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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知社知] 쿠로시오 해류가 바꾼 일본의 역사, 기업도 도메인 선택이 운명 가른다

진국영 jineman@careercare.co.kr 2023-02-27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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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知社知] 쿠로시오 해류가 바꾼 일본의 역사, 기업도 도메인 선택이 운명 가른다
▲ 기업의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기업의 사업 도메인을 결정하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열도의 끝은 서쪽 바다에 면해 있었다. 저 멀리 줄지어 있는 아열대의 섬들로부터 흘러온 바다는 열도 아래 남쪽을 어루만지며 태평양으로 빠져 나갔다. 온도가 높아 녹조가 끼기 어려운 맑은 바다는 하늘빛을 잔뜩 머금어 검푸른 색깔로 깊게 일렁였다. 

검은 바다 흑조(黑潮), 사람들은 그 바다를 그렇게 불렀다. 오늘날 쿠로시오 해류라고 알려져 있는 그 바다다.

1543년 8월의 어느 날, 쿠로시오 해류가 일본 열도와 만나는 첫 땅 규슈 서쪽 끝 섬 다네가시마(종자도, 種子島)에 배 한 척이 흘러 들어왔다. 길이 45m나 되는 대형선이었다. 중국 광주 인근 해양 무역에 종사하던 큰 배였다는데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아 태풍을 만나 노까지 잃어버린 상태에서 해류에 떠밀려 온 것이었다.

남만(南蠻) 배가 해류에 밀려오는 것은 흔하지는 않아도 처음은 아니었다. 지역 맹주였던 사쓰마번 영주 시마즈가문에 일단 상황을 보고해 놓고 도주 다네가시마 도키다카가 그들과 마주했다. 대부분 중국인이었지만 그 사이 포르투갈인들이 있었다. 이미 1511년 물류의 핵심 길목 말라카 해협을 점령한 포르투갈인들은 그 즈음 중국 남동해안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그 기다랗고 시커먼 물건은 무엇인가?' 중국인을 사이에 두고 필담으로 받은 답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답답했는지 포르투갈인들은 '직접 해 보이겠다'고 했다. 50보 전방에 놓아 둔 큰 조개껍질을 향해 불을 당겼다. 불꽃이 번쩍였고, 우뢰같은 소리가 나더니 조개껍질이 산산조각이 났다. 

16세기 유럽 대륙 전쟁의 판도를 바꾸고 있던 아르카부스식 화승총은 그렇게 일본에 전해졌다. 

이후 적게는 3만 정, 많게는 30만 정이나 카피 생산됐다는 그 총은 역사를 바꿨다. 무로마치막부가 힘이 빠진 후 1백 년 가까이 온갖 세력들이 칼부림만 할 뿐 자웅을 가리지 못했던 전쟁판은 조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단숨에 정리됐다. 

오다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 술 더 떴다. 전쟁의 판을 확 넓혀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1592년 4월12일 조총부대를 앞세워 대마도에서 해협을 넘었다. 전쟁은 7년을 끌었다.

◆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온 또 다른 이방인들 

전쟁이 끝난 지 1년을 갓 넘겼을 뿐인 1600년 4월19일, 같은 규슈 땅 아키타현 분코쿠구니(豊後国) 우스키항에 또 다른 서양 배가 한 척 표류해 왔다. 이번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리프데(Liefde)호 였다. 태평양 횡단을 목표로 5척이 출항했다가 4척이 나포되고, 폭풍에 가라앉아 도망간 뒤 혼자 살아남아 떠밀려 온 것이었다.

포르투갈과 첫 접촉을 한 지 이미 60여 년. 일본-마카오-리스본을 잇는 정기 항로 편까지 있었던 때였다. 조사하면 뭐라도 나올 게 당연했다. 당대 정권 책임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들과 직접 마주했다. 

포르투갈 사람이 아닌 서양인이 전해 주는 또 다른 서양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영국인 항해사 윌리엄 애덤스는 특히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항해술은 당연했지만 선박 제조술까지 갖고 있었다. 

애덤스는 리프데호에 실려 있던 5백 정의 소총, 19문의 대포, 5천 발의 포탄, 2.5톤의 화약 그리고 철제 갑옷 등 막대한 양의 서양 무기와 함께 일본에 남아 정착했다. 일본사에 미우라 안진(三浦按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서양인 출신 '푸른 눈의 사무라이'가 바로 그다.

그 덕분이었을까. 도쿠가와는 리프데호 도착 불과 5개월 후인 그 해 9월, 자신에 대항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지지세력과의 세키카와라 전투에서 쾌승한 데 이어 9년 후에는 '조용히 죽어 지내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다시 반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들 히데요리가가 지키던 오사카성을 영국 네덜란드제 대포를 동원해 깨뜨리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제1권력자가 되었다.

에도의 도쿠가와 막부는 영악했다. 전투적으로 공격적 포교를 했던 제수이트 교단 소속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신부가 주도하는 포르투갈 가톨릭 세력은 철저하고 잔인하게 탄압해 씨를 말리다시피 했지만 같은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장사하는 데에만 열심이었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어르고 달래며 곁에 두었다. 

나가사키 앞바다에 '데지마'라는 길이 180미터짜리 작은 인공 섬을 만들고 배의 정박과 거주를 허용했다. 배가 들어오면 일본 상인들이 데지마로 들어가서 네덜란드 물건을 내리고 다시 일본 물건을 올려 주는 식이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열도의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이 통제하는 데지마를 통한 거래만을 허용함으로써 모든 무역이익을 독점했으며 이 과정에서 쏟아지는 해외 정보까지 독식했다. 

