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날씨통제사'는 기후위기, 환경 등 다양한 사회주제를 독특한 분위기로 담은 SF소설이다. 사진은 '날씨통제사'를 쓴 최정화 작가.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스스로는 자기를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그는 '전사' 같았다.
전사로서 그가 손에 든 소설이었다. 작가는 소설이야말로 자신이 현실에 뛰어드는 가장 적극적인 통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기괴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은 작가가 겪은 현실의 조각들을 모아 SF로 쓴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출간된 소설 '날씨통제사'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신간 ‘날씨통제사’의 최정화 작가(44)를 비즈니스포스트가 서울 영등포구 합정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 작가는 10년 차 소설가다.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에 단편 ‘팜비치’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모두 8권의 소설집과 4권의 에세이집을 냈다.
“처음 등단 했을 땐 책을 쓰는 스타일에 관해 고민했어요. 문체에 개성을 담는다는 식의 생각이었죠.”
강산이 변하는 시간 동안 그의 소설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옛날에는 ‘소설이란 뭘까’에 집중했다면 요즘엔 ‘세상에서 소설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것을 바라보게 돼요.”
최 작가는 글을 쓸 때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것 같다고 했다.
"소설 자체보다 주제의 비중이 커졌다고나 해야 할까요. (스스로) ‘이 세상에 무슨 말이 필요하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환경, 여성,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주제 가운데 기후변화에 관한 그의 관심은 각별하다. 모두 8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날씨통제사’ 가운데 3편이 기후변화에 관한 내용이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자면 문학이 기후운동이라는 기능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말을 들려주니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을 쓰기 전 그는 환경잡지사에서 사무보조로 일했다. 녹색연합에서 함께 일했던 대학친구는 여름 소나기를 보고 “지금 이 비, 아열대에서 내려야 하는 스콜인데 잘못 내리고 있어”라고 설명해줬다.
기후변화를 체감한 건 지난해였다. 여름에는 폭우로 가구들에 곰팡이가 피었다. 겨울에는 한파로 단수가 됐다. 그러다 갑자기 봄 같이 날씨가 따뜻해져 겨울인데도 모기가 집 안을 날아다녔다.
어느날 라디오에서는 모기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모기의 염색체를 바꿔 불임 모기를 퍼뜨린다는 내용이 나왔다.
라디오디제이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자연을 순환시켜 모기 개체를 자연스럽게 줄이는 대신, 인위적으로 모기 수를 줄이는 뉴스는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소설을 써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최 작가는 모기처럼 날씨조차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 최 작가는 기후변화 문제를 갈급한 마음으로 썼다고 고백했다. 사진은 날씨통제사 이미지. <창비교육> |
기후변화가 심각해진 2029년의 날씨는 겨울과 여름이 차례로 나타나는 등 제멋대로의 모습을 보인다. 인류는 날씨를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하면서 '날씨통제사'라는 기괴한 직업을 만들어냈다. 날씨를 통제한다고는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은 철저히 무력하다.
“소설 속 인물들이 무력하다고 느꼈다면 그 이유는 소설 속 인물들이 너무 늦게 움직였기 때문일 거에요. 소설의 마지막을 보면 그들이 실제로 행동했어야 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농담으로 넘겨버리고 말죠. 불이 났으면 벌떡 일어나서 불을 꺼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의 소설 속에서 인류는 기후위기라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날씨통제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낸다. 현실 속에서 과학자들이 불임 모기를 만들어낸 것과 소설 속 인물들이 날씨통제사를 만들어낸 인류의 모습은 닮아 있다.
“자연 그 자체가 순환해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인간은 그것조차 인위적으로 통제하려 합니다. ‘날씨통제사’는 지구가 죽은 슬픈 시대에 나오는 직업군이죠.”
현실에서도 아이러니는 지속되고 있다. 그는 기후위기 앞에서 기업이 ‘안도감’을 생산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령 2030년까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해내겠다고 말하는 기업들의 광고는 사람들에게 기후위기에 관한 위기감을 역설적으로 앗아나간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광고는, 이름표는 ‘기후위기’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을 안심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기후 해결책은 이미 늦었는데 사람들은 기후문제를 ‘먼 미래의 이야기구나, 어찌 됐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구나’ 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안도하게 되거든요. 그런 걸 볼 때마다 안타까워요.”
마음이 급해졌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급한 마음은 소설에도 묻어 나왔다.
“소설을 쓰면서 어떤 땐 소설 톤을 버리고 현실에서의 말투가 튀어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스스로 마음이 급하다는 게 느껴졌어요. 비록 주제가 소설 속에서 세련되게 남아 있지 않고 소설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지만 그래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할 이야기는 할 때라고 느꼈거든요.”
그가 보기에 우리가 지금 누리는 편리함은 다른 생물체에게 빼앗아 온 것이다.
최 작가는 지난주에 수도가 터져서 5일을 씻지 못한 상황이 있었다고 말했다.
"손톱 아래에 때가 끼고 몸에선 냄새가 났어요. 너무 불편해서 엉엉 울었죠. 그걸 겪고 나서 내가 누리던 깨끗한 손은 사실 자연에 있는 다른 생명체에게 빼앗아 온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인간은 자연에서 다른 생명체가 누려야 하는 것을 빼앗아 쓰고 있습니다.”
인류가 고통을 감내하면서라도 환경을 원래대로 회복시켜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과학자들은 19세부터 기후온난화를 말했습니다. 제가 겪었던 5일 동안의 상황처럼 우리가 난관을 겪어야 환경은 돌아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울면서라도 환경을 회복시켜야 해요. 그동안 재앙이 찾아오도록 방관한 우리가 져야하는 책임입니다.”
인터뷰 말미, ‘날씨통제사’ 책에 최 작가의 사인을 요청했다. 그는 자신이 쓴 책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읽어보더니 한 문장을 적어 기자에게 건넸다.
“신에게서 받은 것을 다시 신에게.”
신이 존재한다면, 이미 인류는 신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 죄를 씻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 속 날씨통제사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박소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