합쳐도 17조 원에 그친다.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체급 차이가 큰 셈인데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아시아 금융사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1년 말 기준 중국 중신증권과 해통증권, 화타이증권의 자본 규모는 각각 40조 원, 33조2천억 원, 28조4천억 원 수준이다. 자본시장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일본의 노무라증권과 다이와증권 자기자본 규모 역시 29조6천억 원과 17조1천억 원가량에 그친다.
박 회장은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목표를 아시아 1위로 잡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래에셋의 목표는 ‘아시아 1위’다. 나는 나 자신을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해외 비즈니스를 하면서 아시아 1위는 불가능한 도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지금의 상황에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1위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리 현실적이지 못한 판단이다. 그러나 아시아 1위는 불가능하지 않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