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3-01-25 1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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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내연기관 자동차의 대량생산 체제를 열었던 미국 포드가 전기차 시대를 맞아 대규모 인력 감축을 추진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에서 포드와 전기차 판매에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전기차 시대 생산체제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인력 운용을 놓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고민이 깊을 것으로 예상된다.
▲ 현대차그룹과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포드가 대규모 인력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 생산체제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인력 운용을 놓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고심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정의선 회장이 3일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신년사를 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25일 로이터에 따르면 포드는 유럽 전역에서 최대 3200개의 일자리를 감축하고 일부 제품 개발 작업을 미국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 이와 관련해 포드의 독일법인 대변인은 전기차로의 생산 전환 과정에서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7월 블룸버그는 포드가 전기차 사업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8천 명 이상을 감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포드는 지난해 하반기 실제로 미국에서 약 3천 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포드는 100여년 전 자동차 생산 공장에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해 내연기관 자동차 대량생산 체제를 확립한 회사다. 포드는 전기차 시대 맞아 다시한번 생산 효율 높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로이터에선 최근 테슬라가 가격을 인하한 것이 포드에 비용 절감 압력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전기차 1위 업체 테슬라는 최근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늘자 이달 미국과 유럽에서 모델별로 최대 20%까지 파격적 할인을 단행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판매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미국에서 박빙의 전기차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는 포드의 감원 조치가 인력 운용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자동차 시장 조사업체 워즈 인텔리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해 미국 자동차 판매량은 2021년보다 8% 줄어든 1370만 대로 2011년 이후 가장 저조한 기록을 보였다.
이와 달리 전기차 판매량은 1년 전보다 60% 이상 늘어난 80만7180대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비중은 3.2%에서 5.8%로 두배 가까이 급증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브랜드 위상을 다지기 위해 초기 점유율 확보가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지난해 포드는 7.6% 점유율로 2위를, 현대차그룹은 7.1% 점유율로 3위를 차지했다.
테슬라가 65%를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으나 2021년에 기록한 72%와 비교해서는 시장 장악력이 크게 후퇴하고 있다.
내연기관차를 만들던 기존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신모델을 잇따라 내놓으며 미국 전기차 경쟁이 본격화하자 전기차만 생산하던 테슬라는 가격 인하로, 기존 완성차업체들은 비용 절감으로 전기차 경쟁력 높이기에 힘을 쏟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전기차 전환기를 맞아 인력 감축에 나선 글로벌 완성차업체는 포드뿐만이 아니다.
2021년 3월 독일 폭스바겐은 올해까지 최대 5천 명의 인원을 내보내고 고정비를 줄여 전기차 개발 자금을 확보하기로 했다.
프랑스 르노는 지난해부터 2024년까지 기술직 1600명, 지원 부문 400명 등 내연기관 관련 인력 2천 명을 줄이는 방침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GM(제너럴모터스)도 2019년 4천여 명을 해고했다. 두 회사 모두 구조조정을 놓고 전기차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전기차 전환기 완성차업체들이 인력 감축에 나서는 데는 비용절감 뿐 아니라 사업구조 전환에 따른 구조적 변동에 의한 요인도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기차 생산에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인력 투입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전해진다.
내연기관차의 부품 수는 약 3만 개에 달했으나 전기차 부품 수는 2만 개 미만으로 내연기관차의 약 60%에 그친다. 더구나 전기차 생산에 있어서는 각각의 부품이 아닌 기능별로 묶어 제작하는 '모듈화'가 이뤄져 조립 공정도 크게 줄어든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아이오닉5와 EV6 등 상품성 높은 전기차 라인업으로 성공적 전동화 체제 전환을 시작한 데 이어 올해 전기차 분야에서 선도적 입지를 다질 계획을 갖고 있다.
정 회장은 최근 신년회에서 "올해에도 더욱 진화된 차량을 개발하고 공급해 글로벌 전기차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 전동화 체제 전환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완성차업체들이 인력 감축을 통해 전기차 경쟁력 확보에 나서면서 정 회장으로서는 전기차 전환기 인력 운영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기아 노사는 경기도 화성에서 목적기반차량(PBV)을 생산할 전기차 전용공장을 착공하는데 1년 가까이 갈등을 빚었다.
기아는 애초 2025년 7월 양산을 목표로 연 10만 대 규모로 준공한 뒤 최대 15만 대까지 생산능력을 늘릴 계획을 세웠으나 기아 노조는 고용 안정을 위해 20만 대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기아 노사는 이달 13일 고용안정소위원회에서 노조 측이 주장한 20만 대 안에 합의하고 올 1분기 착공에 들어가기로 했다.
현대차 단체협약 조약은 신차종을 양산할 때 생산량과 투입인력을 노조와 사전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해외 공장 시설 투자시에도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때는 고용안정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기아 단체협약 조항도 현대차와 동일한 상황에서 '노사 의견을 일치시켜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경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생산 관련 인력 운영에 있어 갈등과 지연 사례가 지속된다면 전기차 경쟁력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현대차는 올해 울산에 전기차 전용공장을 착공한다. 다만 기아가 화성 PBV 공장 건설 과정에서 겪은 갈등이 되풀이될 공산이 커 보인다. 이는 올해 전기차 분야 선도 업체로 도약할 계획을 갖고 있는 정 회장이 앞으로 전기차 관련 투자에서 가질 수 있는 추진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기준 4% 수준인 현대차·제네시스의 전기차 판매비중을 2026년 17%, 2030년 36%로 높일 계획을 세웠다. 기아도 2030년까지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109만9천대를 판매해 해당 시장의 전기차 판매 비중을 45%까지 끌어올리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시대를 맞아 인력 운용에 변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