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정치

[Who Is ?] 한덕수 국무총리

엘리트 코스 정통 관료, 진영 오가는 처신의 달인 [2023년]
김남형 기자 knh@businesspost.co.kr 2023-01-02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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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한덕수 국무총리
▲ 한덕수 국무총리.

한덕수는 국무총리다.

윤석열정부가 강조하는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개혁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 침체 조짐이 나타나면서 무역적자가 크게 늘어나는 등 경제사회 전반이 위기로 내몰리고 있어 안정적 국정운영과 함께 위기극복을 위해 국력을 모으는데 힘쓰고 있다.

1949년 6월18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경제학과)을 졸업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3학년 때 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발을 들였다.

상공부에서 대외경제협력을 담당하는 직책을 주로 거쳤고, 김대중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중국의 한국산 휴대폰 수입규제와 한국의 중국산 마늘 수입규제를 맞바꿔 완화하는 '한중 마늘협상' 관련 파동으로 경제수석에서 경질되면서 잠시 공직을 떠났다.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으로 공직에 복귀해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체결지원위원장을 맡아 한미FTA 협상을 주도한 뒤 국무총리에 발탁됐다.

이명박정부에서 주미대사로 활동했고, 박근혜정부에서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지냈다. 2022년 윤석열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정통 관료 출신으로 꼼꼼하면서도 성품이 원만하다. 일처리를 합리적으로 한다는 평을 듣는다.

경영활동의 공과


△규제개선·국민안전 등 현안 행보
한덕수는 윤석열 정부의 규제 합리화 정책에 따라 규제를 개선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2022년 5월24일 규제혁신장관회의를 열어 규제 혁신 과제 발굴에 착수했고, 8월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고 규제혁신 행보를 본격화했다. 국무총리를 단장으로 한 150여 명 규모의 규제혁신추진단도 꾸렸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김종갑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 류충렬 전 국무총리실 경제조정실장 등이 규제혁신추진단 자문단에 참여했다.

한덕수는 투자애로·규제개선 현장간담회도 진행했다. 6월 SK하이닉스와 벤처·스타트업, 7월 더존비즈온·네이버·카카오·쿠팡 등 데이터·인공지능 분야 기업, 8월 식품 분야 기업, 9월 외국인투자 기업 관계자들을 차례로 만나 의견을 들은 뒤 10월까지 기업애로 30개를 해소했다.

한덕수는 2022년 11월 제2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010건의 규제를 발굴해 275건의 개선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으로서 코로나19, 호우, 태풍 등 각종 재난 대응을 총지휘했다.

2022년 5월27일 처음으로 중대본 회의를 주재한 이후 매주 코로나19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8월 집중호우, 9월 태풍 힌남노·난마돌 등과 관련해 대비 및 대처 상황 점검회의를 통해 안전 대책을 마련해 시행했다.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 16일까지 매일 중대본 회의를 열고 사고 수습 및 재난 대응 체계 개선 등을 논의했다.
[Who Is ?] 한덕수 국무총리
▲ 한덕수 국무총리가 2022년 11월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윤석열 정부의 첫 국무총리
한덕수는 2022년 5월21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 임명장을 받았다.

5월23일 열린 취임식에서 "민생문제 해결과 경제회복, 지속성장, 그리고 국민의 안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국민통합과 협치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한덕수는 함께 손발을 맞출 국무조정실장으로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을 내정했으나 여당의 반발에 부딪혔다. 윤 행장이 문재인 정부 경제수석비서관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윤 행장이 자진사퇴했는데 여당의 입김으로 물러난 모양새가 돼 출발부터 책임총리제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6월 총리비서실장에 박성근 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국무조정실장에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이 각각 임명돼 총리실이 꾸려졌다.

한덕수는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보수정부 총리로는 처음으로 참석하고 6월16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방문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통합 행보를 보였다.

외교 행보에도 나섰다. 취임 첫날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만찬에 참석했고, 9월에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국장에 정부 대표로 참석해 조문했다.

