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풍그룹은 73년째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고려아연을 중심으로 계열분리가 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
[비즈니스포스트] 73년째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영풍그룹과 관련해 고려아연을 중심으로 계열분리가 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창업주인 고 장병희 명예회장과 고 최기호 명예회장이 함께 영풍그룹을 세웠지만 3세 경영에 들어서면서 두 집안의 공동경영이 흔들리는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윤범 고려아연 대표이사 부회장이 2차전지 소재를 포함해 신사업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을 놓고 기업가치를 높여 계열분리에 필요한 우호지분을 만들기 위한 포석이 깔려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 영풍그룹 장씨-최씨 집안 계열분리 가능성은?
고려아연이 영풍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온 것은 최근 한화임팩트와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촉발됐다.
한화임팩트는 5일 미국 에너지분야 투자 자회사인 한화H2에너지USA가 고려아연과 신재생에너지 및 신사업 분야에서 사업제휴를 맺으면서 9월8일 진행될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고려아연 보통주 5%가량을 취득한다.
이를 통해 고려아연이 한화그룹으로부터 4718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게 되는 셈인데 사실상 한화그룹이 최 부회장의 계열분리 추진에 백기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화H2에너지USA의 출자를 공시하는 과정에서 한화임팩트가 2021년 8월19일에 장내매수를 통해 이미 고려아연 지분 1.88%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계열분리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의 현재 최대 주주는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이 지배하는 영풍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 이전 2022년 6월30일 기준으로 27.4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포함해 장 회장 측의 지분은 약 32.99%인 반면 최윤범 부회장측 지분은 15.54%로 장 회장측이 반대한다면 계열분리가 힘들다.
하지만 유상증자가 진행된 이후에는 기존 지분들이 일부 희석되면서 계열분리를 추진할 만한 상황이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유상증자 뒤 장 회장측 지분은 31.37%, 최 부회장측 지분은 14.80%로 변동된다.
여기에 한화임팩트가 기존에 보유한 지분(1.88%)과 자회사가 받을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지분 5%를 더하면 최 부회장측 우호지분은 21.68%까지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의 지분 차이는 약 9.7%까지 줄어들게 된다. 이에 더해 자사주도 계열분리에 일정 변수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신사업 협력기업에 넘긴다면 장 회장과 최 부회장 사이 지분 격차는 약 3.67%까지 줄어들게 된다.
사실 원만하게 계열분리가 이뤄지려면 영풍을 포함해 장 회장측 지분을 최 부회장측이 매입하면 된다.
장 회장측의 고려아연 지분 가치가 4조 원에 육박하는 만큼 최 부회장측이 보유한 영풍 등의 주요 계열사 지분과 맞교환하고 차액을 지급하는 방식도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장 회장측도 고려아연 지분을 장내매입해 경영권 분쟁으로 커질 조짐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시선이 많다.
30일 고려아연 공시에 따르면 영풍그룹 내 장 회장이 지배하는 계열사인 코리아써키트와 에이치씨가 23일부터 26일까지 고려아연 주식 6402주를 장내 매수했다. 지분율은 유상증자 이전 기준으로 0.03%다.
영풍그룹 계열사가 고려아연 주식을 매입한 것은 2019년 이후 약 3년 만이다. 그런 데다 코리아써키트는 장형진 회장의 장남이자 차기 그룹총수로 유력한 장세준씨가 대표이사를 맡은 회사다.
▲ 영풍그룹 창업 가문인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놓고 계열분리를 위해 지분 경쟁을 벌일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사진은 최윤범 고려아연 대표이사 부회장. <고려아연 홈페이지 갈무리> |
◆ 최윤범 2차전지 등 신사업 앞세워 소액주주 설득할까
최 부회장으로서는 계열분리를 이루기 위해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진다면 최 부회장 측과 장 회장 측의 지분 격차가 크지 않은 만큼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수 있어서다.
국민연금은 6월30일 기준으로 고려아연 주식 164만4039주(유상증자 이전 기준 8.71%)를 쥐고 있다. 소액주주 지분은 38.34%다. 유상증자 이후에는 국민연금 지분이 8.28%, 소액주주 지분이 36.42%로 추산된다.
최 부회장은 최근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박 등 2차전지 관련 사업을 통해 성장성을 부각하며 계열분리와 관련해 소액주주들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액주주들 가운데 외국인 주주 비중은 30일 기준 19%로 높다는 점에서 신사업이 설득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고려아연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와 수소, 2차전지용 소재, 자원순환사업 등에 10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파악된다.
고려아연은 올해 6월 LG화학과 전구체 합작법인을 설립해 2차전지 핵심소재 사업에 진출했다.
자회사인 케이잼도 올해 10월부터 전기차배터리 소재인 동박 양산에 나서는 등 전기차 배터리 소재로 확장을 예고했다.
이외에도 7월 미국 전자폐기물 업체인 이그니오홀딩스 지분 73%를 4324억 원에 인수하면서 자원순환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그니오홀딩스는 미국에서 전자폐기물을 수거 파쇄해 중간재를 판매하는 도시광산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 73년째 ‘한 지붕 두 가족’ 결별 이유는
영풍그룹은 창업주였던 고 장병희 창업주와 고 최기호 창업주가 동업으로 창업한 영풍기업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두 창업주는 모두 황해도 봉산 출신으로 해방 이후 남한으로 내려와 1949년 11월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두 창업주는 ‘수출을 통한 한국 경제 재건’이라는 설립 목표에 걸맞게 초기에는 농수산물과 철광석 등의 수출 위추의 산업을 중심으로 운영했다. 1970년 석포제련소를 세우면서 현재 영풍그룹의 주력 사업인 비철금속 제련업에 발을 들였다.
1974년 첫 번째 자회사인 고려아연을 세웠는데 이 과정에서 창업주들의 차남인 장형진 영풍 회장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그룹 경영 일선에 나와 2대 경영을 이끌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두 가문의 결별설이 불거진 시기는 2019년 3세 경영을 시작하면서다.
영풍그룹은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순환출자와 관련한 압박을 받으면서 7개 있던 순환출자 구조를 모두 해소했다.
이 과정에서 현재 고문으로 물러나 있는 장형진 회장은 서린상사가 보유 중이던 영풍 지분 10.36%를 약 1330억 원에 매입했다. 대신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 지분을 잇달아 내다팔았다.
이에 따라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영풍의 지분율(법인 제외)은 장회장 일가가 29.29%, 최 부회장 일가가 14.04%로 2년여 만에 2배 이상 벌어졌다.
장 회장 일가의 영향력이 높은 계열사의 지분까지 포함하면 두 집안 사이 영풍의 지분 격차는 더욱 확대된다. 지배력이 강화된 장씨 일가 입장에서는 굳이 영풍그룹 공동경영 체제를 유지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최 부회장 집안도 장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계열사 지분을 털어냈다.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은 2018년 삼성전자에 연성회로기판(PCB)을 납품하는 영풍그룹 계열사 인터플렉스의 지분을 모두 팔았다.
영풍 관계자는 “최근 일부 계열사의 고려아연 지분 매입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계열분리는 내부적으로 전혀 논의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