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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브리핑] '롯데쇼핑-오카도 연합군'에 이커머스업계는 왜 시큰둥할까

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 2022-11-03 14: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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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브리핑] '롯데쇼핑-오카도 연합군'에 이커머스업계는 왜 시큰둥할까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HQ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이 1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영국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그룹의 대표이사 팀 스타이너와 온라인 그로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한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롯데쇼핑>
[비즈니스포스트] “롯데가 지금이야 맥을 못 추고 있지만 한 방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1년여 전 한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온라인사업을 놓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롯데그룹이 언젠가는 한 번은 독하게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느냐는 얘기였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맏형’ 소리를 듣지만 온라인에서는 존재감이 워낙 미미한데 이에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말이죠.

이 관계자는 수많은 오프라인 매장 등 자산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한다면 이와 관련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근거도 들었습니다.

롯데쇼핑이 1일 밝힌 영국 온라인 식료품 유통기업 오카도와의 파트너십 체결은 이런 점에서 ‘롯데가 보여줄 수 있는 한 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카도는 오프라인 매장 하나 없이 영국 식료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자체 개발한 하드웨어와 인공지능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가장 효율적인 식료품 배송 시스템을 구축했죠.

3차원 격자 형태로 꾸려진 물류창고 위를 1천여 대의 로봇이 초속 4m의 속도로 빠르게 이동하며 고객들이 주문한 상품을 담고 포장하는 시스템은 오카도의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아마존을 잡으려면 오카도 시스템을 써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실제로 이 시스템은 ‘오카도 스마트 플랫폼(OSP)’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스페인,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의 주요 유통기업이 쓰고 있을 정도죠.

롯데도 이런 점에 분명 매력을 느꼈을 겁니다. 현재의 '판'을 뒤집으려면 가장 효율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오카도와의 협력을 해법의 열쇠로 본 것입니다.

비록 '자체 역량으로는 시장의 판도를 뒤집기 역부족'이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지만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빠르게 치고 올라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점은 결코 의미가 없지 않습니다.

어쩌면 ‘롯데 정도는 이미 제친 것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여러 이커머스기업들을 살짝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행보로도 여겨집니다.

롯데쇼핑의 행보를 보는 이커머스업계의 반응은 사뭇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롯데가 무엇을 하든 큰 관심이 없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커머스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롯데가 오카도와 협력해서 판을 바꿀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롯데가 그동안 잘못된 판단들을 여러 차례 하지 않았나.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느냐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오카도가 좋은 시스템인 것은 맞지만 한국에 적합한 시스템인지는 모르겠다”며 “오카도 플랫폼을 한국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미 쿠팡과 SSG닷컴, 컬리, 오아시스와 같은 기업들은 고객의 빅데이터를 많이 확보하고 있어 롯데-오카도 연합군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롯데쇼핑의 이번 행보는 이커머스업계의 다른 기업들이 긴장하게 할 만한 ‘결정적 한 방’처럼 느껴지진 않는다는 것이죠.

롯데쇼핑의 계획이 너무 장기적이라 다른 이커머스기업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롯데쇼핑은 오카도의 스마트 플랫폼 OSP를 적용한 자동화 물류센터(CFC)를 2030년까지 모두 6개 만들기로 했습니다. 첫 CFC는 2025년에 오픈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최소 3년 뒤, 길게는 8년 뒤를 내다본 투자입니다. 당장 부지부터 선정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정 시간이 걸리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이커머스업계가 롯데그룹의 준비를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커머스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커머스시장은 해마다, 반기마다, 분기마다 수없이 많은 변곡점이 생기는 시장인데 롯데의 계획은 다소 뜬구름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며 “롯데그룹이 오카도와 협력을 본격화할 때가 되면 시장이 어떻게 바뀌어있을지 알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솔직히 롯데가 무엇을 하든 다른 이커머스기업 모두 가던 길을 그대로 간다는 입장일 것이다”며 “당장 도입한다는 것도 아니고 몇 년 뒤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가지고 위협을 느끼는 기업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롯데쇼핑의 목표를 놓고 볼 때 진짜 의지가 담긴 변화가 맞느냐는 시선도 있습니다.

롯데쇼핑은 이번 오카도와 협력으로 10년 뒤인 2032년에 온라인 식료품 사업에서 매출 5조 원을 내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쿠팡과 컬리, SSG닷컴 등에서 거래되는 식료품의 거래액이 한 해 2~3조 원 규모라는 점을 감안할 때 롯데쇼핑이 내건 10년 뒤 목표가 다소 한가해 보인다고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 모였습니다.

롯데가 걱정된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이커머스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걱정이다”라고 운을 뗀 뒤 “오카도와 비슷한 자동화 물류센터를 구축한 국내 다른 기업만 봐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오카도 시스템을 들여온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물론 롯데에서는 앞으로 성장하기 위한 투자라고 말하지만 오카도에 해마다 내야 하는 수수료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선두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커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 100% 맞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기업의 행보를 평가절하하거나 애써 무시하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일리가 있는 지점도 분명 보였습니다. 특히 롯데에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롯데쇼핑 관계자들이 새겨야 할 중요한 포인트로 여겨집니다.

유통업계에서만 35년가량 잔뼈가 굵은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HQ(헤드쿼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겠죠.

의심을 잠재우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성과를 내는 것입니다. 앞으로 김 부회장의 행보를 더욱 눈여겨 봐야할 이유입니다. 남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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