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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문화프리즘] 중국인에게 한국인 사업 파트너란, 다루기 쉬운 상대

이욱연 gomexico@sogang.ac.kr 2023-03-24 16: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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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문화프리즘] 중국인에게 한국인 사업 파트너란, 다루기 쉬운 상대
▲ 3월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14기 1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3차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그때가 좋았어요.”

중국과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했던 사람을 만나면 흔히 이런 비슷한 말을 듣는다. 대개는 한중 수교 이전이나 직후부터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도 한 대기업에 특강 갔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에서 30여 년을 보냈다고 했다. 고생도 했지만, 보람도 있고 칙사 대접을 받는 호사도 누렸다고 했다.

지방 도시에 출장을 갔을 때 중국 파트너가 공안까지 동원하여 공항에서 호텔까지 호송해준 이야기, 당 서기, 시장 등과 함께 중국 최고위층이 마시는 특별한 술과 담배로 접대받은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졌다.

어디 대기업에 있던 이분만 이런 호사를 누렸을까? 한중 수교 30년 동안 많은 한국인이 정도는 달라도 중국에서 호사를 누리고,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중국인은 왜 그렇게 한국인을 극진하게 대접했을까? 중국 접대문화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이 지닌 경쟁력 우위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사람 눈에, 중국 기업인과 관료 눈에 한국과 한국 기업이 그렇게 융숭하게 대접할 정도로 높아 보이고, 좋아 보인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이 중국 앞에서 그만큼 경쟁력이 있었고, 그래서 한국인을 융숭히 대접하면서 협력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한국에 잘 보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중국인에게 있었다.

이제 좋은 시절 다 갔다고 아쉬워하는 것은, 이제 한국이 지닌 경쟁력이 중국인 눈에 그만큼 추락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제 중국에 가면 더는 그런 융숭한 대접을 받지 못할까? 물론 한국의 위상이 달라져서 접대의 정도는 약해질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이 시진핑 시대 이후 반부패 차원에서 과잉 접대를 제한하고 있어서 대접이 예전만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필요 때문에 만난다면 중국인은 여전히 한국인에게 밥과 술을 후하게 사면서 융숭하게 대접할 것이다.

왜 그럴까? 한국인의 마음을 여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중국과 비즈니스를 해온 우리 기업인들 말을 종합해 보면, 어지간한 중국 기업과 기관에는 한국인을 상대하는 매뉴얼이 있다.

그 매뉴얼 가운데 하나는 한국인은 화통해서 뜻만 맞으면 마음을 쉽게 연다는 것이다.

특히 술자리에서 의기투합하면 적어도 절반은 성공이어서, 꼭 술자리를 서로 의기투합하는 장으로 만드는 것이 중국인이 한국인을 대하는 중요한 매뉴얼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기질을 파악하여 비즈니스 접대에 활용하는 것이다.

사실 중국 비즈니스 현장에서 독한 중국 술이 몇 순배 돌고 나면 한국인과 중국인은 어느새 하나가 되고, 형님 동생이 되는 일은 흔하다.

한국인이 중국인하고 비즈니스 할 때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인끼리도 뜻이 맞으면 그 자리에서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가 되고, ‘민증’을 까고, 그렇게 단숨에 형님이 되고 언니가 되고, 동생이 된다. 한 차례 술자리에서도 도원결의가 가능한 게 한국인의 기질이다.

상대와 뜻이 맞거나 분위기를 타면 “그래, 오늘 기분이다”를 외치면서, 폭탄주로 러브샷을 하면서 화끈하게 소통한다. 한국인들처럼 마치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 듯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가 되어 열정의 밤을 보내면서 소통하는 사람들, 많지 않다.

서구인은 더욱 그렇고, 동아시아 국가이자 유교 문화를 지닌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우리 같지 않다. 폭탄주 문화와 더불어 한국의 독특한 술자리 문화 자체가 하나의 한류이다. 한국인 기질이 그렇다. 

중국인은 이런 한국인의 기질을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기분을 맞추어 주고, 뜻이 맞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면 상담에서 절반은 성공한 셈이라는 거다. 그래서 중국인이 보기에 한국인은 상대하기가 쉽다.

한국인의 이런 기질은 어디서 오는가? 한국 철학을 전공하는 일본학자 오구라 기조(小倉紀藏)는 한국인 지닌 이런 기질이 한국인을 지배하는 주자학과 관련 있다고 본다.

