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이 바뀌어도 여의도에 변하지 않는 풍경이 하나 있다. 바로 KDB산업은행 부산이전 반대시위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금융회사가 밀집해 있는 서울 여의도 일대도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여의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여의도공원의 나무들도 모두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고 가을 끝자락을 알리고 있으나 계절이 바뀌어도 여의도에 변하지 않는 풍경이 하나 있다.
바로 여의도공원 한 편에 자리잡고 있는 KDB산업은행 로비에서 아침마다 열리고 있는 KDB산업은행 본점의 부산이전을 반대하는 시위다.
산업은행 직원들의 부산이전 반대시위는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의 취임 다음날부터 시작돼 15일로 161일차를 맞았다.
산업은행의 부산이전 문제는 큰 이슈로 떠오르며 한 때 떠들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관심에서 멀어져 잘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산업은행의 부산이전 문제와 관련해 161일을 이어온 반대시위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 아침 일찍 산업은행에 가봤다.
마침 이날은 산업은행 입사지원자들의 면접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산업은행 로비에서는 시위를 준비하는 산업은행 직원들과 면접을 기다리며 이 모습을 지켜보는 입사지원자들이 함께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산업은행에 들어오려는 입사지원자들에게도 자신이 근무하게 될 회사가 부산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것은 민감한 문제였는지 모두들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시위가 시작되기 전에 입사지원자들은 모두 면접 장소로 이동했다. 입사지원자들이 직원들의 시위를 직접 보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산업은행 직원들이 8월 금융공기업 채용박람회에서 취업준비생 5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0.7%가 금융공기업의 지방이전에 반대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날 KDB산업은행 면접을 위해 대기하던 입사지원자에게 부산이전에 대한 생각을 묻자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8시30분 무렵 한 직원이 북을 치기 시작하자 직원들이 삼삼오오 손피켓을 들고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300여 명의 직원들이 로비에 대오를 갖추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산업 다 죽이는 부산이전 반대한다, 경제위기 촉발하는 지방이전 철회하라.”
▲ KDB산업은행 직원들이 15일 오전 8시30분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 로비에서 부산이전 반대시위를 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부산이전 반대 시위가 5개월 넘게 중단없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의 힘이 컸다.
직원들은 아침마다 열리는 시위 참가자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커피와 간식을 전달하며 시위를 응원해 왔다.
이날은 2013년 입사한 일반직 직원들이 샌드위치를 제공했고 해양산업금융실 직원들이 커피를 내왔다.
산업은행 직원들은 반대의 목소리가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로비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반대로 건물 안에서는
강석훈 회장이 부산이전을 위한 준비 작업을 하나씩 진행하고 있었다.
강 회장은 부행장들을 교대로 부산에서 근무하게 했고 9월 말 출범한 이전준비단을 중심으로 이전과 관련한 기본 계획을 현재 마련해 나가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부산이전에 앞서 일부 인원들이 선발대로 부산에 내려갈 수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이러한 소문은 단순한 우려에 그치지 않고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은 조선이나 해양 관련 부서들을 부산으로 내려보내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조치는 산업은행법 개정 전이라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전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강 회장의 의지로 읽힌다.
강 회장은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부울경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일부 조직을 배치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산업은행 직원들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아침마다 이전반대 시위를 진행하고 있지만 부산이전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 나타나자 불안해하고 있다.
아침 시위 말고는 부산이전을 막기 위해 직원들이 할 수 있는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고민도 나온다.
▲ 부산이전 반대 시위가 5개월 넘게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점은 KDB산업은행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에 있다. 일반직 13행번 직원들이 시위 참여자들을 위해 마련한 샌드위치가 로비 한켠 탁자에 놓여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다만 산업은행법이 개정돼야 부산이전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은행 직원들은 법 개정 지연에 희망을 걸고 있다.
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려면 한국산업은행법에서 ‘한국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는 제4조 본점 및 지점 등의 설치에 관한 조항을 개정해야만 한다.
이에 산업은행 노조나 강 회장은 모두 산업은행법 개정이 부산이전 문제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각각 의원들 설득작업에 나서고 있다.
다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산업은행 부산이전 효과에 의문을 나타내며 반대의견을 보이는 의원들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법 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백혜련 국회 정무위원장은 14일 은행연합회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 개정 없이는 부산이전 논의를 할 수 없다”며 “서울을 본점으로 한다고 규정해 놨기 때문에 탈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무위원회 차원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