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2022년의 시작 1월 초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연초면 으레 나오는 4대 금융지주 회장 신년사 가운데 업계의 주목을 받은 신년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의 신년사입니다.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7월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위원장과 간담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연합뉴스> |
김 전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하나금융을 '덩치만 큰 공룡'에 비유한 뒤 '공룡은 결국 멸종했다'며 위기 의식을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자산 500조 원의 ‘금융을 지배하는 공룡’은 그렇게 무사안일해지고 대마불사의 헛된 희망을 품게 된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시장은 우리를 ‘덩치만 큰 공룡’으로 보고 있고 공룡은 결국 멸종했다.”
김 전 회장은 하나금융을 향한 시장의 냉혹한 시선을 보여주기 위해 시가총액을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와 직접 비교하고 변화에 무감각해진 상황을 비판하기 위해 ‘양치기 소년’ ‘무사안일’ ‘대마불사’ 등 강한 단어 사용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보통 회장님들의 신년사는 한 해 성과를 격려하고 새해 주요 과제를 제시하는 평이한 내용이 많습니다.
하지만 10년 동안 하나금융을 이끈 김 전 회장의 마지막 신년사는 무난함 대신 강한 비유를 선택해 구성원들의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김 전 회장이 금융권 대선배인 만큼 하나금융뿐 아니라 전 금융권 후배들에게 변화를 당부하는 신년사로 평가되기도 했고요.
올해도 이런 신년사가 나올까요?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은 예년처럼 내년 초 신년사를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보통 새해 첫 영업일 신년사를 발표합니다. 올해는 1월2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올해는 기대되는 신년사가 예년보다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4대 금융지주 모두 회장 리더십에 변화가 왔거나 변화가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선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신년사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입니다.
조 회장은 재연임이 유력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용퇴를 결정해 내년 3월 회장 퇴임이 예정돼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신년사는 ‘신한금융 회장’
조용병의 마지막 신년사입니다.
조 회장은 지난 6년 동안 과감한 인수합병을 통해 신한금융의 규모를 키우는 동시에 매년 사상 최대 실적기록을 세우며 수익성도 놓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조 회장은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다음 회장으로 결정되던 날 기자들과 만나 행원에서 시작해 회장까지 오른 자부심과 함께 회장에서 물러나는 데 대한 아쉬움을 동시에 내비쳤습니다.
조 회장은 2017년 3월 회장에 올라 신한금융을 이끈 기간이 짧지 않습니다.
김정태 전 회장처럼 신년사를 통해 금융권에 강렬한 당부를 전해도 전혀 어색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조 회장의 6번째 신년사이자 마지막 신년사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도 마지막 신년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 회장은 내년 11월 임기가 끝나 다시 한 번 연임하지 않는다면 이번이 마지막 신년사가 됩니다.
윤 회장은 2014년 11월 KB금융 회장에 올라 신년사만 벌써 9번째입니다.
윤 회장은 매년 무난한 신년사를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내년은 마지막 신년사가 될 수 있는 만큼 남다른 의미를 부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윤 회장은 회장 취임 뒤 2015년 첫 신년사에서 ‘첫째’, ‘둘째’, ‘셋째’ 같은 나열방식을 쓰지 않고 ‘신바람 나는 일터’, ‘활기찬 조직 분위기’ 구축에 집중하겠다는 편지글 형태의 인상 깊은 신년사를 낸 적도 있습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이번 신년사가 처음입니다.
함 회장은 10년 동안 하나금융을 이끈
김정태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올해 3월 회장에 올랐습니다.
함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과감한 사회공헌활동, 예상을 깬 파격 인사 등으로 하나금융에
함영주시대를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번 신년사에서는 앞으로 하나금융을 이끄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할 함 회장만의 새로운 키워드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신년사보다는 앞으로 거취가 시장의 더 큰 관심사입니다.
11월 라임사태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중징계가 확정된 이후 당국의 압박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년 1월 이사회에서 손 회장의 거취 논의를 할 것으로 알려진 만큼 연초 신년사는 나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우리금융지주가 최근 임원 인사를 내고 우리은행이 조직개편 등을 시행한 것을 놓고 볼 때 무난한 내용의 신년사가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 기업의 회장들은 보통 아래에서 신년사 초안이 올라오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추가하거나 고치는 방식으로 신년사를 완성한다고 합니다. 금융지주 회장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만 몇몇 회장들은 직접 내용을 쓰기도 한다는데요. 지난해 하나금융 신년사의 공룡 내용 역시
김정태 전 회장이 직접 넣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래에서 써서 올렸다면 회사 전체를 멸종한 공룡에 비교하는 비유는 신년사에 포함되지 못했겠죠.
그나저나 김 전 회장의 우려와 달리 공룡에 비유됐던 금융지주들은 올 한해 멸종은 커녕 더욱 건재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4대 금융지주 모두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주가도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에 비해 단단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4대 금융지주에 위기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긴축 기조 강화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는 물론 국내 자금시장 위축, 부동산시장 악화 등 금융산업의 건전성을 위협할 요소들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습니다.
4대 금융지주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언제 멸종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4대 금융지주 회장의 내년 신년사 모두에서 ‘변화’와 ‘혁신’이 강조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변화와 혁신은 업종과 시기를 불문하고 언제나 모든 CEO들의 최상 과제일 것입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