도쿄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별도로 회동하기도 했다. 11월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방한했을 때에는 직접 서울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총리가 공항까지 나가 외빈을 영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이 외에 6월과 11월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 참석해 직접 프레젠테이션(PT)을 하는 등 세계박람회 유치 활동을 벌였다. 10월 중남미 3개국(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11월 프랑스와 아프리카 2개국(모잠비크, 가나)을 다녀왔다.

△14년 만에 국무총리 재지명
한덕수는 2022년 4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2008년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14년 만이었다.

윤석열 당선인은 "정파와 무관하게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정의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하신 분"이라며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과제를 수행해 나갈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한덕수는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받은 직후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실에서 소감을 발표하면서 국가의 중장기적 운영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4대 과제로 국익 외교, 국방 자강력, 재정 건전성, 국제수지 흑자, 생산력 높은 국가를 제시했다.

한덕수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뒤 4월10일 8명의 국무위원 후보자 추천서에 자필서명했다. 총리 후보자일 뿐이어서 헌법상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행사할 수 없어 대신 추천을 하는 형식을 취했다.

한덕수는 "말하자면 (총리 후보자가) 사인을 한 것"이라며 "내각과 대통령 사이 협력의 가치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대통령이)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인정하는 것을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에서 동의를 받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자료 제출 미비 등의 논란으로 인사청문회가 파행 끝에 간신히 열렸고, 야당은 회전문 인사와 전관예우 등을 지적하며 한덕수를 부적격 후보로 규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호 결재로 한덕수 후보 임명동의안에 서명했다. 여야간 대치 끝에 민주당이 한덕수 임명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5월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인준이 이뤄졌다. 5월23일 야당에서 임명에 반대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해 여야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은 모양새가 됐다.
[Who Is ?] 한덕수 국무총리
▲ 2017년 6월26일 한덕수 전 주미대사(왼쪽 세 번째)가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 번째), 이홍구 전 주미대사(왼쪽), 홍석현 전 주미대사와 청와대 본관에서 간담회장으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의 초대 주미대사 지내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총리를 지냈음에도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에 임명됐다. 주미대사는 국내 의전상으로는 총리보다 낮은 장관급에 해당하지만 미국과 관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중요도가 높은 자리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덕수를 주미대사로 발탁한 것은 오바마 미국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됐다.

한덕수는 미국 유학파이면서 김대중 정부의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시동을 걸었고,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한미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겸 한미FTA 특보를 지내며 한미FTA 막판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뒤 한미FTA 재협상을 시사하는 발언이 잇따라 나오자 이명박 정부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덕수를 주미대사에 임명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아울러 진보 성향의 이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인사를 주미대사로 보냄으로써 미국 민주당 정부인 오바마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 했다는 풀이도 나왔다.

주미대사에서 퇴임한 직후인 2012년 2월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선임되면서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한덕수가 무역협회장에 선임된 데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한미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강행처리된 뒤 민주당이 '폐기', '재재협상' 등을 외치며 정부·여당과 강경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한덕수에게 한미FTA 이행 과정을 챙기는 일을 맡긴 것으로 분석됐다.

무역협회장 시절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라는 지론에 따라 매년 12개 지방지부를 순회하며 420여 개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무역업계의 해외시장 진출 확대를 지원했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
2004년 2월 이영탁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이 총선에 차출되면서 한덕수가 참여정부의 2대 국무조정실장으로 임명되며 공직에 복귀했다.

국무조정실장으로 일하며 고건·이해찬 총리와 손발을 맞췄다.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등에 관한 정부 업무를 지원하면서 정무·안보 관련 경험을 쌓았다.

2005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됐다. 재임 기간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금융-산업자본 분리 정책을 이끌었다. 쌀에 부과되는 관세를 완전 폐지하는 쌀 시장 개방으로 농민들로부터 쌀 세례를 받기도 했다.

2006년 이해찬 국무총리가 삼일절에 골프를 친 사건으로 사퇴한 뒤 한명숙이 국무총리에 임명될 때까지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겸임했다.

부총리 퇴임 직후인 2006년 8월부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미 FTA 협상을 주도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3월 국무총리에 임명돼 2008년 2월까지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다.

