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HD현대그룹의 조선부문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이 친환경선박 전환 수요가 이끄는 조선 슈퍼사이클(초호황)을 준비하며 기술개발과 사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기선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은 HD그룹의 조선부문 사령탑을 맡으며 친환경 전환을 밀어붙여 왔는데 선사들의 친환경선박 전환 수요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그동안 축적한 친환경 역량이 빛을 볼 기회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정기선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은 HD그룹의 조선부문 사령탑을 맡으며 친환경 전환을 밀어붙여 왔는데 선사들의 친환경선박 전환 수요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그동안 축적한 친환경 역량이 빛을 볼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사진은 사정기선 장이 노르시핑 기간 중 글로벌 선주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 < HD현대 >
9일 HD한국조선해양에 따르면 6일부터 이날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된 조선해양박람회 '노르시핑(Nor-shipping)2023'을 계기로 삼아 친환경 기술력을 실질적 성과로 연결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HD현대그룹의 선박서비스 계열사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특히 노르웨이 선사 쿨코(COOL COMPANY LTD.)와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재액화설비 개조공사 계약을 최근 맺고 쿨코가 운영하는 LNG운반선 5척에 증발가스(BOG) 발생을 억제하는 재액화 설비를 탑재하기로 했다.
LNG운반선에서는 하루에 LNG화물의 약 0.15%가 자연기화해 증발가스가 발생하는데 이는 선사들 관점에서 보면 그 자체로 경제적 손실이다. 게다가 증발가스가 발생하더라도 화물창 내부 압력을 유지하려면 증발가스를 대기로 배출하거나 연소시켜야 하는데 이는 환경오염 유발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재액화 설비는 증발가스를 다시 액화해 화물창으로 돌려주거나 자연 기화를 막기 때문에 LNG화물 손실을 줄일 수 있고 탄소 배출도 저감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재액화 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LNG운반선은 약 100척으로 파악되는 만큼 앞으로 추가 수주 여력도 있는 셈이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재액화설비 개조를 비롯한 친환경선박 개조사업을 강화하며 선박 분야 친환경 추세에 대응해 나가고 있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기선 사장이 설립을 주도해 일궈 왔던 회사다. 정 사장은 2021년 HD현대와 HD한국조선해양 대표로 내정돼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대표 자리를 유지했다.
당시 정 사장은 친환경선박 개조사업의 성장성을 눈여겨보고 회사를 직접 이끌며 사업확대에 주력해왔는데 친환경선박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HD한국조선해양에선 노르시핑을 통해 해외 선급, 선사들과 친환경 분야 협력관계를 돈독히 하는 행보를 보였다.
HD한국조선해양은 6일(현지시각) 노르시핑에서 영국 로이드선급(LR)과 라이베리아기국(LISCR)으로부터 액화이산화탄소(LCO2)·암모니아·액화석유가스(LPG) 등을 함께 운반할 수 있는 2만2천 ㎥급 다목적 가스운반선에 대한 기본설계 인증(AIP)을 획득했다.
이 선박은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에 발맞춰 중요한 핵심 화물이 될 액화이산화탄소와 암모니아를 함께 운송할 수 있어 향후 기후변화 대응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7일(현지시각)에는 로이드선급, 노르웨이 선사 크누센(Knutsen), HD현대중공업과 '17만 4천 세제곱미터(㎥)급 LNG운반선의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산출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네 곳 기업은 세계 최초로 실제 선박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즉 원재료 조달부터 건조, 운항, 폐선까지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한다.
이번 협약은 선박의 전 생애주기에 걸친 환경적 영향을 구체적으로 산출해 조선업계의 탄소감축 전략 수립에 기여한다는 취지도 담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8일(현지시각)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3세대 메탄올 저인화점 연료공급 시스템(LFSS)에 대한 기본설계 인증도 획득했다. 메탄올 LFSS는 메탄올 추진선에 필수적으로 적용되는 시스템으로 메탄올 연료공급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준다.
정기선 사장은 노르시핑 기간 중 임기택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과 글로벌 선주들을 만나 조선·해운업계 친환경 전환을 비롯한 주요 현안들에 관해서도 다방면으로 논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 사장은 언론배포 자료를 통해 "HD현대가 만드는 선박과 HD현대의 기술이 대양의 친환경 대전환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6일부터 9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르시핑 2023에 마련된 HD한국조선해양 부스의 모습. < HD현대 >
정 사장이 HD한국조선해양의 사령탑을 맡은 뒤 줄곧 친환경 기술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앞으로 친환경선박 경쟁력이 글로벌 조선시장의 주도권을 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에 따라 모든 해운사는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탄소 배출을 70% 줄여야 한다. 신규 건조 선박에만 적용되던 탄소 배출규제는 현존 선박 모두로 확대되며 규제 대상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선사들은 이미 올해부터 선박탄소집약도지수(CII)를 제출해야 하는데 기준 등급 이하의 선박은 기한에 맞춰 등급을 개선하지 않으면 선박 운용을 못하게 된다. 게다가 적용되는 효율 기준 역시 2030년까지 매년 2% 오르며 까다로워진다.
조선·해운전문매체 스플래시247에 따르면 이번 노르시핑에는 미국 정계 거물인 존 케리 기후특사도 참석했다. 존 케리 기후특사는 오슬로에 있는 미국 대사관 행사에서 “해운업은 글로벌 책임이 있고 모두가 그걸 느끼리라 생각한다”며 “2030년까지 녹색 해운업 목표가 엄격하게 달성되지 못한다면 2050년 넷제로는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녹색 해운업 목표는 역대 최고의 경제적 기회이기도 하다”고 바라봤다.
물론 친환경 선박 교체수요에 따른 슈퍼사이클의 도래 가능성은 수년 전부터 줄기차게 거론됐던 얘기지만 막상 선사들이 친환경 선박 교체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분위기도 해운업계에 있었다.
선박이 워낙 고가 자산인 데다 한 번 구매하면 길게는 30년 정도 사용해야 하는 만큼 선사들이 섣불리 친환경 선박 교체를 추진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탄소저감 글로벌 규제 압력이 커지는 만큼 선사들로서도 친환경 선박 교체를 마냥 늦출 수는 없게 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 예정인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80차 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탄소부담금 납부, 배출권 거래제도 등의 경제적 조치가 논의될 예정”이라며 “장기적으로 선박에 대한 환경 규제는 계속적으로 높아지고 노후선 교체 발주 필요성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해운업계 흐름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이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친환경 추진선 기술개발이다. 친환경 선박 연료인 메탄올과 암모니아로 가동되는 추진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HD한국조선해양은 메탄올 추진선 시장에서 상당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주된 100여 척의 메탄올 추진선 가운데 HD한국조선해양은 절반 넘는 선박을 수주한 것으로 파악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암모니아 추진선으로 친환경 선박 외연 확장도 꾀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암모니아 추진선의 상용화 시점을 2025년으로 잡고 있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LNG 이중연료, 메탄올, 암모니아 선박들이 상용화되거나 준비 과정에 있는데 아직 바다는 친환경화가 더딘 상태”라며 “기술적 우위에 있는 국내 조선사들이 점유율을 유지하거나 늘려갈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