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이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조직 개편과 임원 쇄신인사를 마무리한 다음날 새롭게 구성된 임원진과 함께한 대책회의 자리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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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창규 KT 회장 |
황 회장은 28일 임원회의에서 “현재 KT는 핵심인 통신 사업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된데다 비통신 분야의 가시적 성과 부재, 직원들의 사기 저하 등으로 인해 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KT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막중한 소명을 받은 만큼 사활을 걸고 경영 정상화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비상 경영 실천과 관련해 먼저 CEO가 기준급의 30%를 반납하고, 장기성과급 역시 회사의 성장 가능성이 보일 때까지 받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황 회장의 올해 연봉은 2012년도 KT CEO 대비 6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임원들 역시 기준급의 10%를 자진 반납하기로 뜻을 모았다. CEO와 임원들의 연봉 반납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는 인사에 따른 임원 수 축소와 더불어 200억 원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KT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의 급여가 과도하게 많아 경영진과 일반 직원들간의 괴리감이 컸다. 황 회장과 주요 임원들의 기본급 반납은 황 회장이 이런 점을 간파해 임직원들간의 갈등을 미리 봉합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더 나아가 기본급 반납은 내부 직원들에게 비상 경영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선택한 ‘강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KT는 공기업과 비슷한 문화라는 지적을 그동안 받아왔다. 조직이 관료화되어 있다는 비판도 강했다. 이런 조직에서 아무리 ‘비상 경영’을 외쳐도 그 효과는 미비하다. 따라서 CEO를 비롯해 고위 임원들이 급여를 반납하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비로소 위기임을 자각하게 되고, ‘비상 경영’이 구호로 그치지 않고 조직 내부로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의 위기 의식은 최근의 실적에서 드러난다. 국내 최대 통신기업이자 재계 11위 KT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는 평가다. 유선통신시장 1위, 무선시장 2위에 안주해 지난해 4분기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28일 발표된 지난 4분기 실적을 보면 매출액은 62억1,400만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변동이 없으나, 영업손실은 1,493억6,800만원으로 적자 전환했고, 당기순손실도 3,006억5,200만원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연간 실적을 보면 이석채 회장 재임시절인 2011년 약 28조원의 매출로 정점을 찍은 뒤 이후부터 급격히 줄어들어 2013년 매출은 약 24조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며, 지난해 순이익은 약 4,500억원으로 이석채 전임 회장 취임 첫해인 2009년 5,600억에 크게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실적과 판이하게 조직은 매우 비대하다. 현재 KT는 본사만 3만2,000여명, 계열사까지 6만여명이 근무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T 계열사는 지난 2009년초 30개에서 지난달 기준 53개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이석채 전임 회장이 새로운 수익처를 찾기 위해 ‘탈통신’을 외치며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대한 탓이다. 이러다 보니 문어발식 확장으로 그룹의 몸집은 커졌지만 통신과의 유기적 체제를 바탕으로 한 실적향상은 미미했다.
황 회장은 비상 경영을 선포하면서 향후 모든 투자와 비용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계열사를 포함해 부진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런 KT의 현실을 파악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황 회장 앞에 놓인 과제는 ‘실적 개선’이라는 말로 집약된다.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유선통신 사업의 매출 감소나, 무선통신 분야 보조금 지급 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등을 해결해야 한다. 통신 시장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에 신사업 발굴에 대한 압박도 큰 편이다. 황 회장이 ‘미래융합전략실’을 신설한 것도 이런 현실인식의 결과이다.
황 회장이 취임 이후 거듭 ‘현장 중심의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실적 개선이라는 압박의 결과로 분석된다. 황 회장은 "현장으로 조직과 인사, 재원이 모이는 현장 경영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황 회장이 "각 부서장에겐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하되 행사한 권한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책임경영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황 회장은 진흥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는 성공했지만, 규제산업인 통신 경험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성과주의로 대변되는 삼성의 경쟁문화와 달리, KT는 아직도 공기업 인식이 남아있는 조직문화에서 탈바꿈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통신 비전문가인 황 회장이 단기 실적 개선에만 매달리다가는 KT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