총리 재임 중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뒤에 북한 내각총리 김영일과 남북총리회담을 했다. 이 외에 여야와 소통하며 국민연금법, 장기요양보험법, 기초노령연금법 등을 입법하는 성과를 냈고,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에도 힘을 보탰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미FTA 추진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3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최초로 추진했고,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관련 실무도 수행했다. 당시 여러 차례 산업자원부 장관 후보로 거론됐다.

2001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된 데 이어 이듬해 경제수석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0년에 중국이 한국산 휴대폰에 대한 수입관세를 인하하는 대신 한국이 중국산 마늘에 대한 수입규제를 완화한다는 이면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며 이른마 '마늘 파동'이 일어나자 2002년 협상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직생활을 접었다.

이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활동했다.

△김영삼 정부 때 통상 분야에서 활약
한덕수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1993년에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휘하의 산업담당비서관을 맡았다. 1994년 청와대에서 나와 관리관으로 승진하며 상공부로 복귀해 기획관리실장, 통상무역실장을 지냈다.

통상무역실장으로 일하는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추진과 대일본 무역규제 해제의 실무를 맡았고, 한미 자동차 협상에 정부 대표로 참여해 결렬 직전이었던 협상을 되살려 타결했다.

1996년 차관으로 승진해 1997년 3월까지 특허청장을 지냈다. 1997년 3월부터 1998년 3월까지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근무했으며, 그 사이에 IMF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수습하는 업무를 맡았다.

△공직 진출과 상공부 경력
서울대학교 상과대학(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세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역복무와 겹쳐 경제관료로서의 사실상 첫발은 경제기획원에서 떼었다.

1977년 미국으로 유학 가 1979년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2년 부처간 교류 때 상공부로 자리를 옮겨 과장으로 재직하다가 휴직계를 제출하고 다시 미국으로 유학 가 하버드대학교에서 1년만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다시 상공부에서 근무하다가 1989년 부이사관으로 승진해 상공부 중소기업국 국장에 임명됐다.

1990년 산업정책국장을 맡아 우리나라 산업정책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공업발전법'을 만들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가운데 산업 관련 정책의 실무도 맡았다.

1992년 이사관으로 승진한 뒤 1993년 1월 전자정보공업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Who Is ?] 한덕수 국무총리
▲ 한덕수 국무총리가 2022년 12월24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문화공원에서 산타 분장을 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소외계층에게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사랑의 몰래산타 대작전' 출정식을 마치고 출발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한덕수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교육·연금 3대 분야 개혁이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국정을 이끄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2월15일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3대 개혁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고 19일 한덕수와 주례회동에서 3대 개혁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한덕수는 12월18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노동·교육 개혁 과제를 논의했다. 모두발언에서 "불합리한 노사 관행과 경직적 근로시간 제도로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근본적 개혁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주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으나 윤석열 정부는 이를 폐기하고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발표한 권고안에 따르면 주52시간 근무제를 월 단위로 확대해 1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려고 한다.

하지만 노동계 등의 반발이 커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노동계, 시민사회, 정치권 등과 소통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는 2022년 12월22일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에서 "노동·연금·교육 개혁 노력으로 세계 주요국과 모든 분야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토대를 확고히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를 위한 개혁 추진 외에 당면한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경제 불안,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등으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 경제 역시 급격한 무역적자 확대와 가계부채 급등 등 다양한 경제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경기활성화를 이루고 수출을 확대하면서 잠재성장률을 회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 한덕수는 민간투자와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규제의 합리화를 경제성장 동력으로 삼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입법 권한을 지닌 국회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점은 부담이다.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도 여야간 대치로 국회 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장기 지연 끝에 처리됐다. 한덕수는 진보 정부와 보수 정부 양쪽에 몸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여당은 물론 야당과도 협치할 수 있는 접점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2년차를 앞두고 2022년 연말에 개각설이 조금씩 고개를 들어 한덕수가 언제까지 총리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인다. 한덕수가 애초에 기대했던 책임총리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데다 이태원 참사 책임론의 대상이고 구설에도 자주 올라 수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덕수는 개각과 관련해 2022년 12월20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과 총리실 사이에 논의가 없었다"며 "(윤 대통령의) 일반적인 철학은 '팀이 이뤄지면 오래가야 한다'는 것이고 '일을 맡은 사람이 숙련되고 잘할 수 있도록 오래 해야 한다'는 철학도 강하다"고 말했다.

