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현대중공업이 그룹 조선3사(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의 공동파업 직전에 노조와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도출하며 한숨을 돌렸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은 과거 현대미포조선 수장으로 있을 때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하는데 성공했지만 현대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긴 뒤 매년 노조와의 임금협상과 임단협에서 해를 넘겨 왔다.
▲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사진)이 과거와 다르게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서는 연내 타결을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
그러나 현대중공업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상황이 바뀔 수도 있어 보인다. 한 부회장이 노조와 원만한 합의를 통해 올해 임단협에서 해를 넘기지 않고 생산체제를 안정시킬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6일 현대중공업그룹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현대중공업 노사 사이 파업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는 가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가 공동파업을 예고한 이날 오후가 되기 전에 노사 모두 잠정합의안 마련에 강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날 현대중공업 노사는 전날부터 이어진 36차 본교섭을 통해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잠정합의안 마련에 따라 그룹 조선3사 노조의 공동파업은 유보됐다.
현대중공업 노조에 따르면 당초 36차 본교섭은 6일 이후로 예정됐었지만 회사의 요구로 5일부터 교섭을 진행했다. 노조 역시 36차 본교섭이 올해 임단협을 마무리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했다.
이에 현대중공업 노사는 본교섭 시작 뒤 수차례 정회와 속개를 통해 의견일치를 봤고 파업을 반나절 앞둔 이날 새벽 4시경 잠정합의안을 내놨다.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현대중공업그룹 조선3사 노조는 올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공동교섭을 추진해왔다. 교섭이 지지부진하자 이날 오후 공동 4시간 파업, 7일 공동 순환 7시간 파업, 13일부터는 무기한 공동 전면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노사가 잠정합의안 도출에 성공하면서 올해 임단협이 연내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현대중공업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찬반투표를 거쳐 연내 타결에 이를 것이란 시선이 나온다.
잠정합의안이 기본급 기준으로 보면 회사의 제시안 수준이지만 여기에 수당을 2만 원 인상하며 노조의 기본급 제시안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노사 모두 협상 타결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읽힌다.
이날 도출된 이 잠정합의안에는 기본급 8만 원 인상(호봉승급분 2만3천 원 포함 정액 인상), 지역/복지수당 2만 원 인상, 타결 격려금 250만 원, ‘100년 기업 달성’을 위한 노사화합 격려금 100만 원, 강화된 의료혜택 및 장학제도 등이 담겼다.
기본급 기준으로 당초 회사는 8만 원 인상, 노조는 10만 원 인상을 교섭안으로 제시해왔다. 노조는 교섭 초기 기본급 14만 원 인상을 주장했지만 11월 중순 인상폭을 하향조정해 새로운 교섭안을 내놨다.
한영석 부회장은 현대중공업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조선3사의 맏형격인 현대중공업의 연내 임단협 타결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부회장은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맡기 전 현대미포조선에서 노사관계를 원만히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현대중공업 수장으로서는 노조와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한 부회장은 2016년 10월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 생산본부장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며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에 오른 뒤 2017년과 2018년 연속으로 갈등 없이 노조와 협상을 마무리했다.
다만 한 부회장이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 뒤 현대중공업은 2019년과 2021년 임금협상, 2020년 임단협에서 모두 해를 훌쩍 넘겼다. 특히 2019년 5월부터 시작한 2019년 임금협상과 2020년 임단협은 2021년 7월까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은 노조가 생산시설의 크레인을 점거하는 전면파업까지 맞닥뜨려야 했다.
한 부회장은 2021년 7월 노조가 크레인을 점거할 당시 담화문을 통해 크레인 점거행위 중단을 촉구하며 “앞으로 임금은 기본급 위주의 체계로 바꾸고 이익을 낸 만큼 보상을 반드시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2021년 임금협상에서도 현대중공업 노사는 해를 넘긴 올해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5월 잠정합의안 타결 전까지 노조는 파업을 진행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연간 수주목표를 달성했고 3분기에는 2021년 4분기부터 이어진 영업손실을 털어내고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회사로서도 원활한 도크(선박 건조시설) 가동을 통한 실적 안정화를 바라보는 현재 상황에서 빠른 임단협 타결의 필요성이 크다.
다만 이번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음에도 연내 올해 임단협 타결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9년 임금협상과 2020년 임단협 과정에서는 1차, 2차 잠정합의안이, 2021년 임금협상 과정에서는 1차 잠정합의안이 부결됐었다.
이날 도출된 올해 임단협 1차 잠정합의안도 한 번에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과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셈이다.
잠정합의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연내 타결은 물론 다시 그룹 조선3사 공동파업이 진행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임단협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이날 4시간, 7일 4시간 단독으로 부분파업에 돌입한다.
한편 현대중공업 노조는 대의원설명회 등을 거쳐 8일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노사가 이번 교섭만큼은 해를 넘기지 않고 마무리하겠다는 각오로 열린 마음으로 소통한 끝에 잠정합의안 마련에 성공했다”며 “교섭을 조속히 최종 마무리하고 내년 본격적 재도약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