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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체제 '군대식 삼성'에서 벗어날까

이명관 기자 froggen@businesspost.co.kr 2014-07-17 22: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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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사실상 이재용체제로 전환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삼성의 얼굴’을 넘어 삼성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얼마 전 영업이익 7조 원대의 2분기 잠정실적을 내놓았다. 위기라는 진단이 나왔고 이재용체제의 미래를 놓고 시선이 집중됐다.

이재용체제, 삼성은 어디로 갈까?

몇 차례에 나눠 이재용체제를 긴급히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끝>


  이재용체제 '군대식 삼성'에서 벗어날까  
▲ 지난 2012년 1월 윤부근 CE 사장(왼쪽)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등에게 TV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성은 한국기업의 모델이다. 삼성을 따라하는 기업들이 많다. 따라하기는 비단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요즘 대기업들의 출근시간은 대개 오전 7시다. 9시 출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삼성이 이렇게 출근시간을 바꿔놓았다. 1990년대 삼성이 7시 출근 4시 퇴근을 도입하면서 하나둘씩 다른 기업이 따라했다.

삼성은 봉급쟁이들의 문화를 바꿨다. 채용부터 일하는 방식, 복지제도, 퇴직 등 삼성이 먼저 하면 그것은 한국기업의 문화가 된다.

많은 기업들이 앞다퉈 삼성 출신의 임원을 영입하는 것도 삼성의 DNA를 이식하려는 시도다.

황창규 전 삼성 사장이 KT 회장에 오른 것도 이런 기대가 작용했다. 황 회장은 ‘일등 KT, 싱글 KT‘를 내세우며 KT를 삼성처럼 바꿔놓으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조직도 삼성처럼 변경하고 일하는 방식도 삼성처럼 바꾸려 하고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삼성맨 영입은 업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동부그룹은 한 때 삼성 출신 임원이 전체 임원의 40%를 넘어 ’작은 삼성‘이라는 말도 들었다.

삼성은 ‘군대조직’ 같다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 CEO가 결정하면 별다른 토론없이 즉시 실행에 옮긴다는 점이 마치 군대조직 같다는 것이다.

삼성에 들어가면 누구나 피가 삼성의 로고 색깔을 닮아 ‘파란 피’로 바뀐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철저히 삼성맨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곁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삼성 내부에서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하고 의문이 드는 순간 바로 그때가 짐을 싸야 할 시간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조직이 하는 일에 회의를 품지 말라는 얘기다.

물론 이 과정에서 철저한 보상이 이뤄진다. 성과를 내는 만큼 분명히 보상을 해준다. 국내에서 수억, 수십억의 연봉을 받는 샐러리맨 신화는 항상 삼성에서 나왔다.

이런 삼성의 문화가 오늘의 삼성을 만들어 낸 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삼성의 문화가 삼성의 미래를 만들어 내는 데 한계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깊다.

삼성의 문화가 삼성전자를 하드웨어의 절대 강자로 만들었지만 소프트웨어에서 그런 위상에 올라가지 못한 것도 바로 삼성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재용체제 삼성의 문화를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연 이재용체제가 새로운 삼성 문화를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삼성이 반도체와 스마트폰이라는 ‘이건희의 사업’을 딛고 이재용체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하는 시선과 닿아있다.

전략을 만드는 힘은 위에서 나오겠지만 그것을 실천해 낼 수 있는 힘은 조직문화이기 때문이다. 또 이재용체제가 새로 만들 조직문화가 여전히 다른 기업에 전파될 것이고, 그래서 모든 봉급쟁이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용체제 '군대식 삼성'에서 벗어날까  
▲ 지난 2011년 10일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삼성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를 찾은 이재용 부회장.

◆ 이재용체제, 조직문화의 변화가 움트다


삼성전자는 지난 15일 수원사업장에 한해 공휴일 근무 때 전 사원에 대해 반바지 착용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7월부터 자율출퇴근제를 확대실시했다. 자율 출퇴근제는 하루 4시간 이상, 주당 40시간만 근무하기만 하면 되는 유연근무제를 말한다.

대상은 국내 사업장 연구개발직 및 디자인 분야의 전 직원이다. 출근 가능시간도 오전 6시에서 오후 6시로 확대됐다. 기존에 출근 가능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까지였다.

삼성전자는 2012년 수원 DMC연구소와 화성 반도체 연구소 5천여 명을 대상으로 자율출퇴근제를 시범적으로 시도했고 지난해 10월 무선 가전 TV사업부로 적용부서를 넓혔다.

삼성전자는 이런 변화를 놓고 “직원들이 유연하고 창의적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이재용 부회장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 부회장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모자이크’라는 시스템도 개발해 시행하고 있다. 모자이크는 사내 집단지성 시스템인데 지난 11일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모자이크는 임직원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이를 구체화하고 실행시킬수 있도록 다른 직원들의 생각을 한데 모아주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아이디어를 모으겠다는 것이다.

모자이크는 지난 3월 시범적으로 운영됐는데 하루 평균 4만 명 이상의 임직원이 접속하고 3천여 개의 아이디어가 접수되는 등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변화는 과거 삼성이라면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이다.

◆ 이재용체제, 창의력이 더 절실해지다

삼성은 그동안 군대식 문화로 외신들에게 놀라움의 대상이 됐다.

미국 경제잡지 비즈니스위크는 삼성을 “CEO가 결정하면 별다른 토론없이 즉시 실행에 옮긴다는 점에서 마치 군대조직 같다”고 평가했다. 오너부터 말단직원까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데 대한 놀라움이다.