◆ 평가
[Who Is ?] 한덕수 국무총리
▲ 2009년 2월26일 한덕수 주미대사(오른쪽)가 청와대에서 신임장을 받은 뒤 이명박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는 통상 분야에서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서 출발했지만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통상 분야에서 했다.

정부의 성향을 가리지 않고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에서 온갖 요직을 두루 거쳐 '처신의 달인'으로 불린다.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고, 이명박 대통령 취임 뒤에 주미대사로 임명돼 주목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가 특히 초기 인사에서 전 정부 고위직을 지낸 이들에게 냉정했던 점을 고려하면 한덕수가 주미대사에 임명된 것은 이례적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자신의 고향이 전북 전주임을 밝혀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이전에는 호남출신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있어 본적을 숨기거나 고향을 드러내지 않는 호남 사람들이 꽤 있었다.

부총리 취임 후 정책 일관성을 위해 색깔 없는 경제부총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무색무취하다는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다. 한덕수는 스스로를 놓고 "변화를 지향하는 합리적 시장주의자"로 규정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총리에 임명돼 장면·백두진·김종필·고건 전 총리에 이어 다섯 번째로 두 차례 총리를 맡았다.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 양쪽에서 총리에 임명된 것은 김종필·고건 전 총리에 이어 세번째다.

만 73세에 총리에 오른 현승종 전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총리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초대 총리 후보자로 만75세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지명된 적이 있으나 그는 도중에 낙마해 임명되지는 못했다.

일을 꼼꼼하게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일 집중도가 뛰어나다. 성품이 원만하고 일처리를 합리적으로 하며 조율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변에서 '일이 취미인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일벌레로 살아왔다고 한다.

시장경제와 경제개방에 대한 소신이 뚜렷하다. 관료로서 자리를 옮길 때마다 '시장 중심으로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인물'이라거나 '외국인 투자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인물'이라는 말을 들었다.

국무회의가 열린 뒤에는 직접 백브리핑을 하며 회의 내용을 설명한다. 총리가 직접 국무회의 백브리핑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해외 순방을 가서도 거의 매일 기자단과 만나 성과를 설명하는 등 정책홍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 명문장이 눈에 띄면 메모하거나 숙지해 두었다가 실제로 사용해 통상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고 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1년만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파다. 박사학위 논문이 워낙 뛰어나 하버드대학에서 교수 요원으로 남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을 보좌하며 국가적 위기 상황을 넘기는 데 힘썼다. 이해찬 총리 체제에서는 당정간 정책 조율을 맡아 '책임총리'를 뒷받침하는 '책임실장' 역할을 담당했다. 부처별 업무 총괄과 조정을 별 잡음 없이 해내 분권형 국정운영 체제의 연착륙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젊을 때 주말마다 등산과 테니스를 즐길 정도로 활동적이었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수석, 서울대 전체 3등으로 졸업해 대법원장상을 받았다. 당시 서울대는 수석 졸업생에게 대통령상, 차석 졸업생에게 국회의장상, 3등 졸업생에게 대법원장상, 4등 졸업생에게 문교부장관상을 주었다.

키가 180cm로 동년배 평균 키에 비해 장신이다.

박사논문으로 '외부충격, 조정과 성장'(1984)을 썼다.

사건사고
[Who Is ?] 한덕수 국무총리
▲ 한덕수 국무총리가 2022년 11월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 방문 후 도로 무단횡단
한덕수가 2022년 12월19일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를 방문하고 돌아가다가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일었다.

이날 한덕수는 합동분향소를 찾았으나 유족들이 정부의 공식 사과가 없는 한 조문을 받지 않겠다며 거세게 항의하자 30초 만에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고 말하고 돌아섰다.

