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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일본 억만장자 '마루한' 한창우의 돈에 대한 철학

이재우 sinemakid222@gmail.com 2023-03-17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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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일본 억만장자 '마루한' 한창우의 돈에 대한 철학
▲ 일본 파친코업계 1위 기업 '마루한'의 창업자인 재일교포 기업가 한창우(韓昌佑·91) 회장. 그는 2011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세계한상대회에서 "내가 번 돈을 다 내놓고 가겠다"며 전 재산을 한국과 일본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마루한>
[비즈니스포스트] 한 사람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는 거기 없다. 고향일 뿐이다.

"생각해 보세요. 멀리 일본까지 가서 고생하며 성공한 사람이라서 대단한 게 아니라, 돈을 아끼지 않고 이곳 고향에 엄청나게 기부하는 그 마음이 고맙지요.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합니까?"

한결같았다. 필자가 경남 삼천포(사천)에서 만난 지역민들은 모두가 한 입처럼 말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기업가 한창우 회장에 대한 평가는 퍽이나 후했다. 심지어 돌아서는 필자를 붙잡고 한마디라도 더 들려주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한창우(韓昌佑·91). 그는 일본 파친코업계 1위 기업인 '마루한(マルハン)'의 창업자다. 마루한은 파친코의 둥근 구슬을 의미하는 '마루(丸)'와 한창우의 '한'을 더한 말이다.

파친코 외에 은행, 보험, 건설, 식품, 골프장 등으로 영역을 넓힌 마루한그룹은 현재 직원 1만2600여 명을 거느리고 있으며 한 해 매출은 약 14조5천억 원(2020년 3월 결산 기준)에 달한다.

일반인들에게 한창우란 이름은 여전히 낯설다. 그러면 조금 친근감 있게 다가가 볼까. 오래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첫 일본 콘서트를 도와준 이가 그였다. (일본 경제매체 다이아몬드) 유명한 클래식 애호가인 한창우 회장의 돈에 대한 철학은 꽤나 남다르다.

"돈을 버는 건 기술이지만, 돈을 쓰는 건 예술이다."

그의 경영과 삶이 이 한 문장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자신이 기부한 돈의 가치가 쉽게 휘발되지 않고 오랫동안 사회에 스며들어 지속되기를 소망했다.

일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인 그는 돈을 돈답게 쓸 줄 아는 기업인이다. 2015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그의 재산을 42억 달러로 평가하면서 일본 부자 순위 7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엄청난 부자라서 놀랄 일이 아니다.

더 놀랄 일은 따로 있다. 2011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세계한상대회. 당시 한창우는 "(죽으면) 내가 번 돈을 다 내놓고 가겠다"고 통 크게 선언했다. 전 재산을 한국과 일본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억만장자가 개인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내놓았거나 그렇게 선언한 일이 있었던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으로 건너가 일종의 '디아스포라(Diaspora: 헤어짐, 타국살이)' 삶을 살았던 한창우 회장은 경남 사천시라는 바뀐 지명 대신 고향을 떠날 때의 이름인 '삼천포'를 여전히 고집한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일본 억만장자 '마루한' 한창우의 돈에 대한 철학
▲ 경남 사천시는 2013년 정명(定名) 600주년을 기념하는 시민대종을 제작했는데 한창우 회장은 무려 22.5톤이나 나가는 대종과 종각을 지어 기부했다. 그런 고마움에 대한 표시로 사천시는 시청 인근 종각 옆에 '한창우 동상'을 건립했다. <이재우>
그런 그에게 삼천포는 덧난 상처처럼 아픈 기억으로 남았을 법하다. 그러니 빚진 마음으로 떠난 고향에 뭔가 공헌을 하고 싶었을 터.

그렇게 탄생한 것이 장학재단이다. 2010년 5월 사재 60억 원을 출연해 사천에 '한창우·나가코 교육문화재단'을 설립했다. 나가코(祥子)는 한 회장이 스물여덟 살에 맞이한 일본인 부인 이름이다.

