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롯데건설을 둘러싼 유동성 위기 우려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건설은 최근 한 달 사이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운영자금 명목으로 1조1천억 원을 급하게 조달했다. 시장에서는 롯데그룹 다른 계열사로 자금난 부담이 확산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 롯데건설이 한 달 사이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운영자금으로 1조1천억 원을 조달하면서 유동성 문제에 관한 우려의 시선이 계속되고 있다.
11일 나이스신용평가의 신용등급 감시명단(WATCH 리스트)을 살펴보면 롯데케미칼과 롯데지주, 롯데쇼핑을 비롯해 롯데그룹 계열사 5곳이 하향검토 대상에 올라있다.
사유는 주요 계열사, 계열 전반의 신용위험 변동 또는 전망이다.
앞서 지난 10월부터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롯데케미칼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와 관련해 인수자금 조달과 투자 지원 가능성 등을 이유로 관찰대상 리스트에 올랐다.
그런데 최근 건설시장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시장 경색 등으로 롯데케미칼을 비롯 계열사들이 롯데건설에 대규모 운영자금을 수혈해 주면서 그룹 전체의 현금흐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미 지난 10일 롯데건설 최대주주 롯데케미칼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오윤재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은 업황 부진으로 이익창출력이 약해진 가운데 신규사업 인수와 투자 등에 따른 자금 부담으로 재무안정성이 저하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바라봤다.
오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의 투자계획과 자금지출 내역에서 설비투자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뿐 아니라 롯데건설에 주는 자금대여(5천억 원)와 유상증자(876억 원)를 큰 지출로 꼽았다.
롯데케미칼가 올해 9월 연결편입한 계열사 롯데정밀화학도 롯데건설에 3천억 원을 추가로 대여해줄 예정이다. 이에 롯데건설로 투입하는 자금 규모가 모두 9천억 원 규모에 이르는 셈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0일 롯데케미칼뿐 아니라 롯데지주, 롯데쇼핑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전망도 모두 기존의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떨어뜨렸다.
등급평가 보고서를 보면 롯데지주의 신용도는 단기적으로는 핵심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신용도 변화 여부에 달렸다. 중장기적으로는 지주사로서 계열사 지원부담 확대 가능성, 그룹 전반의 재무부담 추이 등이 신용도 결정의 핵심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롯데쇼핑은 롯데지주가 연대보증을 제공하고 있어 덩달아 신용등급전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결국 롯데건설 자금지원 부담으로 롯데케미칼로부터 롯데지주, 롯데쇼핑까지 연쇄적으로 자금시장에서 신용도와 현금흐름 등 재무안정성에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롯데그룹은 이미 한 달 사이 계열사들을 동원해 롯데건설에 1조1천억 원을 지원했다.
롯데건설은 지난달부터 롯데케미칼(5천 억원), 롯데정밀화학(3천억 원), 우리홈쇼핑(1천억 원)로부터 운영자금을 차입했고 유상증자를 통해 롯데케미칼(875억 원), 호텔롯데(861억 원), 롯데알미늄(199억 원)로부터도 자금을 조달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은 11일 SBS 경제와이드 모닝벨에 출연해 롯데건설의 계열사 자금 조달에 관련해 “현재 시중에 자금사정이 급격히 악화됐고 특히 PF 대출은 거의 갱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은 은행 등 금융기관이 특정사업의 사업성과 장래 현금흐름을 예상해 자금을 지원해주는 금융기법이다. 레고랜드 사태와 건설부동산 경기 악화로 현재 자금시장에서는 사실상 PF를 통한 자금 융통이 막혀있는 상황이다.
김 소장은 롯데건설 경영상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계열사들이 함께 부실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도 언급했다.
롯데건설은 국내 주택시장 지위와 사업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과거 두산그룹의 사례 등을 보면 미분양 증가 등 국내 부동산 경기침체 상황이 직격탄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산건설은 지난 2010년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순위 10위권에 진입하며 대형 건설사 대열에 합류했었지만 2013년 일산위브더제니스를 비롯 준공 사업장에서 미분양이 발생하면서 큰 폭의 손실을 낸 뒤 적자에 시달려왔다.
두산건설은 두산그룹에서 1조5천억 원 규모의 자금조달까지 받았고, 이는 나중에 두산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롯데건설은 또 유동성 상황이 어렵다는 시장 인식으로 수주시장 등 사업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 최근 롯데건설이 공을 들였던 서울 용산구 한남2구역 수주전에서 패배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바라본다.
롯데건설은 정비사업 관련 유동화증권을 포함 올해 11월과 12월 만기가 돌아오는 유동화증권 규모가 1조7442억 원에 이른다.
롯데건설이 2022년 9월 말 기준 별도기준으로 현금성자산 7천억 원 등에 토지와 건물, 장단기 투자증권 등을 통한 재무여력을 확보하고 있는 점과 최근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조달한 자금 규모 등을 고려하면 충분한 상환 능력을 갖고 있다.
롯데건설은 2023년에도 1분기에 1조8696억 원, 2분기 4819억 원, 3분기 4030억 원, 4분기 이후 8931억 원 등 유동화증권 만기가 도래한다.
결국 올해 11월부터 내년까지 롯데건설 PF 우발채무 규모는 약 5조3918억 원 수준이다.
홍석준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롯데건설이 그룹의 직간접적 지원 아래 선제적으로 자금조달을 추진하는 점은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현재 추진하고 있는 1조 원 이상의 은행권 차입, 담보대출을 포함한 유동성 확보 방안의 최종적 실현 여부에 관해서는 추가적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실장은 “롯데건설이 PF 우발채무 관련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지 못하면 펀더멘털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기업평가도 “롯데건설은 다수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상당수가 미착공 사업으로 구성돼 있고 만기구조가 단기화돼 있다”면서 PF 우발채무 관련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물론 일각에서는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과장된 우려라는 시선도 나온다.
롯데건설은 위험도가 낮은 정비사업 신용보강을 제외하면 PF 우발채무 규모가 약 4조6100억 원가량으로 파악되는데 여기서도 그룹 소유 부지 개발사업 건을 빼면 실질적 우발채무 규모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단기 PF 금융환경이 아직 정상화되지 않아 선제적 대응차원에서 안정적 재무구조를 갖기 위해 계열사를 통해 자금조달을 하고 있다”며 “둔촌주공처럼 일부는 차환이 되고 있기도 하고 국내외 은행 등을 통해서도 자금조달을 꾸준히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