언론에 공개된 영상에서 한덕수는 이후 일행과 함께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넌 후 횡단보도 앞에 정차하고 있던 차량에 탑승했다. 한 누리꾼이 한덕수를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국민신문고를 통해 용산경찰서에 신고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에 총리실은 12월21일 언론공지를 통해 근무 중이던 용산경찰서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다고 해명했다.

한덕수와 고등학교 친구였던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12월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모범생이고 아주 공손했던 친구인데 총리가 돼서는 구설에 많이 오르는 거 보면 늙었나 보다"고 말했다.

총리실은 12월23일 입장문을 통해 경찰이 부과한 범칙금을 납부했다고 밝혔다. 한덕수는 "앞으로 일정과 동선을 세심하게 살펴 법질서에 어긋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부적절한 농담
한덕수가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웃으며 농담을 해 논란이 됐다.

한덕수는 2022년 11월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통역기기 오류가 발생하자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무어냐"고 농담을 했다.

이 외에 기자와 경찰청 차장이 인파 규모에 따른 경력 투입 수준을 질의하는 도중에 끼어들어 "뉴욕양키스와 보스톤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가 있다면 굉장히 많은 경찰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농담을 했다.

이를 두고 참사 대응 등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부적절한 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태수습에 총력을 다해야 할 총리가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농담을 했는데 경악할 만한 장면"이라며 "정부 고위 책임자들의 태도가 도저히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한덕수는 11월2일 보도자료를 통해 "경위와 무관하게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 점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한덕수는 이태원 참사의 미성년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일을 두고 12월15일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관예우 및 고액보수 논란
한덕수는 2017년 12월부터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기 직전까지 4년4개월 동안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고문료로 18억 원을 받았다.

과거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물러난 뒤인 2002년 11월부터 2003년 7월까지 김앤장 고문으로 활동할 때는 1억5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덕수는 총리에 지명된 후 "고액연봉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민 눈높이로 봐서는 그런 측면도 있을 수 있겠다"고 대답했다.

국민 여론은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2022년 4월1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후보는 법률사무소에서 4년4개월여 동안 근무하며 약 20억 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공직자가 퇴임 후 민간기업에서 고문이나 사외이사로 재직하는 관행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3.2%가 '부적절하다'고 대답했다. '적절하다'는 17.6%, '잘 모르겠다'는 19.2%로 집계됐다. 이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덕수는 에쓰오일에서도 2021년 3월부터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8천만 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청문 요청안 자료에 따르면 한덕수 본인과 배우자의 재산은 모두 82억 원이 넘는다. 2012년 4월 주미대사에서 물러나고 신고한 재산이 40억6700만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공직을 떠나 있던 10년 동안 재산이 2배로 늘어난 셈이다.

△론스타의 거래에 개입한 의혹
한덕수가 2002년 11월부터 8개월 동안 론스타의 국내 법률대리인인 김앤장에 재직한 것과 관련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는 2022년 4월6일 한덕수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매각을 은폐한 책임자라고 주장하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의 혐의로 그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 의혹은 2007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한덕수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을 때에도 제기됐다. 당시 한덕수는 인사청문회와 국회 인준 절차를 통과해 총리에 임명됐다.

한덕수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부인해왔는데 인사청문회에서 이 의혹이 다시 한 번 쟁점으로 부각됐다.

한국에서는 로비스트 제도가 합법화돼있지 않기 때문에 변호사만 로비를 할 수 있다. 대형 법무법인들은 정관계 로비를 위해 고문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는 불법이 아니다.

△이해충돌 논란
한덕수가 미국 석유회사에 자택을 임대한 사실이 있어 이해충돌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덕수는 1993년 통상·산업 분야 고위직으로 근무하면서 서울시 종로구 적선동에 있는 본인 명의 자택을 미국 석유회사 모빌(현 엑슨모빌)의 한국법인 오일코리아에 거액의 선금 수령 후 장기간 임대했다.

1995년에 해당 법인이 1억6천여만 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는데, 이는 임대료 선지급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모빌은 국내 에너지 공기업 등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었다.