필자는 한창우의 이런 고향 기부를 '농사 경영'에 비유하고 싶다. 훌륭한 농부라면 다음 수확을 위해 좋은 볍씨를 미리 골라야 하지 않겠는가. 소작농의 아들 한창우에게 '볍씨'는 사천의 미래 인재들인 셈이다.

그의 고향 기부는 계속됐다. 2013년 사천시가 정명(定名) 600주년을 기념하는 시민대종을 제작할 당시 한 회장은 무려 22.5톤이나 나가는 대종과 종각을 지어 기부했다. 그런 고마움에 대한 표시로 사천시는 시청 인근 종각 옆에 '한창우 동상'을 건립했다. 사실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우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탐험하고(Explore), 꿈꾸고(Dream), 발견하라(Discover)."

도전적인 삶을 강조한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이 말은 한창우의 삶과도 닮았다. 자신의 발목을 묶고 있던 가난의 끈을 풀고 일본으로의 탐험을 강행했던 그였다. 

굴착기 같은 의지로 차별의 벽을 뚫고 거부(巨富)의 꿈을 꾸고 마침내 이뤄냈던 그였다. 더 나아가 기부라는 인생의 큰 가치를 발견했던 그였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일본 억만장자 '마루한' 한창우의 돈에 대한 철학
▲ 한창우 회장은 1947년 10월21일 삼천포 남일대(南逸臺) 바닷가 코끼리바위 근처에서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에 올랐다. 코끼리바위는 코끼리가 코를 바다에 빠뜨리고 있는 형상이다. 남일대는 신라 말기 대학자 최치원 선생이 '남쪽 제일의 경치'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이재우>
둥근 구슬처럼 인생이 어디로 굴러갈 지 알 수 없었던 삼천포의 16세 소년 한창우. 그가 고향을 떠난 건 1947년 10월21일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다. 가방에 쌀 두 되와 일영사전 한 권만 달랑 넣고 시모노세키로 가는 밀항선에 오른 곳이 남일대(南逸臺) 바닷가 코끼리바위 근처였다.

필자는 소년 한창우에 빙의라도 된 듯 건너편 바닷가에서 코끼리바위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일본으로 징용가서 벽돌공을 하는 형님을 믿고 떠난 밀항길. 막막한 앞날이었지만 가방 한 구석엔 무게도, 질량도 가늠할 수 없는 큰 꿈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빈손으로 고향을 떠난 소년은 어렵게 고학으로 대학(호세이대)을 졸업하고 반세기 만에 일본 재계의 '큰손'으로 우뚝 섰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파친코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사실 일본 파친코업은 한때 도박 성격이 짙었고 야쿠자들과 얽혀 있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이런 판을 깬 것이 한창우 회장이다. 파친코를 평범한 직장인들과 여성들, 심지어 주부들까지 스트레스를 푸는 레저,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일화 하나. 독자들이 기존의 파친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교세라그룹의 고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 이야기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이나모리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의 유일한 취미는 파친코였습니다. 파친코 가게에 가면 반드시 경품을 받아와 자식이나 손자에게 나눠줬습니다. 정말 잘 하셨지요. 어머니가 다시 살아 있다면 다시 파친코 가게에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기타 야스토시 저, '이나모리 가즈오, 마음에 사심은 없다'에서 인용)

이나모리에게 파친코는 자신의 '뿌리'인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추억의 대상이었다. 한창우 회장 역시 뿌리(고국)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했다. 일본 사회에서 한국인이라는 자존심을 저당잡히고 살았던 그였지만 한국 이름만큼은 차압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는 2002년에야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그럼에도 한국 이름은 고집했다. 법무성과 외무성이 딴지를 걸자 소송까지 불사했던 그다. 마루한 대표를 맡고 있는 차남 한유 사장을 비롯해 네 아들 모두 한국 이름을 쓴다.(장남 한철씨는 학창시절 미국 연수 중에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

그런 한창우 회장의 이력은 개인사, 집안사를 넘어 재일교포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됐다. 필자가 일본의 여러 매체들을 훑어보다가 뭉클하게 느꼈던 한 사연은 이렇다.

