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안나 기자 annapark@businesspost.co.kr2022-10-27 17: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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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며 금융권이 휘청이고 있다.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50조 원 이상의 자금을 시장에 풀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시장은 여전히 불안에 휩싸여 있다.
▲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ABSTB(자산담보부사채),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등 단기 부동산 PF 유동화증권 가운데 증권사의 신용공여 물량은 27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증권사들.
일각에서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며 중소형 증권사들의 연쇄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ABSTB(자산담보부사채),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등 단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 가운데 증권사의 신용공여 물량은 27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가 보증을 선 PF 유동화증권의 월별 만기 물량을 살펴보면 10월 말 6조7천억 원, 11월 말 10조7천억 원, 12월 말 9조8천억 원이다.
부동산 PF 자체는 3년 가량의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반면 유동화증권의 만기는 3개월 이내 혹은 6개월~1년 사이로 짧다. 대신 유동화증권의 만기가 돌아오면 차환발행(롤오버)을 통해 만기를 계속 연장해 사업을 진행한다.
강원도 레고랜드 PF의 ABCP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서 채권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위축됐고 채권 투자수요는 자취를 감췄다. 물론 27일 강원도가 뒤늦게 레고랜드 채무 2050억 원을 12월15일까지 전부 갚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시장은 심하게 흔들린 상태다.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 상태에 빠진 것인데 시장 유동성이 사라지면서 PF 유동화증권 차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만기 연장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PF 유동화증권과 관련해 수수료 수익을 노리고 신용공여에 나선 증권사들은 롤오버에 실패한 물량을 직접 매입하는 등 책임을 져야 한다. 일부 증권사는 유동화증권 차환발행을 포기하고 자체자금을 투입해 매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자금경색 상황이 지속된다면 증권사들은 차환발행에 실패한 유동화증권을 떠안기 위해 계속 대규모자금을 투입해야만 한다.
규모가 큰 증권사들은 자금 동원력과 자본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차환에 실패한 물량을 직접 매입할 수 있는 여력이 어느정도 있다. 하지만 중소형 증권사로서는 당장 매입 자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특히 하이투자증권, BNK투자증권, 현대차증권, 교보증권, 다올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는 부동산PF 신용공여 잔액이 자기자본의 절반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자체 자본과 계열 지원 등을 통한 자금 동원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해 유동성 대응력이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채권시장안정펀드 가동 및 위험 수위가 높은 증권사 대상 유동성 지원 등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실효성을 향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금번 유동성 대책에 따른 효과가 중소형사의 유동성 안정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라며 "자금 동원력이 떨어지거나 우발채무 현실화 우려가 높은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유동성지표, 유동화증권 차환 및 채무보증 이행, 대체자금조달능력 확보 여부 등을 꾸준히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소형 증권사 부실 우려를 두고 앞서 2011년 발생한 저축은행 사태를 떠올리는 시선도 나온다.
저축은행사태는 2011년부터 약 2년동안 무려 24곳에 이르는 저축은행이 줄줄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사건을 말한다.
당시 저축은행의 줄도산 원인 역시 부동산 PF였다. 고수익을 노린 저축은행이 무분별하게 PF 대출 규모를 늘렸는데 이에 더해 부동산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서 PF 대출의 부실화가 급속도로 일어났으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저축은행이 줄지어 문을 닫게 되자 돈을 예치한 고객들은 대규모 원금손실 피해를 입었으며 예금보험공사는 사태해결을 위해 무려 27조 원에 이르는 자금을 투입하기도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PF의 경우 긴 호흡으로 진행되기 때문이 이미 작년 말부터 금융사들은 신규 PF를 줄이는 등 리스크 관리를 해왔다"면서도 "다만 시장 유동성이 씨가 마른 상황인데 아무리 이익이 많이 나는 회사라도 당장 어음 만기의 막을 돈이 없으면 부도가 나는 것"이라며 유동성 부족에 따른 흑자도산을 우려하기도 했다. 박안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