한덕수가 그 전에 같은 주택을 세계 최대 통신업체인 AT&T에 임대해 6억 원의 임대수익을 올린 사실도 알려졌다.

한덕수는 임대계약을 직접 하지 않고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서 했으며 업무와의 연관성은 없다는 해명을 내놨다.

△장인 주택 헐값 매입 논란
한덕수가 장인으로부터 주택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버스는 2022년 4월8일 한덕수가 1989년 장인으로부터 서울시 종로구의 단독주택을 3억8천만 원에 매입했는데 1990년 1월 기준 해당 주택의 공시지가는 8억 원 정도였다며 저가매매 방식으로 증여세를 포탈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덕수는 인사청문준비단을 통해 "주택을 구입한 1989년은 공시지가가 도입되기 전"이라며 "단독주택 거래량이 많지 않은 지역이라 시가 산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정부의 과세 기준을 참고해 3억8천만 원을 내고 주택을 구입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주택 구입에 따른 세금과 공과금을 모두 납부했으며 적정 가격으로 매매했기 때문에 국세청으로부터 별도로 증여세 납부 통지를 받은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2007년 3월 총리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같은 내용을 소상히 설명드린 바 있다"고 덧붙였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한덕수 국무총리
▲ 2007년 4월24일 한덕수 국무총리(왼쪽)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79년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 경협총괄 사무관이 됐다.

1989년 상공부 중소기업국장으로 승진했다.

1993년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실 통상산업비서관을 맡았다.

1994년 상공자원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4년 통상산업부 통상무역실장을 지냈다.

1996년 특허청 청장에 임명됐다.

1997년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8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본부장을 맡았다.

200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에 임명됐다.

2001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맡았다.

2003년 산업연구원 원장에 선임됐다.

2004년 국무총리국무조정실 실장을 맡았다.

2005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 임명됐다.

2006년 한미FTA 체결 지원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07년 38대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2007년 FTA 국내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주미 대한민국대사관 대사로 파견됐다.

2012년 28대 한국무역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2015년 청소년적십자 사업후원회 고문을 맡았다.

2015년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을 맡았다.

2021년부터 에쓰오일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 학력

1961년 서울 재동초등학교를 나왔다.

196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슬하에 자녀는 없으며 서양화가로 1년 연상인 배우자 최아영씨와 둘이 살고 있다.

◆ 상훈

1971년 대법원장상을 수상했다.

1992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03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07년 칠레 대십자훈장을 받았다.

2012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 기타

2022년 8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발표한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사항에 따르면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85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단독주택 27억5100만 원, 예금 51억7800만 원 등이다.

1971년 5월부터 1974년 4월까지 군에 복무하고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2013년 '알기 쉬운 무역실무 길라잡이'를 출간했다.

어록
[Who Is ?] 한덕수 국무총리
▲ 2014년 12월18일 한덕수 무역협회장(왼쪽)과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경제5단체 초청 해외진출 성과 확산 토론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인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이런 생각들이 더 강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치료를 받았던 것 같고 지원센터에 그런 어려움을 충분히 제기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부는 치료를 받고 싶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철저하게 가지고 있기에 그런 상황이 좀 더 파악되고 요청이 있었다면 경비 등 문제 때문에 치료를 더 할 수 없다든지 하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2022/12/15, 극단적 선택을 한 이태원 참사 미성년 피해자를 두고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집회가 일어나는 용산 쪽에 치안 담당하는 분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 했다. 분명 국가는 없었다. 지켜보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대통령께 말하겠다." (2022/11/08,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화물연대가 24일부터 무기한 집단 운송거부를 예고했다. 법과 원칙을 어기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하지 않겠다. 불법적 운송거부나 운송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용 없이 모든 조치를 강구해 엄정하게 대응하겠다." (2022/11/22,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 관련 브리핑에서)

"대한민국이 진정한 IT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발전된 기술의 외형에 걸맞는 운영의 내면을 갖춰야 한다. 네트워크망에 문제가 생기면 국민의 일상이 마비되고 국가 안보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이번 사고는 IT 강국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다. 결코 안일하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2022/10/18, 국무회의에서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카카오 서비스 중단 사태와 관련해)