땅은 인간의 행동을 규정한다.

도쿠가와 막부는 데지마-네덜란드 관로를 통해 서양 문명과 지식에 관음적으로 탐닉했다. 네덜란드 선원들은 일본에 들어오면 오고 가며 보고 들은 것은 물론 멀리 유럽의 정세까지도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데지마의 부와 지식은 에도 막부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 중의 하나였다.

권력은 1853년 또 다른 서양 함선, 미국의 '흑선'이 에도만(도쿄만)에 나타나 일본 - 네덜란드 독점 관계를 무너뜨릴 때까지 무려 270여 년 간 계속됐다. 증기선이었던 흑선은 동력선이었으므로 태풍이나 쿠로시오 해류를 무시하고 바로 권력의 중심 에도만에 나타난 것이 3백 년 전 포르투갈 배가 왔을 때와 달랐다면 달랐던 풍경이었다.

일본이 여타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다른 근현대를 꾸려낼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을 추리할 때 일본 열도의 지정학을 빼 놓기는 어렵다. 동아시아 끝자락에 위치해 있지만 남중국해로부터 발원하는 쿠로시오 해류의 종착역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 다른 점이었다. 

일본 열도는 대항해시대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해 온 서양 문명에 쉽게 자주 노출되었으며 유럽-아메리카-아시아를 연결하는 대 교역구조 아래로 일찌감치 편입돼 대규모 무역이익을 축적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땅은 인간의 생존 환경을 규정함으로써 행동 결과를 결과적으로 제약한다. 농작물의 종류와 수확량, 부양할 수 있는 인구, 거둬 들일 수 있는 세금, 징집할 수 있는 병력의 규모, 만들 수 있는 무기의 종류까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 

'어느 곳에 있는 어떤 땅'이냐는 것은 국가의 운명 그 자체였다.

기업이 사업을 영위하는 범위나 영역을 가리키는 '도메인'이란 말은 본래 '영토' '토지'를 가리키는 라틴어 Dominium에서 나온 말이다.

국가에게 땅이 그러하듯, 기업의 사업 도메인은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기본 조건이다. 도메인을 잘 정했을 때 노력은 큰 결실과 의미를 맺지만, 잘못된 도메인은 노력만 끝없이 잡아먹을 뿐 결국엔 결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기업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따라서 사업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이전에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를 설정하는 것이다. 전 근대 군주들의 가장 큰 숙제가 풍족한 식량이나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는 땅을 확보하는 것이었다면 현대 경영자들의 가장 큰 과제는 수익성을 보장할 사업 영역을 찾아내고 설정하는 것이다. 

◆ 기업 도메인 결정이 운명을 갈라

기업의 사업 도메인은 땅과는 달리 영원하지도 영속적이지도 장기적이지도 않다는 점에서 난이도는 더 높다. 어제의 성공적 도메인이 오늘은 전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기업의 도메인은 끊임없이 변한다. 기존 사업을 평가하고 새로운 사업을 옮겨 심고, 신규 사업영역을 붙여 내는 것은 기업가들에게는 숙명 같은 작업이다.

1990년대에서 2천년 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통신시장을 지배했던 핀란드 노키아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도메인의 중요성을 극적으로 설명한다. 러시아 눈치나 보고 살던 허약한 나라 핀란드의 기업 노키아의 출발은 소박하게 제지였다. 나무가 많았다. 

종이나 만들던 노키아는 그러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고무로 발을 뻗었는데 그러다보니 전선도 만들게 됐다. 종이가 전선이 되니 그 다음부터는 길이 보였다. 전선은 곧 통신 케이블이 됐고 케이블은 통신장비가 됐다. 단말기는 순식간이었다. 노키아는 한 때 핀란드를 먹여 살린다는 찬사까지 들었다. 

2010년 이후 노키아의 추락은 반대로 거만해진 노키아가 주특기인 도메인 바꾸기를 소홀히 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날아다니듯 이 나무 저 나무로 날렵했던 원숭이는 어느 순간 오랑우탄이 되어 한자리에 앉아 먹기만 했다. 도메인은 움직여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 노키아 주변 나무에는 더 이상 열매가 없었다.

거대한 쿠로시오 해류가 하나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가고시마 남단을 지나 일본 열도 남쪽을 길게 흘러 나가는 것이 큰 본류이기는 하지만 지류도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제주도를 지나 일본 열도와 한반도 사이를 흐르는 쓰시마난류인데 쓰시마난류는 대마도를 거쳐 동해안을 타고 오르는 동한난류로 이어진다.

동한난류가 매년 우리나라에 갖다 주는 것이 있다. 바로 방어. 난류성 어족인 방어는 여름에는 너무 더운 수온 탓에 살이 푸석해 '여름 방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평까지 듣지만 수온이 떨어지는 겨울에는 살이 쫀득해져 인기가 좋다. 모슬포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는데 매년 11-12월 모슬포에서는 방어축제가 열린다.  

동해난류를 따라 온 사람도 있다. 1653년 또 한명의 네덜란드인 항해사 하멜은 일본 나카사키로 가려다가 동해난류로 해류를 잘못 타는 바람에 제주도에 표류했다. 그는 이후 13년여를 조선에 머물렀지만 조선이 원했던 무기 기술은 없었던 탓에 고생 많이 한 것 빼고 나면 남겨 놓은 것 거의 없이 지내다가 1666년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일본 낭가삭기(郞可朔其)'를 거쳐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같은 쿠로시오 바다였지만 본류와 지류의 차이는 참으로 컸던 모양이었다. 진국영 커리어케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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