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금융통화위원 대부분이 가계대출 증가세에 우려를 표출했다” “사실 이번 달의 증가금액이라던가 폭은 걱정하실 건 아니다”
가계대출을 두고 13일 서로 다른 진단이 당국 최고수장 두 명의 입에서 나왔다.
▲ 가계대출 전망을 두고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의견이 갈려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이 총재가 13일 서울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가계대출 증가 추이를 걱정했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관리 가능하다며 선을 그었다.
국내 경제를 책임지는 주요 인사의 엇박자에 시장은 혼란스럽다.
한은이 정부와 독립된 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올해 초 ‘F4(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자처하며 맞손을 잡는다던 두 수장의 말이 엇갈리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 있다.
차근히 따져보면 이 같은 발언 차이는 두 사람 모두 직설적 발언을 개의치 않는 성격 때문에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 당국 사이 이견이 생겼을 때 한쪽에서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다른 쪽에서는 조금 두루뭉수리하게 발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원장은 거침없는 말로 주목을 받아온 인물이고 이 총재는 역대 한은 수장 가운데 이례적으로 직설적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편이다.
5월 금융통화위원회 뒤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 총재는 역대 한은 총재라면 거의 보이지 않던 태도로 통화정책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우리나라는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로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해 이를 벗어나기 위해 발빠르게 대처해야 하고 노동과 연금, 교육 등 여러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재정정책으로 돈을 풀어 해결하거나 금리를 낮춰 해결하려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총재가 취임한 뒤 한은이 절간처럼 조용하다는 ‘한은사’ 이미지를 벗어던졌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직설적 어조와 무관치 않다.
소속 기관의 차이도 두 수장의 진단 차이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와 이 원장 모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의 1차 목표는 우선 어디까지나 ‘물가 안정’이다. 따라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그 효과를 명확히 내야 하기 때문에 이 총재는 강한 어조를 낼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더구나 시장의 물가전망을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매파적 말을 내놔야 하는 측면이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율도 물가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반면 가계대출를 관리하지 못해 연체율이 덩달아 오르면 직무유기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연체율은 금융사 건전성에 영향을 끼쳐 금감원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가계대출은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진은 이 원장(맨 왼쪽)이 13일 서울 한화생명 본사에서 열린 '상생친구 협약식'이날 협약식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한화생명>
이 원장은 이날 “단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대출 규모를 줄일 수 있고 줄여나갈 것이다”며 “고정금리 비율 등을 통해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금융당국의 입장을 대변했다.
금융위원회는 실제로 지난해 기준금리 상승부담을 고스란히 대출자들이 떠안았다며 대출상품 가운데 고정금리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을 상반기에 내놨다.
이 총재와 이 원장 사이 엇박자는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두 사람의 엇박자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데 있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려놔도 정부가 ‘상생금융’을 이유로 대출금리 인하 압박을 가해 통화정책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 올해 상반기 내내 흘러나왔다.
한은과 정부 사이 엇박자는 결국 두 기관 사이 대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 적도 있었다. 결국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나서 논란을 진화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4월27일 서울 은행회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엇박자라는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중앙은행과 정부가 너무 대화가 잘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총재도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논란을 의식했는지 정책 엇박자 문제제기에 선을 그었다.
그는 “금융시장 상황에 대해 미시적 대응이 필요하다”면서도 “거시적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줄이는 데는 정책당국과 한국은행이 큰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만 떼어놓고 보면 최근 가계대출은 분명 꾸준히 늘고 있다.
금융위가 12일 내놓은 ‘2023년 6월중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가계대출은 4월에 증가세로 돌아선 뒤 3달 연속으로 늘었다. 아파트 거래량이 고개를 들며 은행 주담대 중심으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준금리가 지난해 말 정점을 찍었던 만큼 하반기나 올해 말에 부채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9월 위기설’같은 말도 심심찮게 나돈다.
결국 지금 시장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정확한 진단인 셈이다. 두 수장의 엇박자 배경이 이해는 가지만 못내 아쉽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