이런 문화는 ‘하드웨어의 삼성’을 만들어 내는 데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빠른 의사결정과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1등 삼성이 되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에서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조직문화에서 찾는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는 수직계열화로 성공한 제조기업”이라며 “유연함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필요한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맞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이 ‘외국인 임원의 무덤’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이런 문화 탓이다. 삼성전자 본사의 전체 임원 수는 1200명 정도다. 그러나 지난 1분기 기준으로 외국인 임원은 46명 정도다. 전체의 4%도 안된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창의적 인재를 ‘모셔오라’는 이건희 회장의 특명에 따라 세계를 무대로 인재를 영입했다. 그 결과 많은 외국인들이 삼성전자에 몸을 담았지만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나갔다. 삼성의 수직적 문화와 성과압박을 견뎌내지 못했다.

이재용체제에서 삼성이 모색하고 있는 미래 성장동력을 보면 무엇보다 소프트웨어 파워가 중요하다. 사물인터넷도 그렇고 바이오사업도 그렇다.

이재용체제 삼성 조직문화의 변화는 이건희체제와 달라야 한다는 반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을 두고 그동안 애플과 같은 혁신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많이 나왔지만 휴대폰과 반도체사업에서 그렇게 절실하게 들리지 않았다”며 “그러나 스마트폰 그 이후를 놓고 애플과 같은 혁신적 DNA를 조직문화에 심어야 한다는 생각을 깊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체제 '군대식 삼성'에서 벗어날까  
▲ 지난 2011년 1월 1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프로배구 2010-2011 V리그 남자부 삼성화재-LIG손해보험 대전경기에 앞서 삼성화재 신입사원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 조직문화 혁신, 아직 갈 길이 멀다.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업체인 링크드인이 지난 해 10월 전 세계 직장인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구글이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애플, 3위는 마이크로소프트, 4위는 페이스북이었다.

이 조사에서 삼성은 85위를 차지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6월 대학생 1천여 명을 상대로 ‘일하고 싶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삼성은 2위로 밀려났다. 10년 연속 1위를 차지했는데 대한항공에 밀렸다.

인크루트는 “삼성은 업무강도가 센 직장으로 연봉이 높은 만큼 다른 곳보다 더 장시간 격무에 시달린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순위가 밀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글은 인재를 뽑을 때부터 구글의 조직문화에 맞는지를 꼼꼼히 따진다. 이에 수반되는 비용과 노력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구글이 창의성을 숭배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글도 성과지향적이다. 이는 삼성과 비슷하다. 삼성도 성과에 대해 확실한 보상을 한다. 그러나 구글은 근무태도에서 삼성과 절대적으로 다르다.

구글은 근무태도에 어떤 제약도 두지 않는다. 출퇴근도 자율에 맡긴다. 오로지 성과만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이는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주어진 업무만 한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삼성의 성과에 근무태도도 여전히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상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긴 시간 일하는 것이 여전히 미덕이다.

‘자율’은 삼성과 굴지의 IT기업을 가르게 한다. 굴지의 IT기업들은 업무를 직원들의 자율에 맡기고 감시와 통제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직원들은 맡은 업무를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창의성을 끌어낸다. 이런 조직문화가 오랜 시간을 거쳐 굳게 뿌리내리고 있다. 이런 조직문화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이들 기업에 입사하고 싶도록 한다.

삼성은 이제 막 걸음마 수준에서 변화하고 있다.

  이재용체제 '군대식 삼성'에서 벗어날까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삼성이라는 말을 만든 조련사 이건희

이건희 회장은 저서인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말은 훌륭한 조련사를 만나야 좋은 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영화광이었는데 독특한 감상법으로 영화를 여러 번 봤다. 한 번은 주연이 됐다가, 한 번은 조연이 됐다가 또 한 번은 카메라 감독의 관점에서 영화를 봤다.

이 회장은 영화 ‘벤허’에서 경영에 필요한 많은 것을 배웠다. 벤허를 수십 번 봤는데 주인공이 채찍없이 경주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통해 깨달은 점이 있었다.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이 회장은 삼성이라는 말의 좋은 조련사였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통해 삼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삼류기업 이미지의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일류 브랜드가 되도록 탈바꿈하는 방법으로 질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인사원칙을 세웠다. 이 회장의 ‘성과주의’는 삼성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

특히 이 회장은 2012년 신년사에서 “실패는 삼성인에게 주어진 특권으로 생각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라”고 말했는데 이 또한 삼성의 성장에 동력이 됐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 회장의 성과보상체계는 삼성 직원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고 '삼성맨'이라는 자부심의 원천이 됐다. 평사원일 때나 임원일 때나 극심한 업무 강도에도 삼성맨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또 이병철 창업주 때부터 이어오던 순혈주의를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삼성은 과거에 공채출신 인사를 중용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외부인사 영입을 늘려 순혈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2014년 임원인사를 보면 임원으로 승진한 475명 가운데 경력직으로 입사한 경우가 150명 이었다. 삼성그룹은 “특유의 순혈주의 등을 없애고 인사에서 차별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모두 없애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삼성이 잘 조련된 말 같은 조직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 산물이 바로 군대식 조직문화다. 이런 조직문화는 “빠른 의사결정과 기술습득이 오늘날 삼성을 이끈 힘이 됐다”와 “삼성의 조직문화는 마치 시계 태엽장치와 비슷하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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