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제16차 배출권 할당위원회를 개회하고 온실가스 감축 및 현장 애로 개선을 위한 '배출권거래제 제도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 |
[비즈니스포스트]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하면 온실가스 배출권을 무상으로 더 많이 받게 됐다.
그러나 배출권 유상할당 확대에 대한 논의는 내년으로 미뤄졌다. 유상할당은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을 독려하고 배출권 거래를 활성화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24일 발표한 배출권거래제 제도개선 방안에 따르면 기업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시설을 신설하거나 증설하면 그만큼 배출권을 더 많이 할당 받게 됐다.
기업이 석유화학제품의 원료인 납사(naphtha)를 바이오 원료로 바꾸는 등 친환경 원료로 제품을 생산하면 감축 실적으로 인정 받아 배출권 제출 의무가 줄어든다.
세금 혜택도 연장된다. 정부는 배출권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의 일몰기한을 올해 말에서 2025년까지 3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증권사들은 기업의 배출권을 위탁 받아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할당업체가 증권사에 배출권 거래를 위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배출권 시장에 참여한 20개 증권사에는 자기매매만 허용되어 있다.
일부 규제는 완화됐다. 정부는 전자업체가 보유한 온실가스 감축설비에 대해 온실가스 저감효율을 측정하는 비율을 20%에서 10%로 낮췄다.
중장기적으로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 허용 총량을 설정하고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온실가스 감축을 유인하고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현재 10% 수준인 유상할당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를 포함한 중장기 과제는 관계부처 및 업계와 논의해 2023년 중 추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정부는 덧붙였다.
정부는 내년 3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연도별·부문별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려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배출권거래제를 활성화하는 데에 미흡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기업들이 배출권 거래 필요를 느끼도록 유상할당 비율을 높이지 않으면 배출권거래제를 활성화하고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출권거래제란 기업이 할당 받은 배출권이 남으면 팔고 부족하면 사도록 거래를 허용하는 제도를 뜻한다.
배출권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정부는 업체별로 배출권을 사전 할당해 그 범위 내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업체는 배출권 거래를 통해 배출권을 다른 업체로부터 사 와야 한다.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목적을 달성하려면 유상할당이 필요하다. 유상할당이란 정부로부터 할당 받은 배출권 일부를 돈을 주고 받는 것을 뜻한다. 쓰레기를 버리려면 종량제 봉투를 구입해 그만큼 쓰레기를 담아 버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런데 한국의 배출권 유상할당 비율은 10%다. 90%의 배출권은 무상으로 준다. 필요한 종량제봉투 중 90%를 공짜로 주니 유료봉투 즉 배출권을 구매하려는 수요는 늘지 않고 있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의 박지혜 변호사는 “현재 10%인 한국의 유상할당 비중은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가 벤치마크한 유럽연합 사례를 보면 유상할당 비중이 산업 부문은 70%, 에너지 부문은 100%에 달한다.
지난해 상향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비해 기업에 주어진 배출허용 총량이 높은 것도 기업들이 탄소 감축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다.
박 변호사는 “기업이 탄소감축에 투자하도록 유도해 미래에 더 큰 기후변화 대응 비용이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면 지금 투자해야 한다는 신호를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플랜1.5 등 기후전문가 단체들은 정부에 유상할당 비율의 강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맞는 배출허용 총량의 조정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이번 발표는 장기적으로 배출허용 총량을 설정하고 관리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현재까지 넉넉하게 부여되어 온 배출허용 총량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면서도 “그 의도가 분명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탄소국경조정 등 해외동향,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감안한다면 배출권거래제가 실효성 있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