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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effect] 명상 살인, ‘진상’ 고객에게 몹시 시달리는 ‘을’이 읽으면 좋은 책

마녀체력 withbutton@icloud.com 2023-02-0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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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effect] 명상 살인, ‘진상’ 고객에게 몹시 시달리는 ‘을’이 읽으면 좋은 책
▲ 이혼 전문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 '남이 될 수 있을까' 포스터 이미지. < ENA >
[비즈니스포스트] 지인 중에 이혼 전문 변호사가 있다.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돈을 꽤 많이 버는 것 같다. 안 그래도 강남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이번엔 노른자위라 부르는 곳으로 확장 이사를 했단다.

강북의 구석진 아파트에서 꼼짝 않고 20년 넘게 살고 있는 나로서는, 피라미드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일이다. 돈도 후딱 벌고, 이사도 번쩍 잘 다니니 말이다.

지나가는 말로 “부럽다” 했더니, 모르는 소리 하지도 말라나. 남 보기엔 번듯해 보여도, 그만큼 스트레스 강도가 높다는 거다.

하긴 좋은 소리도 몇 번 반복해서 들으면 지겨운 법이다. 그런데 의뢰인들이 지지고 볶으며 싸워댄 얘기를 주구장천 들어야 하니 괴로울 만도 하겠다. 그러고 보니 저번보다 탈모가 심해진 듯도 하고.

그에 비하면 내가 해왔던 편집자란 직업은 ‘품격’이 높은 편이다. 물론 급여의 피라미드로만 친다면 거의 아래쪽 칸에 위치할 게 틀림없지만. 그런데 무슨 품격이냐고? 상대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편집자의 주요 임무란 책을 만드는 일이다. 책을 만들려면, 원고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대부분 원고를 쓸 만한 지력을 갖춘 사람들만 만난다.

우리 사회는, 자기가 품은 생각을 글로 명료 정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꽤 대접한다. 그중에서도, 일반인들이 글을 읽고 뭔가 배울 점이 있어야 책의 저자로 낙점될 것이 아닌가. 그런 저자들을 상대한다는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없었다면, 27년간이나 편집자로 살지는 못했으리라.

대부분의 저자는 본인이 쓴 글과 성품이 크게 엇나가지 않고 비슷한 행보를 이어 나간다.(하하! 나는 그런 쪽이다, 믿어주시길) 간혹 가다 삶과 글의 동질성 진위가 퍽 의심스러운 저자를 만날 때가 있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어느 유명한 소설가는 어린 편집자였던 내게 전화를 걸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되게 높은 선인세를 요구하면서.

거의 책의 완성 단계까지 왔는데, 작은 문제를 꼬투리 잡아 계약 파기를 운운하며 괴롭히던 왕재수가 기억난다. 그뿐인가. 합의하에 며칠 밤을 새며 조악한 글을 고쳐놨더니, 원상 복구해 놓으라고 징징대던 진상도 있었다.

그런 일을 당하면 버티고 있던 자존심이 두 동강 난다. 소심하기 그지없는 나 같은 사람도 순간 살의가 솟구칠 만큼 꼭지가 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판에선 철저하게 저자가 갑인데. 나같은 '품격 높은' 편집자가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지금까지 한 일이 무위도식이 되지 않으려면, 잘 달래가며 아무튼 책을 완성해야 한다.

아무리 저자가 미워도, 책 안에 오탈자를 가득 넣거나 인세를 떼어먹을 수는 없다. 기껏 복수라 해봤자, 판권에서 ‘책임편집자’ 이름을 빼버리는 정도랄까.

맞다, 변호사에게도 클라이언트는 갑이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니 함부로 내팽개칠 수 없지만, 머리가 지끈지끈할 만큼 지긋지긋한 의뢰인이 있다면 어떨까. 위에 언급했던 지인한테 직접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마녀체력 effect] 명상 살인, ‘진상’ 고객에게 몹시 시달리는 ‘을’이 읽으면 좋은 책
▲ 책 '명상 살인'(카르스텐 두세, 박제헌 옮김, 세계사) 표지 이미지.
책 '명상 살인'을 읽고 나니, 왜 탈모가 심해지는지 알 것 같았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미리 말해 두자면, 나는 결코 난폭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일례로 나는 평생 동안 누군가를 때린 적이 없다. 그리고 마흔두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살인을 했다. 현재 업무 환경에 비추어 보면 도리어 늦은 감이 있다. 인정하건대, 일주일 뒤 여섯 건이 추가되긴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변호사 비요른은 골칫덩어리이자 막무가내인 의뢰인을 아예 죽여 버린다. 살인과는 가장 인연이 멀 것 같은 명상의 도움을 받으며, 차근차근 뒷수습을 해 나간다.

누가 진짜 범인인지 추적하는 고전적인 범죄 소설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살인 전과 살인 후, 반드시 꼬이기 마련인 알리바이와 초강도 스트레스를 교묘하게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랄까. 일명 ‘살인증후군을 겪는 자에게 권하는 추천 도서’다.

실제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 카르스텐 두세가 쓴 책이라 현실감이 뛰어나다. 수년간 방송 작가로도 일한 덕분인지, 독일 소설답지 않게 위트가 차고 넘친다.

뭣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웬만한 책보다 더 지혜로운 마인드 컨트롤 전략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반드시 마주치는 분기탱천하고 살기등등한 위기 상황에서, 명상 코치가 장마다 제안하는 명상의 기술은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현대를 살아가는 멀티태스킹의 신봉자들에게 제안한다.

“한정된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끝내려고 할수록 당신은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를 멀티태스킹이라 한다. 당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잘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 일부터 완수하라. 이것이 싱글태스킹이다. 첫 번째 일이 끝난 후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일을 하라.”


타인의 무례함에 화를 내거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이다.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하길 주저하지 마라. 가식으로 포장한 무례함 앞에서는 단호해져라. 부당한 요구에 맞서는 가장 좋은 대답은 이러하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해줘서 고맙습니다. 아쉽지만 그 소원은 이뤄줄 수가 없군요.’”


이혼 전문 변호사가, 툭하면 과거 잘못을 끄집어내 싸우는 부부에게 해줄 법한 문장도 있다.

“고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바로 상처의 고통과 그 상처를 후비는 고통이다. 상처는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상처를 후비는 걸 막으면 상처는 더 빨리 치유된다.”


잔인한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소설을 쓴 작가도 그리 쉽게 끝내면 ‘도덕적으로’ 안 된다고 여겼나? 후속편이 두 권 더 나와 있으니, 얼른 읽어 봐야겠다. 마녀체력
 
작가 이영미는 이제 ‘마녀체력’이란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27년간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살았다. 한국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대편집자란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책상에 앉아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지만, 갈수록 몸은 저질체력이 되어 갔다.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15년간 트라이애슬론으로 꾸준히 체력을 키워 나갔다. 그 경험담을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주제로 묶어 내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출판 에디터에서 작가로 변신했으며 <마녀체력> <마녀엄마> <걷기의 말들>을 썼다. 유튜브 지식강연 '세바시'를 비롯해 온오프라인에서 대중 강연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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