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겸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사진)이 4일(현지시간) 'CES 2023' 개막을 앞두고 열린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HD현대그룹의 새 비전 '오션 프랜스포메이션(바다의 근본적 대전환)'을 소개하고 있다. < HD현대 > |
[비즈니스포스트]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겸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이 2년 연속 세계 최대 전자·TI 전시회 ‘CES’에서 HD현대그룹을 대표해 전면에 나서며 경영보폭을 넓히고 있다.
HD현대그룹은 ‘
정기선 시대’를 맞아 중공업 이미지를 벗고 기술 중심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있다.
HD현대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 개선과 넉넉한 보유 현금은 정 사장이 비전 실현을 위한 투자를 실행하는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비상장 계열사들의 잇따른 상장 철회는 투자금 마련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CES2023’에서 국내 10대 그룹 오너경영인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정 사장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CES2023에 직접 전시관을 운영하고 참가하는 10대 그룹 가운데 오너경영인으로는 대한상공회의소를 통해 재계를 이끄는 최 회장과 함께 정 사장이 참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장 승진 1년이 조금 넘은 정 사장이 2년 연속 CES에서 HD현대그룹의 청사진을 내놓으면서 경영보폭을 확대하는데 시선이 쏠리는 것이다.
‘범현대가’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CES2023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해 CES2022에서는 정의선 회장이 직접 사촌동생
정기선 사장의 기자간담회 발표 무대를 지켜본 뒤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은 CES2023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HD현대그룹의 ‘오션 트랜스포메이션(바다의 근본적 대전환)’ 비전을 직접 소개했다.
정 사장은 HD현대그룹이 처음으로 참가한 지난해 ‘CES 2022’에서도 직접 그룹의 50년을 책임질 비전으로 ‘퓨처빌더(Future Builder)’를 제시했다.
HD현대그룹의 퓨처빌더는 지금까지 없던 ‘혁신 기술'로 미래를 구상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발표한 ‘오션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은 퓨처빌더로서의 역할과 방향성을 구체화했다.
HD현대그룹은 정 사장의 이런 전략에 따라 2027년까지 친환경 전환과 디지털 전환 분야에 21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업 본연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생산 자동화·무인화 구축 등에 12조 원, 탄소 포집·수소 가치사슬 구축·친환경 바이오 기술개발 등에 7조 원, 자율운항기술 등 디지털 분야에 1조 원, 혁신기업 인수합병 및 지분투자 등에 1조 원을 투입한다.
주요 계열사들이 전반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거두면서 이익창출력을 높여간다는 점은 정 사장이 오션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을 펼치는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 투자에 앞서 현재 사업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는 것은 정 사장의 미래 계획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지난해 HD현대는 유가 상승에 따른 현대오일뱅크 호조에 힘입어 연결기준 영업이익 4조1천억 원 이상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한국조선해양도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1887억 원을 내며 4개 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고부가가치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일감을 통해 올해부터는 연간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그룹에서는 비상장 계열사들의 잇단 기업공개 무산에도 보유 현금이 넉넉해 향후 투자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HD현대는 지난해 3분기 말 연결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만 5조6347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조선해양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을 3조6345억 원 들고 있다.
다만 기업공개(IPO) 시장 한파에 현대삼호중공업, 현대오일뱅크 등 대어급 비상장 계열사들이 상장 계획을 접은 점은 정 사장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데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기업공개는 자금을 한 번에 대거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의 기업가치는 2조5천억 원가량, 현대오일뱅크는 10조 원가량으로 추산됐다.
기업공개를 진행하는 기업에 현금이 유입되는 신주 발행을 통해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오일뱅크가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뒤로 밀린 것이다.
또 그룹 조선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이 현대삼호중공업 지분 80.54%를, 그룹 지주사 HD현대가 현대오일뱅크 지분 73.85%를 보유한 점을 고려하면 지배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구주 매출을 통해 모회사들도 많은 자금을 수혈할 수도 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3일,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7월 각각 상장 추진을 철회했다. 특히
권오갑 HD현대그룹 회장이 지난해 신년사에서 그 중요성을 따로 짚었던 만큼 현대오일뱅크의 상장 무산은 예상 기업가치를 고려해봤을 때 아쉬운 결과다. 자회사 상장 추진은 정 사장이 미래 사업을 위한 투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앞으로도 좀 더 신경을 써야 대목으로 꼽힌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현대삼호중공업은 실적 개선 기대감이 큰 상황에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회사가 보유한 현금이 적지 않은 만큼 향후 투자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이날 프레스 콘퍼런스를 마치고 국내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날 발표한 비전을 놓고 "단순히 기술적 측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도록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라며 미래 투자를 향한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