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3-03-15 16: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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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계·이마트와 네이버 혈맹이 2년 동안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비즈니스포스트] '혈맹 관계를 다졌다.'
신세계·이마트와 네이버가 2021년 3월 2500억 원 규모로 서로의 지분을 교환했을 때 나온 말이다.
하지만 현재 둘의 관계는 그때와 달라졌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두 회사의 '끈끈한 관계' 구축을 어렵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16일이면 신세계·이마트와 네이버가 지분교환을 발표한 지 만 2년이 된다.
신세계·이마트와 네이버는 2021년 3월16일 사업제휴합의서를 체결하며 앞으로 커머스와 물류, 멤버십, 상생 등 여러 분야에서 전방위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말로만 합의하지 않았다.
시쳇말로 '피를 섞는다'는 지분 맞교환은 협력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움직임이었다. 당시 이마트와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각각 1500억 원, 1천억 원 규모의 지분을 네이버에 넘기는 대신 네이버 주식을 받았다.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사진)이 네이버와 협력을 더 강화하지 않는 까닭은 커머스 분야에서 네이버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적지 않은 지분을 서로 나눠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장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한 번 해보고 마는 협업이 아닌 동맹 수준의 관계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2년 전 신세계·이마트와 네이버의 지분 맞교환이 '혈맹'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배경이다.
하지만 지분을 맞교환한 지 2년이 된 현재 시점에서 둘의 관계를 보면 혈맹이라는 표현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우선 두 회사의 대대적 협업은 사실상 2021년을 끝으로 멈춰있다.
신세계그룹과 네이버가 각각 운영하는 뉴스룸을 보면 두 회사는 2021년 10월4일 소상공인 상생 프로젝트 '지역명물 챌린지'를 진행하며 처음으로 협력했다. 열흘 뒤인 2021년 10월14일 네이버 장보기 서비스에 이마트가 입점한 것은 두 번째 협력이었다.
하지만 이 둘을 제외하면 신세계·이마트가 네이버와 공을 들여 만들어 낸'눈에 띄는' 협력 사업의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네이버의 라이브 쇼핑방송 플랫폼인 네이버쇼핑라이브에서 신세계백화점과 신세계푸드, 이마트 등 신세계그룹 여려 계열사들이 제품을 판매하며 협력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네이버쇼핑라이브가 다른 회사와도 이러한 프로모션을 종종 진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혈맹 수준의 협력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각에서는 신세계그룹과 네이버가 보다 강력한 협업 성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내놨었다. 가장 큰 기대를 받았던 서비스는 바로 멤버십의 통합 혜택 제공이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멤버십 서비스 '네이버플러스'와 이마트의 통합 멤버십 '스마일클럽'을 결합하면 보다 많은 사용자들을 플랫폼에 묶어둘 수 있는 '락인 효과'가 강력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 유력한 협력 방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현재까지 두 회사의 움직임을 보면 멤버십 서비스의 결합과 관련해서는 진전된 논의가 없다. 앞으로도 두 멤버십의 결합이 이뤄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는 것이 유통업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사실 두 회사의 동맹은 초창기만 해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강자끼리의 협력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만 2년이 돼가는 현재까지도 주목할 만한 성과가 없는 것은 두 회사가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신세계유니버스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신세계그룹의 여러 온오프라인 계열사와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생태계를 의미한다. 신세계백화점과 스타필드에서 쇼핑하고 이마트에서 장을 보며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등 신세계그룹이 품고 있는 계열사·브랜드와 관련한 충성도를 높여 고객의 시간을 빼앗겠다는 것이 정 부회장의 큰 그림이다.
이를 위해 신세계그룹에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계열사나 브랜드의 차별화한 경쟁력 확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신세계백화점의 고급화, 이마트의 신선식품 강화 등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신세계그룹 입장에서 네이버와 협업을 통한 이커머스 확대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경영 기조를 볼 때 네이버와 협력은 신세계유니버스 구축을 위한 여러 과제 가운데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지마켓의 존재도 신세계그룹과 네이버의 동맹이 끈끈해지지 못하는 이유로 거론된다.
신세계그룹이 G마켓의 운영사인 이베이코리아(현 지마켓)를 인수한 것은 2021년 6월이다. 네이버와 지분 맞교환을 한 뒤 약 3달 만의 일이다.
이마트가 천문학적 금액인 3조4천억 원이나 들여 진행한 인수합병인 만큼 지마켓의 성공은 신세계그룹에게 매우 중요하다.
기존 온라인 플랫폼인 SSG닷컴과 화학적으로 얼마나 잘 결합하느냐가 이 인수합병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문제라고 거론되는 만큼 정 부회장 입장에서는 네이버와 협업이 우선순위가 되긴 힘들어 보인다.
네이버와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자칫 신세계그룹에 악수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정 부회장이 협력 확대에 신중한 이유로 꼽힌다.
이마트의 네이버 장보기 입점은 둘의 협력이 꽤 진전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마트가 네이버 장보기 서비스를 강화하다가는 자칫 SSG닷컴이라는 자체 플랫폼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네이버 플랫폼에 종속될 수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다른 플랫폼들이 유력 플랫폼에 입점하면서도 각자 자사몰을 키우는 것도 이런 이유다.
SSG닷컴과 지마켓의 독자 생존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정 부회장 입장에서는 네이버라는 채널 하나를 더 확보하는 차원까지만 협력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두 회사가 가진 강점이 뚜렷하다보니 현업 부서에서는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데 공감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커머스 영역을 중심으로 네이버와 기존 사업의 시너지 확대 및 물류 분야의 협력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할 것이고 다양한 신규사업의 협업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사진)에게도 신세계그룹과 협력이 커머스 분야 사업 확대를 위한 최우선 과제가 아닐 수 있다.
네이버는 여태껏 커머스 사업을 키우면서 직매입을 강화한 다른 플랫폼들과 달리 철저하게 오픈형 플랫폼을 만드는 데 매진했다. 막대한 검색 트래픽을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만큼 누구나 네이버 플랫폼에 입점할 수 있는 통로만 마련해주고 실제 수익은 광고로 내겠다는 것이 네이버의 기본 전략이다.
네이버가 실제로 지난해 커머스부문에서 낸 매출 가운데 절반 이상은 모두 커머스 광고사업에서 나왔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창업자에게 신세계·이마트와 협력도 소비자들에게 선택지를 하나 더 넓혀주는 차원에서 중요한 전략일 뿐 결코 최우선 전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해진 창업주에게 중요한 문제는 물류 인프라다. CJ대한통운과 협력관계를 공고하게 다지면서 관련 인프라를 고도화하기 위해 KT와도 손을 잡고 있는 것은 네이버가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사실 두 회사의 동맹이 공고하지 않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과거 이마트의 이베이코리아 인수 때부터다.
당시 이마트는 네이버와 손잡고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마지막에 네이버가 발을 빼면서 이마트가 단독으로 인수하는 모양이 됐다. 그때부터 정용진 부회장과 이해진 창업주가 그리고 있는 커머스 관련 그림이 다른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