그가 보기에 한국인은 도덕을 지향하는 도덕 환원주의 성향이라든지 원리원칙과 명분을 중시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몰도덕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일본인과 크게 다른 성향이다.

오구라 기조는 한국인의 이런 성향은 주자학의 원리 가운데 하나인 리(理)의 영향이라고 본다. 한국 정치판을 보면 오구라 기조의 시각에 수긍이 간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하듯이 늘 한국 정치판은 실용주의보다는 도덕주의가 지배한다.

물론 정치인들이 도덕이나 그런 종류의 가치를 늘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로는 도덕적이지 않다. 다만 상대를 불결하고 비도덕적이라고 공격하고 패배시키는 명분과 무기로 도덕을 앞세울 뿐이다. 이런 한국 정치문화는 매우 독특하다. 지극히 한국답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이런 도덕주의 면모만 있는가? 그렇지 않다. 주자학이 세계와 존재를 리와 기(氣)로 두 요소로 보듯이, 한국인에게 도덕과 원리원칙, 교조, 정연한 질서를 추구하는 리의 성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리의 세계만이 한국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그런 리의 세계와 시간, 일상만 있다면 한국인은 숨 막혀 죽을 것이다.

리와 더불어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기의 세계, 기의 일상과 시간이 한국인에게 있다. 혼탁하고 무질서하고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상징하는 기의 세계와 시간이 있어서 한국인은 도덕과 원리원칙, 교조와 질서가 지배하는 답답한 일상을 버틴다.

그것이 한국인의 숨구멍이다. 열정적인 한국의 밤 문화는 그런 한국인의 기의 세계, 기의 시간의 상징이다. 한국인의 열정과 다이다믹 기질은 여기서 나온다. 한국 문화가 지닌 청년 문화적인 기질의 바탕이다.

이런 기질을 지닌 한국인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영원히 청년이다. 청년은 열정적이고 화끈하다. 마음이 꽂히면 앞뒤 가리지 않고 질주한다. 성급하고 저돌적이고 충동적이기도 하다.

원리원칙에 충실하면서 반항적이지만 뜻이 맞고 의기가 투합하면 쉽게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된다. 청년 기질이 한국인의 문화적 DNA다. 세계인이 한류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이렇게 청년 기질을 지녔다면, 중국인은 노인 기질을 지녔다. 중국인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늘 노인이다. 중국 학자 린위탕(林語堂)은 『중국, 중국인』이란 책에서 중국인의 기질을 말하면서 중국인의 성격 중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노회함을 꼽는다. 노회하다는 말은 삶에 달통한 노인 같다는 뜻이다.

린위탕은 노회함을 이렇게 정의한다. “노회란 세상을 많이 살았고, 이해타산에 빠르며 쉽게 들뜨지 않고, 진보에 대하여 회의를 지닌 태도다.” 린위탕은 이런 노회함을 지닌 남자가 바람직한 남편감이라고 말한다.

중국인의 삶의 철학을 기준으로 볼 때는, 중국 여성 기준으로는 그럴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 여성도 그렇게 생각할까? 아마 결코 아닐 것이다. 우리 성향이 그렇다.

노인 같은 노회함을 지닌 채 이해타산에 빠르고 쉽게 늘 뜨지 않는 중국인, 청년 같은 열정과 순수함을 지닌 채 이해타산보다는 대의와 명분과 원칙, 의리를 중시하는 한국인이 비즈니스 상담을 하고 외교 협상하면 누가 이길까? 한국인의 이런 기질이 한류에는 최고이지만, 비즈니스 상담과 외교 협상에는 독이 되지 않을까?

미국, 중국, 일본 강대국의 압박이 갈수록 심해지는 새로운 위기의 시대에 한국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노회함이다. 비즈니스와 외교 현장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  
 
현재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이징사범대학교 대학원 고급 진수과정을 수료했고 하버드대학교 페어뱅크 중국연구소 방문교수를 지냈다. 중국 문학과 문화를 연구하며 여러 권의 책을 냈고 jtbc '차이나는 클래스', EBS '내일을 여는 인문학'에 출연하는 등 대중과 소통에도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욱연의 중국 수업',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이만큼 가까운 중국',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의 중국 지성'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들풀', '광인일기',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아큐정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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