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애플이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는 '프레너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 |
[비즈니스포스트] "애플과 삼성전자는 평생의 프레너미(frenemies) 관계에 놓여 있다."
로이터는 스마트폰시장에서 두 회사가 이어가고 있던 경쟁의 역사를 돌아보는 분석기사에서 애플과 삼성전자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프레너미는 친구를 뜻하는 프렌드(friend), 적을 의미하는 에너미(enemy)를 결합한 신조어다. 겉보기에 가까워 보이는 두 대상이 사실은 서로 적대심이나 경쟁심을 보일 때, 또는 두 라이벌이 수면 아래에서는 친밀한 관계를 보이고 있을 때를 의미한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관계는 이 가운데 후자에 가깝다. 스마트폰을 넘어 차세대 IT기술 분야에서 끊임없이 경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한편으로 가장 중요한 고객사와 협력사의 입장에 놓였기 때문이다.
애플과 삼성전자 사이 협업의 역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플은 당시 음악 재생기기 아이팟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하드디스크 대신 낸드플래시 탑재를 추진하며 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을 찾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는 전체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던 삼성전자가 적임자라고 판단했고, 결국 애플과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자택으로 초청하는 등 친분을 쌓기도 했다.
두 회사의 협력은 아이폰의 핵심인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 삼성전자의 기술이 활용되며 더욱 깊어졌다. 아이폰 출시 초반에 반도체 설계 기술이 부족했던 애플은 삼성전자에서 프로세서를 사들여 탑재했다.
애플이 자체 프로세서 개발을 시작한 뒤에도 반도체 생산은 삼성전자가 담당하게 됐다. 애플은 아이폰 판매량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대만 TSMC에도 일부 물량 위탁생산을 주문하기 시작했는데, ‘칩게이트(Chipgate)’ 사건 이후 삼성전자와 관계가 멀어지게 됐다.
칩게이트는 아이폰6S 시리즈를 구매한 일부 사용자가 프로세서 위탁생산 업체에 따라 제품의 배터리 지속 시간 등 성능에 차이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진 사건이다.
애플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컨슈머리포트 등 외부기관의 조사에서도 두 종류의 아이폰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지만 이미 논란은 크게 확산된 뒤였다. 결국 애플은 이듬해 출시한 아이폰7 전용 프로세서부터 TSMC의 파운드리만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애플이 2017년 출시한 아이폰X부터 LCD 대신 올레드(OLED) 디스플레이를 적용하기 시작하며 삼성전자와 협력 관계는 오히려 더욱 깊어지게 됐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가 중소형 올레드패널 기술력 및 양산 능력에서 경쟁사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플은 삼성디스플레이를 올레드패널 핵심 공급사로 두고 있다. LG디스플레이와 중국 BOE 등 기업도 올레드 협력업체로 진입했지만 삼성디스플레이는 여전히 전체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애플은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 맥북 등 다른 제품까지 올레드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향후 폴더블 아이폰을 출시하거나 증강현실 헤드셋, 애플카 등 차세대 제품 생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면 삼성디스플레이와 우선적으로 패널 공급을 논의하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내부. <삼성전자> |
삼성전자와 애플의 협력에 가장 관건으로 꼽히는 일은 반도체 파운드리사업에서 협력을 재개할 수 있을지 여부다. 애플의 시스템반도체는 TSMC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애플을 고객사로 수주하는 것은 삼성전자가 최대 경쟁사인 TSMC를 추격하는 데 핵심이 될 수 있다.
애플은 세계 IT산업의 중심으로 꼽히는 데다 부품의 품질 기준을 까다롭게 평가하기로 유명하다. 애플이 삼성전자 3나노 등 첨단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하기 시작한다면 엔비디아와 퀄컴, AMD 등 다른 대형 고객사의 반도체 위탁생산 수주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애플은 과거의 칩게이트 논란, 삼성전자와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 상황 등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파운드리 기술 고도화에 따른 단가 상승과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는 애플이 TSMC에만 위탁생산을 맡기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애플 입장에서 단일 파운드리업체에 반도체 공급을 의존하는 것은 가격 협상에 불리한 요인이다. 특히 3나노 파운드리 단가가 기존 5나노 대비 25% 상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삼성전자와 TSMC가 이를 두고 가격 경쟁을 벌인다면 애플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TSMC가 최첨단 반도체 기술을 대만 공장에만 들이겠다는 계획을 세운 만큼 중국의 침공 등 사태가 발생한다면 애플이 아이폰 등 제품을 아예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다수의 글로벌 반도체기업은 이미 이런 시나리오를 고려해 TSMC와 삼성전자에 위탁생산을 나누어 맡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애플이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활용하는 일은 이러한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구나 삼성전자의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력이 지금처럼 TSMC를 앞서 나가고 있다면 수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애플은 최근 5G 통신모뎀과 블루투스 및 와이파이칩 등 통신반도체를 퀄컴이나 브로드컴 등 외부 기업에서 사들이는 대신 자체적으로 설계하는 비중을 늘리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위탁생산을 맡겨야 하는 반도체 물량도 늘어나는 만큼 삼성전자의 협력 기회는 더욱 커지게 된다.
결국 삼성전자와 애플은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및 사물인터넷 플랫폼, 스마트카 등 여러 사업 분야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는 가운데도 오히려 협력을 더욱 확대할 수밖에 없는 프레너미 관계를 더욱 강화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부품 공급망 수직계열화 구조를 더욱 발전시키려는 삼성전자의 전략과 자체 생태계에 연결되는 다양한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애플의 전략은 두 회사의 협력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대결도, 협력도 모두 두 회사가 각자의 분야에서 성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김용원 기자
[편집자주] 2023년,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및 국가 경쟁력에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재 전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경제팀에서 연재하는 [삼성의 라이벌] 기획은 삼성전자와 주요 라이벌 기업 사이의 경쟁 판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삼성의 현 위치를 짚어보고 이러한 경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삼성의 위기 극복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진단한다.
2부- 삼성 vs APPLE
(5) 삼성전자 초연결 시대에 올인, 애플 ‘시리 혁명’에 대응
(6) 삼성전자가 애플 반도체 위탁생산할까, ‘프레너미’ 관계 주목
(7) 스티브 잡스의 'Think Different', 이건희의 '철저히 바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