1981년 여름 '일본 고교야구의 꽃' 고시엔(甲子園) 대회 결승전이 열린 효고현 고시엔구장. 그런데 TV를 시청하던 재일교포들은 눈을 의심했다. 스타팅 멤버를 알리는 전광판에 한국 이름이 하나 올라왔기 때문이다.

문제의 주인공은 교토상고 좌익수로 출전한 한유(한창우 회장의 아들)였다. 그는 일본식 이름(니시하라)이 아닌 한유라는 본명으로 출전했다. 고시엔에서 한국 본명 출전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일본 언론은 현재 마루한을 이끌고 있는 한유 사장을 조명하는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보덕학원(효고현)과 교토상고(교토부)의 결승전은 재일한국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일전으로 기억된다. 한유는 재일한국인으로서 사상 첫 본명으로 선수 등록해 재일동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스포츠매체 '도쿄스포츠' 2017년 4월 9일자)

비록 교토상고가 경기에서 패하긴 했지만 그날 한유 개인은 물론 재일교포 사회는 실로 오랜만에 승리감을 맛봤을 것이다. 40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지만 기사를 읽어보는 필자에게도 묘한 흥분이 밀려왔다.

이제 일본으로 가보자. 마루한이라는 기업에 적잖이 놀랐던 필자의 경험담. 예전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마주한 아주 소소하지만 아주 특별한 그들만의 사회 기부 방식 이야기다.

"지역 노인센터에 휠체어를 기증하기 위해 알루미늄 캔고리 모으기를 하고 있는데 도움을 줬으면 합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일본 억만장자 '마루한' 한창우의 돈에 대한 철학
▲ 홋카이도 삿포로시의 야간 광고판. 왼쪽 맨위에 빨간 M자의 마루한’(マルハン) 광고판이 보인다. 삿포로의 마루한 영업장은 2007년부터 '휠체어 기부 운동'을 펼쳐왔다. <이재우>
2007년 홋카이도 삿포로의 한 마루한 영업장에 인근 초등학교 학생 하나가 이런 부탁을 해왔다. 당시 유명 환경단체가 알루미늄 캔고리 회수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휠체어 한 대당 필요한 캔고리는 160만 개, 무게로는 800kg에 달했다.

어찌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캔고리 160만 개를 모아야 휠체어 한 대라니. 하지만 마루한은 마치 꿀벌들이 꽃가루를 옮기듯 전사적 운동을 펼쳐 나갔다.

학생의 제안을 받은 마루한 직원은 전국에 퍼져있는 각 점포에 연락을 취해 캔고리를 수거했다. 영업장을 들르는 손님들도 큰 도움을 줬다. 그런데도 1년 동안 전체 영업장에서 캔고리를 수거해 교환한 휠체어는 3~4대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티끌 모아 태산. 그렇게 마루한은 2007년부터 2021년 5월까지 15년 동안 총 361대의 휠체어를 복지시설에 기증할 수 있었다. 한번 생각해 보자. 마루한이 돈이 없어 캔고리를 모았을까. 돈으로 휠체어를 구입해 기부해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느리지만 다소 미련스러운(?) 방식으로 휠체어 기부 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이게 마루한의 기업 이념인 '마루하니즘'의 진면목이다.

그럼 그때 그 초등학생은 어떻게 됐을까? 사실 필자도 궁금했다. 일본 매체를 '이 잡듯' 뒤져보았다. 한유 사장 인터뷰를 다룬 한 CEO 전문매체를 겨우 찾아냈다. 

해당 매체는 "그 소년은 마루한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고 전했다. 결론을 짓자면 초등학생의 작은 목소리 하나가 만들어낸 ‘마루한만의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다시 한창우 회장 이야기로 돌아가 마무리 한다. 그는 말했다. "내 성공 비결이요? 헝그리 정신과 챌린지 정신이지요." 그의 이런 정신은 차별의 땅에서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삼천포 사람 한. 창. 우. 그는 성공을 넘어 재일교포 사회에서도 묵직한 바위로 서 있다. 마치 그가 떠나올 때 보았던 코끼리 바위처럼.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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