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최장 만기를 기존 40년에서 50년으로 늘리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만기 연장의 배경으로 ‘고객들의 금융비용 부담 완화’를 꼽지만 사실상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해 가계 대출자산을 늘리기 위해서로 보는 시선이 많다.
▲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주택담보대출의 최장 만기를 50년으로 늘리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 하나은행, KB국민은행이 차례대로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만기를 50년으로 연장한 데 이어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만기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관계자 모두 “주택담보대출 최장 만기를 50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은 5일 시중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채움고정금리모기지론(혼합형)’을 내놨다.
하나은행은 7일 대출 취급분부터 ‘하나원큐아파트론’ 등 주택담보대출의 최장 만기를 50년으로 적용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14일부터 ‘KB주택담보대출’ 등의 만기를 최장 50년으로 확대해 판매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 수요를 끌어오는 게 한결 수월해지겠다는 판단에 주택담보대출의 최장 만기를 속속 늘리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완화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의 만기 연장은 사실상 DSR 규제를 우회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DSR은 연 소득에서 한 해 동안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가 차지하는 비중인데 금융당국은 DSR 한도를 정하는 방식으로 대출을 규제하고 있다.
DSR 한도는 제1금융권이 40%, 제2금융권이 50%로 연봉이 5천만 원이라면 1년에 각각 2000만 원, 2500만 원까지 원리금을 상환하는 대출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의 만기가 길어지면 달마다 갚아야 하는 원리금이 줄어들면서 DSR 규제에 따른 대출 한도가 늘어나게 된다. 금융소비자로서는 연봉 조건 등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대출 규모를 늘릴 수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연봉이 5천만 원인 직장인이 아무런 대출이 없는 상황에서 연 금리 5%의 원리금 균등 상환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다면 만기가 40년일 때에는 최대 약 3억4500만 원까지 빌릴 수 있지만 만기가 50년이 되면 약 3억7천만 원까지 한도가 늘어난다.
물론 만기가 길어지면 달마다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 규모는 작아지지만 전체 이자 규모는 커진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 금융당국은 DSR 규제 완화에 선을 긋고 있다.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만기 연장 움직임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성과도 일치한다.
윤석열 정부와 금융당국은 DSR 규제 등 원칙은 유지하면서도 가계대출 공급은 늘리는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되살리기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한 게 대표적이다.
금융위원회는 3월부터 다주택자에도 규제지역 내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고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 주택담보대출 취급 때 각종 제한을 일괄 폐지했다. 또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택담보대출 한도도 없앴다.
주택금융공사가 1월 50년 만기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한 일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금융당국은 DSR 규제를 완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6월29일 ‘취약계층을 위한 후원금 전달 및 소상공인 간담회’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전세보증금 차액 반환을 목적으로 하는 대출에 대해 DSR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예외라며 “일반적 DSR과 관련된 대원칙은 앞으로 절대로 이 정부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