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부터 미국에 전기차 저가 모델 출시도 확대될 것으로 보여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저가 전기차 모델을 미국 시장에 조기 투입하는 것이 미국 전기차시장 점유율 확대에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올 가을 GM 쉐보레가 미국에 출시하는 이쿼녹스EV. < Chevrolet >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을 받지 못해 불리한 위치에 놓인 가운데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 가격경쟁도 본격화하며 이중고를 겪을 수 있어 보인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저가 전기차 모델을 미국 시장에 조기 투입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6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올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저가 전기차 모델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GM(제너럴모터스)은 올 가을 미국에 준중형 전기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쉐보레 브랜드 이쿼녹스EV를 3만 달러(약 3880만 원)의 가격에 출시한다.
2023년형 이쿼녹스 내연기관 모델의 미국 판매가격은 2만6300달러부터 시작한다. 멕시코 라모스 아리즈페 공장에서 생산되는 이쿼녹스EV는 최대 7500달러의 미 연방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면 2만2500달러에 살 수 있다. 내연기관차보다 4천 달러가량 낮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셈이다.
포드는 최근 올해 안에 중형 전기SUV 머스탱 마하-E의 유럽 판매 모델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하겠다고 밝혔다. 곧이어 미국 판매 모델에도 LFP 배터리를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머스탱 마하-E는 지난해 미국에서 3만9458대가 판매돼 테슬라 모델Y와 모델3에 이어 미국 전기차 판매 3위에 오른 포드의 대표 전기차 모델이다.
삼원계(NCM)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LFP 배터리와 비교해 무게와 부피, 기술력 등에서 진보된 기술로 평가받지만 가격 측면에서 LFP 배터리가 20~30% 저렴하다.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원가의 40%가량을 차지하는 만큼 포드는 LFP 배터리 채택을 통해 전기차 가격을 더욱 낮추며 판매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포드가 LFP 배터리를 도입함에 따라 고객들은 더 저렴해지는 첨단 배터리기술의 이점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슬라는 1일 미국 텍사스 테슬라 기가팩토리에서 '투자자의 날' 행사를 열고 차세대 전기차를 현재 생산 모델의 절반 수준 비용으로 제작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투자자들은 테슬라가 생산 비용을 줄여 2만5천~3만 달러(약 3200만~4천만 원)짜리 전기차를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10위권 전기차 모델들을 보면 GM 쉐보레 볼트EV를 제외하면 모두 미국에서 수요가 높은 준중형 이상 차급의 세단, SUV, 픽업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까지 브랜드 대표 전기차 라인업을 갖춘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올해부터 기존 모델 가격을 낮춰 수요층을 넓히고 낮은 차급의 저가 전기차를 내놓으며 미국 전기차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8월 시행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북미에서 최종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세액공제)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부분 전기차를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미국 전기차 경쟁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게다가 미국 시장에서 저가 모델이 늘어나면 판매에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21일 미국 앨라배마 공장(HMMA)에서 제네시스 GV70 전동화모델 현지 생산을 시작했으나 6만 달러 중반대 이상의 가격표가 붙은 프리미엄 모델로 점유율을 방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미국 시장에서 새로 저가 모델의 빠른 출시가 중요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기아는 지난달 고용안정소위원회를 열고 오토랜드 광명에서 내년 소형 전기SUV CT(프로젝트명)와 준중형 전기SUV SV(프로젝트명)를 생산하기로 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두 차종이 기아의 전용전기차 작명 방식에 따라 EV3와 EV4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V3의 가격은 현대차의 아이오닉5보다 1천만 원 이상 저렴한 3천만 원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역시 아이오닉5 아래 가격대가 낮은 전기차의 미국 출시를 서두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동차평가기관 캘리블루북에 따르면 올해 1월 미국 전체 신차 평균 판매 가격은 1달 전과 비교해 310달러 내린 반면 전기차 신차 평균 판매 가격은 테슬라 가격 인하의 영향을 받아 3363달러나 하락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 가운데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5.8%로 2021년의 3.2%보다 두배 가까이 높아졌다.
미국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저가 차량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GM의 사례를 보면 미국 현지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가운데 가장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한 쉐보레 볼트EV를 보유하고 있다.
2만 달러 중반대 가격표가 붙은 볼트EV는 리콜 이슈로 판매가 중단된 뒤 지난해 4월부터 미국 판매를 재개 했음에도 단 8개월 만에 미국에서 3만8120대가 판매되며 전기차 판매 4위에 올랐다.
미국 CNN은 볼트EV가 디자인과 기술 측면의 약점을 극복하고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로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테슬라의 미국 전기차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65%로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2020년 79%, 2021년 71%였던 점을 고려하면 점차 빠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포드는 7.6% 점유율로 2위를, 현대차그룹은 7.1% 점유율로 3위를 차지했다.
테슬라는 반값 전기차를 미국에 출시하기 전까지 높은 이익체력을 바탕으로 더욱 공격적 가격 할인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중형 전기 세단 아이오닉6와 대형 전기SUV EV9을 미국 전기차 시장에 내놓는데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 포드, GM과 달리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돼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자체 인센티브(판매장려금)를 높여 현대차의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이 완공되는 2025년까지 가격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절대강자 테슬라의 반값 전기차 출시가 예상보다는 늦어지고 있는 만큼 현대차그룹이 저가 전기차 모델을 미국에 신속하게 투입하는 것이 미국 전기차 생산기지가 구축되기까지 미국 전기차시장 점유율을 지키는데 관건이 될 것으로 자동차업계에서는 바라보고 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