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이 삼성전자를 제치고 200단 이상의 낸드플래시 양산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 176단 낸드플래시 이미지. <삼성전자> |
[비즈니스포스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이 삼성전자를 제치고 200단 이상의 낸드플래시 양산에 나서면서 기술력 측면에서 삼성전자의 ‘초격차(결코 따라올 수 없는 격차)’ 전략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아직 경쟁사보다 기술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2023년에는 200단 이상의 낸드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이 최근 232단 낸드 양산을 세계 최초로 시작했다고 발표한 뒤 곧바로 SK하이닉스가 세계 최고층인 238단 낸드 개발에 성공하면서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기술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휘발성 메모리반도체인 D램과 달리 전기가 끊어진 상태에서도 데이터가 보존되는 비휘발성 메모리반도체다. 저장단위인 셀을 많이 쌓을수록 좁은 면적에 더 많은 저장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반도체기업들은 적층 단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238단 낸드는 데이터 전송 속도가 이전 세대보다 50% 빨라졌으며 칩이 데이터를 읽을 때 쓰는 에너지 사용량은 21% 줄어 전성비(전력대비성능)도 개선됐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먼저 176단 낸드플래시를 양산했고 올해도 가장 빠르게 232단 낸드플래시를 양산하기 시작하면서 적층 단수 경쟁에서는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삼성전자는 2021년 말이 되서야 176단 낸드를 양산하는 등 과거와 달리 적층 단수 경쟁에서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6년 16단 낸드를 시작으로 2019년 128단 낸드까지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적층 단수를 늘려왔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21년 ‘마이크론에 추월당한 한국 반도체’라는 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메모리 최신 공정에서 경쟁사에 뒤처지는 상황은 지난 1995년 이후 처음”이라며 “낸드에서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고난도 ‘싱글 스택’ 기술을 고수하다 적절한 시점에 ‘더블 스택’으로 전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도 연구원이 지적한 것처럼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72단부터 더블 스택 공정을 활용한 반면 삼성전자는 2021년 양산을 시작한 176단부터 더블 스택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과거와 달리 단수 경쟁의 의미가 줄어들었고 여전히 기술력에 있어서는 가장 앞서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낸드플래시 적층 기술은 가장 아래 셀과 맨 위층에 있는 셀을 하나의 묶음으로 만든 싱글 스택과 두 개의 묶음을 하나로 합친 더블 스택의 두 가지로 나뉜다.
싱글 스택은 셀을 묶는 구멍이 적어 데이터 손실도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방법으로는 200단 이상을 쌓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높이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초고단에서는 더블 스택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블 스택을 활용하면 같은 공정을 2회 반복되는 탓에 공정 효율성이 떨어져 제품단가가 높아지고 셀을 묶기 위한 구멍이 많아져 데이터 손실이 많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삼성전자가 128단까지 싱글 스택을 고수했던 것도 이런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현재 적층 경쟁에서 삼성전자가 한 발 뒤처진 것은 경쟁사보다 뒤늦게 더블 스택 공정을 도입한 탓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싱글 스택으로 128단까지 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인만큼 향후 더블 스택을 활용한 200단 이상의 경쟁에서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단순 계산으로도 삼성전자는 지금 당장이라도 256단 적층까지 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낸드플래시는 단순히 높이 쌓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고객사에 맞춰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며 원가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등을 다각도에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적층 경쟁에서 느긋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이와 같은 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만 매체 디지타임스는 “삼성전자가 176단 낸드 제조공정에 더블 스택 기술을 접목함에 따라 앞으로 200단 이상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이르면 2023년 상반기에 200단 이상의 낸드 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체적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낸드플래시는 향후 5년의 상세한 기술개발 로드맵이 준비돼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기술 개발의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 데 과거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경쟁사가 많이 따라온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삼성전자와 기술격차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