"국제법적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한국의 신용도가 손상된 것도 사실이다. 뾰족한 방법은 없다. 꾸준히 모든 레벨에서 소통하고 한국의 국가운영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돌아오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2022/09/28,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국장 참석차 일본을 방문해 기자단 간담회에서)

"국무총리 소임을 맡은 지 100일이다. 새 정부가 가야 할 큰 방향을 잡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국민 여러분 보기에 미흡한 점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더욱 열심히 뛰겠다. 지금 이 자리가 국민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는 초심을 늘 잊지 않겠다." (2022/08/28, 취임 100일을 맞아 SNS에 올린 글)

"요즘은 위기상황 대응이라는 것이 꼭 현장에만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자택에도 지하벙커 수준의 통신수단들이 다 있다." (2022/08/11,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집중호우 대응 논란과 관련해)

"대개 정권 초기에 본인이 이제까지 익숙하던 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분위기가 적절치 않을 때 그런 말씀을 좀 하시지 않나 싶다. 제가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님께서도 국회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정책들이 잘 진전이 될 수 없는 환경이 되니까 ‘정말 못해먹겠다’ 이런 말씀을 하신 걸로 기억을 한다." (2022/07/27,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우리 사회가 합의를 해서 물리적 강제력까지 전부 다 부여하고 있는 경찰이 청장의 명령을 위반해서 그런 모임을 가졌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행안부 장관 표현(쿠데타)에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그런 것에 대한 가장 절실한 하나의 문제의식을 표출한 것으로,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2022/07/25,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이나 KDI 원장은) 바뀌어야 한다. 우리하고 너무 안 맞는다. 소득주도성장 설계자가 KDI 원장에 앉아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2022/06/28, 총리 취임 1개월을 맞아 가진 기자단 만찬에서)

"부산은 리야드보다 더 매력 있고 다양성이 있는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아무리 잘 전시해 놓는다고 해도 사우디 갈래 부산 갈래 물으면 다 부산에 갈 것이다. 부산의 전시 능력, 개최 능력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우디의 경우에는 정말 그때까지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한다." (2022/06/21,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 총회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사회는 반목이 아닌 화합으로 발전한다.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다양한 분들의 조언을 늘 귀담아들으며 통합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22/05/16,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한 뒤 SNS에 올린 글)

"통합과 협치가 이뤄지지 않는 사회는 생산과정 전반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협치를 통해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존중하고 협치의 성과를 여야정이 함께 나눌 수 있는 방안도 찾겠다. 국회는 물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도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 국정운영에 소관과 경계를 없애 소통하는 내각이 돼야 한다." (2022/05/23, 국무총리 취임식에서)

"국민의 눈높이로 보면 조금 송구스러운 면은 있지만 공적으로 여러 직책에서 경험과 능력을 쌓은 사람이 민간에 가서 이해충돌이나 전관예우가 아니고 국가를 위해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앤장에 간 이유는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우리 경제를 설명하고 공공외교를 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2022/05/02, 국회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노동계는 우리 경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둥이다. 그러나 노동의 환경도 세계적 경제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다. 노동계가 단순히 노사간의 관계라는 차원에서 대립하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세계의 모든 나라와 좋은 노사관계에 있어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의 발전과 산업의 발전, 4차 산업혁명의 환경 속에서 우리 노동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2022/04/12,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노동계와의 관계 설정을 묻는 질문에)

"최저임금이라는 것은 노사 사이 협의에서 결정할 일을 정부가 개입해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은 굉장히 신중하고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가면 기업이 오히려 고용을 줄이는 결과가 와서 서로 루즈-루즈 게임이 된다." (2022/04/05,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최저임금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새로 지명된 총리로서 윤석열 대통령을 모시고 행정부가 중심이 되는 정책을 꾸준히 만들고 치열한 토론과 소통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정책들을 만드는 데 노력해 나가겠다. 여기에는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협치, 통합, 이런 것도 굉장히 중요한 정책의 요소가 될 거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대내외적으로 경제와 지정학적 여건이 매우 엄중한 때에 국무총리 지명이라는 아주 큰 짐을 지게 돼 영광스러우면서도 매우 무겁고 큰 책임을 느낀다." (2022/04/03, 서울서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기자실에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소감을 발표하며)

