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 시행과 관련해 내걸었던 무리한 요건을 재검토하고 법안의 본래 목적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논평이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기업의 현지 생산 및 연구개발 투자를 지원하는 반도체 지원법에 여러 독소조항을 포함한 점을 비판하는 워싱턴포스트의 논평이 나왔다.
삼성전자와 TSMC 등 기업이 상무부의 지원금 제공 조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면 미국의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노린 법안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3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의회를 통과한 뒤 큰 기대를 받고 있던 반도체 지원법의 실질적 효과를 두고 회의적 시각이 떠오르고 있다.
미국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이 해당 법안에 반도체와 관계 없는 여러 조건이나 규제를 덧붙이면서 법안의 성격과 목적이 불투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재무부에 자문 역할을 맡았던 경제전문가 스티븐 래트너의 논평을 통해 이러한 움직임을 비판했다.
래트너는 오바마 정부와 일하며 얻게 된 가장 큰 교훈은 주요 정책에 있어서 핵심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가치 있는 사안이라도 본래 목적에 어긋나는 데 역량을 분산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최근 반도체 지원법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적 움직임과 상반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기업에 보조금 제공을 통해 미국의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과 기술력 강화, 경제 활성화와 중국 반도체산업 견제, 복지 개선과 노동조합 활성화 등 다양한 목표를 동시에 이뤄내려 하고 있다.
상무부가 제시한 반도체 보조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지원 대상 기업은 초과 이익을 미국에 공유하고 직원 복지 증진과 노조 활동을 지원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 중국 내 반도체공장에 투자도 제한된다.
래트너는 상무부의 이러한 가이드라인 내용을 인용하면서 이는 반도체 산업 지원이라는 법안의 본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비판했다.
반도체공장 투자가 소수자와 참전용사 및 여성에 취업 기회를 열어주고 경제적 불평등 개선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조건도 보조금 평가 기준에 포함되어 있다.
미국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신설하며 정부 지원을 기대하고 있던 삼성전자와 TSMC 등 기업이 이런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는 당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상무부가 지원 대상 기업의 주주환원 등을 제한하는 규제를 두고도 비판이 이어졌다. 이러한 조건은 기업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해치는 요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래트너는 논평에서 “미국 정부는 중국과 반도체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더 나은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며 “까다로운 요건을 대폭 수정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제조업 활성화와 반도체 공급망 구축 등 본래 목적을 이뤄내려면 해당 기업들이 내는 목소리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TSMC와 같은 기업이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을 두고 더욱 큰 부담을 토로하고 있는 반면 바이든 정부가 이런 요구에는 적극 대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사이 한국 정부가 적극적 지원 정책을 앞세워 삼성전자의 30조 원 규모 투자를 자극했다는 점도 그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래트너는 “미국 정부는 지금 (다른 국가와) 경제 측면의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며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더욱 노력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