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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effect] 평생 차 없이 살아온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선생을 닮고 싶다

마녀체력 withbutton@icloud.com 2023-03-08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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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effect] 평생 차 없이 살아온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선생을 닮고 싶다
▲ 경남MBC가 지난해 12월31일과 올해 1월1일 이틀에 걸쳐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방영했다. 이후 유튜브 등에서 다큐멘터리가 화제가 되자 설연휴인 1월23일과 24일 MBC에서 전국 방송을 했다. <경남MBC>
[비즈니스포스트] 대학 동기 몇 명과 오랜만에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회계를 맡은 나는 이왕이면 새 차를 타보고 싶었다. 좀 비싸더라도 21년 형 소나타를 골라 두었다. 

다들 일찌감치 면허를 딴 베테랑들이라, 내가 운전할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승용차를 모는 일은 어쩌다 한 번이었다. 가능하면 안 하는 쪽이 모두를 위해 안전할 것 같았다. 그런데 자꾸만 나더러 운전대를 잡으라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한 친구는 나보다 ‘더 오래된’ 구식 차여서, 스마트키는 물론 새 차의 기능에 익숙하지 않단다.

다른 친구는 남편과 미국에 머물 때 타던 ‘좀 더 오래된’ 국산 차를 배로 싣고 와서 여전히 탄다고 했다. 얼마 전에 작은 부품 하나가 고장났는데, 국내에 없대서 미국으로 주문을 했다나. 또 다른 친구 역시 ‘지금은 브랜드조차 사라진’ 조그마한 소형차를 그대로 탄다는 거다. 

그런 얘기들을 주고받으면서 우리끼리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나마 10년 넘은 내 차가 기능적으로 가장 새 차에 가까우니 운전을 도맡을 수밖에. (차츰 곁눈으로 익숙해지면서 나중에는 둘이 번갈아 했다만.) 만약 진짜로 돈이 없어서 차를 바꾸지 못한 거라면, 서러워 눈물이라도 흘릴 일 아닌가. 

친구들은 다들 열심히 살았다. 남편들 역시 좋은 차가 어울릴 만큼 번듯한 직장에서 일한다. 분명히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아직도 그런 차를 타고 다니느냐”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자가용이야말로 내가 가진 지위와 부를 상징하는 즉물적 재산 아닌가. 차의 중요한 기능인 승차감보다, 내릴 때 남들이 바라보는 ‘하차감’에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그런 분위기에서 여전히 낡은 구식 차를 타는 친구 부부들의 무신경과 고집스러움, 자신감이 맘에 들었다. 역시 내 친구들답네. 우리가 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그 많은 동기들 틈에서 눈이 맞아 친해졌는지 알 것 같았다. 비슷한 깃털을 알아보고 끼리끼리 만난 것이다.

먹고 살 만한 내 친구들이 ‘헌 차’를 타는 건 제멋에 겨워 그렇다고 치자. 돈이 ‘억수로’ 많은 자산가가, 평생 차 한 대 없이 살았다면 믿어지는가. 아무리 천하의 구두쇠에다 인색한 자린고비라도, 나이 들어 힘들어지면 차 한 대쯤 굴리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여덟 살에 친어머니를 여의고, 가난해서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15세부터 한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해 78세까지 번 돈으로 수백 억 부자가 된 ‘김장하’ 선생.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부터 도무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지가로 살았다. 2023년 벽두부터 세간에 숱한 화제를 뿌린 ‘김장하’란 이름을 안 듣고 배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관련 기사를 읽어 볼수록 궁금증만 더해졌다. 

결국 ‘다시 보기’를 통해, MBC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찬찬히 돌려 봤다. 본인 허락을 받지 못했으므로,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 피상적으로 만든 영상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분의 이해하기 어려운 특별한 행적은, 사람들 뇌리에 ‘진주’라는 도시와 ‘어른’이라는 이미지를 뜨거운 도장처럼 각인하기에 충분했다. 

선생의 생애와 철학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까 싶어, 당연한 수순처럼 읽은 책 '줬으면 그만이지'. 김주완 기자가 책의 말미에 밝혔듯, 한 인물에 대해 쓴 흔한 평전이나 전기를 기대한 독자들은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와 마찬가지로, 김장하 선생이 목적성을 갖고 인터뷰이로서 구술한 얘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역시나 ‘차가 없는’ 특이한 기자가 두 발로 뛰어 다니면서 자료를 찾아내고,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엮인 인연을 파헤치며 아쉬운 대로 ‘취재기’를 완성했다. 생각해 보라. 앞에 나서기를 극도로 싫어하고, 자신의 삶과 선행에 대해 조개처럼 입을 꼭 다문 주인공의 책을 낸다는 일이 얼마나 고행이었을까. 

그래도 방송에선 미처 담을 수 없었던 김장하 선생의 글이나 연설문 등이 있어 좋았다. 그저 평범하고 선한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외모에 감춰진 ‘위대한 단초’를 약간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사재를 털어 진주 최고의 명문 사학으로 키운 ‘명신고등학교’를 사회에 환원하고, 이사장에서 퇴임하며 한 말이다.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평생 ‘노동’해서 번 돈으로 충분히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될 부자가 본인에게만은 어찌나 인색했는지. 그러나 남들에게는 아무런 대가 없이, 가타부타 일말의 간섭도 없이 충분히 베풀어준 김장하 선생.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 점은, 돈을 기부한 ‘남들’의 범위가 예사롭지 않게 촘촘하다는 사실이다.

마치 긴급 수혈한 소중한 피를 전달하는 실핏줄처럼, 진주의 학교와 역사, 언론과 문화, 여성 속으로 사방팔방 퍼져 있다. 어디에 도움이 더 절실하고, 어느 곳으로 흘러간 돈이 근본을 바꿀 수 있는지 깨달은 자의 의지가 드러난다.

돈을 버는 것에만 골몰하고, 천박하게 써대는 졸부들이 득세하는 구린 자본주의 세상 아닌가. 그 길을 역행하면서, 흔해빠진 자동차 한 대 없이, 30년 넘은 소파 위에서 번 돈으로 ‘나눔 철학’을 보여준 선생의 존재만으로도 썩는 냄새가 정화되는 듯하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선생의 의지와 상반되겠지만, 별 수 없다. 당분간, 아니 오랫동안 친구를 만나든, 술자리를 가든 ‘어른 김장하’를 화제 삼아 게거품을 물며 떠들어댈 거다. 기부와 보시로는 선생의 발끝에도 따라갈 수 없겠지만, ‘줬으면 그만이지’ 정신을 알리는 게 그나마 글 쓰는 자로서의 역할일 테니까.

“김장하 선생님을 닮고 싶은데 도저히 제가 따라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목표를 바꿨죠. 김장하의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이라도 되자. 그렇게 100명의 김장하, 1,000명의 김장하가 생기면 사람 사는 세상이 좀 더 빨리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녀체력

작가 이영미는 이제 ‘마녀체력’이란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27년간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살았다. 한국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대편집자란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책상에 앉아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지만, 갈수록 몸은 저질체력이 되어 갔다.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15년간 트라이애슬론으로 꾸준히 체력을 키워 나갔다. 그 경험담을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주제로 묶어 내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출판 에디터에서 작가로 변신했으며 <마녀체력> <마녀엄마> <걷기의 말들>을 썼다. 유튜브 지식강연 '세바시'를 비롯해 온오프라인에서 대중 강연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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