"우리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지 않으면 9조 달러 규모의 교역, 2.2조 달러 규모의 원자재 교역에서 빠지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한국이 12개 나라에 1200억 달러 정도 수출하는데 (TPP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런 것들이 일본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2015/01/06, 한국경제TV 인터뷰에서)

"과거 우리 무역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항상 세계가 놀랄 만한 저력을 발휘하며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뤄냈다. 수출입국 50년의 자신감과 열정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는 새로운 도전과제에 맞서 ‘제2의 무역입국’을 향해 나서야 한다.” (2015/01/01, 2015년 무역협회 신년사에서)

"시간이 가면서 계속 FTA 이행 상황을 리뷰하고 언제라도 관세 인하에 관해 어느 한 쪽이 제기하면 논의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자동차 부분은 (오히려) 우리 기업에서 예외로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자동차 부품도 큰 것은 일단 예외조치했지만 많은 부품들은 FTA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2014/11/10, 한중FTA에서 자동차가 양국 모두의 양허(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된 것과 관련해 기자간담회에서)

"언론을 탄압하기 위해 한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제도 자체를 선진국으로 올린다는 것이고, 국제적 기준이 지금 우리 제도는 아닌 것 같다." (2007/05/22, 국무회의에 앞서 '취재 선진화' 방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미FTA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지만 정부는 우리 미래를 위해 한미FTA는 꼭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길을 가고 있다." (2007/03/29, 국무총리 지명자로서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70%에 이르는 한국이 FTA를 외면하면 통상고아로 전락할 것이다. 21세기는 통상교섭의 시대이며 FTA는 교역을 증진시키는 현대판 실크로드다." (2006/09/21, 경찰청이 마련한 강연회에서)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가 발동되면서 휴대폰과 철강의 중국 수출 길이 막혔다. 온 나라가 들썩였다. 청와대도 화가 났다. 한 달 동안 협상을 진행했는데 한국정부 내부에 세이프가드는 다시 하지 말자는 합의가 형성됐다. 협상 타결 뒤 박수가 터졌고 언론도 환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뒤 한국정부가 은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외환은행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마늘 얘기를 꺼냈다. 개인적 잘잘못을 떠나 맥락은 같으며 억울한 면이 있다. 마늘과 외환은행의 기본 골격은 같다고 본다." (2006/07/06, 정례 브리핑 뒤 기자간담회에서 경제부총리 퇴임 소회를 밝히며)

"감세 정책은 국가 재정에 여유가 있을 때나 세율이 너무 높아 구조개혁이 필요할 때 취하는 것이다. 재정 여유가 없는 우리 정부로서는 재정의 건전성 차원에서 감세 정책을 취할 수 없는 입장이다." (2005/10/27,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이 감세 정책을 제안한 것에 대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허구다. 비판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신자유주의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는 신자유주의는 개방화, 자유화, 민영화 등만 있는 것인데,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내용에는 인적개발을 위한 투자, 경쟁 탈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 등도 들어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아닌 정책인 것이다. 어느 나라도 일방적으로 그런 정책(신자유주의)만을 펴는 곳은 없다. 미국도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의 제도를 갖고 있지 않나." (2005/10/21,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내부에 신자유주의 논란과 관련한 토론이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 집값은 2003년 10·29대책 이전 수준으로 안정되는 게 바람직하다." (2005/08/3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에서)

"지속적으로 안정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 양극화 현상이 지속된다면 성장잠재력과 사회통합의 기반이 크게 훼손된다.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강하고 경쟁력 있는 분야는 세계무대에서 뛰고 달릴 수 있도록 하고 취약분야는 조속히 이를 뒤따르도록 해야 한다." (2005/03/15, 경제부총리 취임식에서)

"분권과 자율이라는 국정 원칙보다 조정 메커니즘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에 우선권을 둬야 한다." (2003/05/29, 참여정부 출범 100일을 앞두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정부 평가 심포지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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