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TSMC가 파운드리 고객사와 경쟁 관계에 놓이지 않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며 삼성전자와 인텔을 견제하고 있다. 사진은 TSMC 반도체 생산공장.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고객사와 굳건한 신뢰 관계를 장점으로 앞세워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서 삼성전자와 인텔 등 후발주자로 나선 경쟁기업을 공격했다.
삼성전자와 인텔이 자체 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동시에 고객사 제품도 위탁생산하는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어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약점을 정조준한 것이다.
12일 디지타임스 등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TSMC는 대만 신주과학단지에서 기술 심포지엄을 열고 고객사와 신뢰를 주제로 한 연설을 진행했다.
웨이저자 TSMC CEO는 현장에 참석한 여러 반도체기업 관계자를 향해 “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업에 당신의 반도체 설계를 제공하겠는가”라고 물었다.
고객사의 믿음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 것이라는 TSMC의 기업철학을 이번 행사에서 다시금 강조한 셈이다.
웨이저자는 TSMC가 한국과 미국의 경쟁사와 달리 자체 반도체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만큼 고객사들과 경쟁할 일이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사실상 삼성전자와 인텔이 주요 파운드리 고객사와 직접 경쟁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공격에 나선 셈이다.
그는 “TSMC는 고객사가 성공해야만 뒤따라 성공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완전히 일치한 이해관계를 두고 있다는 측면도 강조했다.
TSMC가 이날 심포지엄에서 언급한 문제는 삼성전자와 인텔이 파운드리사업 진출 확대에 필연적으로 안게 될 수밖에 없는 취약점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용 프로세서와 통신반도체, 인텔은 PC와 서버용 CPU 및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자체적으로 설계해 제조하고 판매하는 기업이다.
자연히 이러한 사업 분야는 일부 고객사들과 겹칠 수밖에 없어 사실상의 경쟁 관계에 놓인다.
반도체 제조 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설계업체들이 위탁생산을 맡길 때 이러한 경쟁사들에 파운드리를 맡기는 일은 쉽지 않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고객사가 지불한 파운드리 비용이 경쟁사의 자금 여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는 데다 위탁생산을 맡긴 자사의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도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웨이저자도 이런 측면을 언급하며 “TSMC는 파운드리 업계에서 유일하게 고객사에 신뢰를 우선으로 두고 이타적인 태도로 일하는 기업”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삼성전자와 인텔의 파운드리사업 구조는 TSMC와 맞서기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종종 받고 있다.
반도체 고객사 입장에서 TSMC 대신 삼성전자나 인텔 등 기업에 위탁생산을 맡기려면 기술 유출과 같은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와 AMD, 퀄컴 등 기업이 그동안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주로 최신 반도체 제품보다 구형 제품에 활용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점도 이를 보여주는 근거로 분석된다.
물론 삼성전자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객사들에 적극 설득하고 있지만 완전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훨씬 큰 영향력을 갖추고 있는 인텔의 경우에는 파운드리 고객사에 충분한 신뢰를 얻는 일이 더욱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 가운데 하나로 삼성전자와 인텔이 파운드리사업을 별도 회사로 분리하는 계획을 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꾸준히 나온다.
파운드리를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를 설립해 운영한다면 이를 자체 반도체 설계사업과 완전히 분리해 TSMC와 같은 사업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운드리사업 특성상 사업 초기에는 매출과 영업이익을 훨씬 웃도는 규모의 시설 및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재무적으로 독립된 사업체계를 갖추기 쉽지 않다.
TSMC가 삼성전자와 인텔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차별점을 앞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다만 TSMC가 고객사들에 파운드리 기술력을 홍보하는 심포지엄에서 고객사와 신뢰를 핵심 주제로 꺼내들었다는 점은 그만큼 경쟁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삼성전자와 인텔이 3나노와 2나노 등 첨단 파운드리 공정에서 TSMC를 매섭게 추격해오자 기술력보다 신뢰를 더욱 전면에 내세워 홍보에 나선 셈이기 때문이다.
웨이저자는 “TSMC는 고객사에게 주문을 받은 상품만 제조해 판매한다”며 “긴밀한 협력 관계가 없이는 발전할 수 없는 회사”라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