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M 반도체 설계 기반을 활용하는 퀄컴 프로세서 이미지.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퀄컴이 독점방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여러 반도체기업들과 공동으로 일본 소프트뱅크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 ARM을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ARM 인수합병이나 지분 투자 계획을 검토하고 있던 SK하이닉스도 기회를 노릴 수 있지만 퀄컴 주도 컨소시엄에 참여해 거둘 수 있는 실익은 매우 적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31일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와 인터뷰를 인용해 퀄컴이 ARM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까지 엔비디아에 ARM 매각을 추진했지만 반도체 기술 독점을 우려한 세계 주요 국가 경쟁당국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ARM의 반도체 설계기반을 주요 반도체 제품에 모두 활용하고 있는 퀄컴이 인수를 시도한다면 독점방지 규제는 더욱 엄격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퀄컴이 여러 반도체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ARM을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은 이런 규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분석된다.
아몬 CEO는 컨소시엄 방식의 인수가 ARM 중립성을 지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많은 기업들이 참여해야 ARM이 독립적으로 유지되는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가 엔비디아에 ARM을 매각하려던 가격이 400억 달러(약 49조 원)에 이른다는 점도 퀄컴이 적극적으로 다른 반도체기업의 투자 참여를 유도해야 하는 이유로 분석된다.
글로벌 대형 반도체기업들이 ARM 지분 참여에 수조 원씩을 들인다면 퀄컴이 인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자금 부담도 크게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ARM 인수를 검토하며 컨소시엄 구성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던 SK하이닉스가 퀄컴 주도 컨소시엄에 참여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ARM 반도체 설계기반을 활용해 프로세서를 설계하는 삼성전자와 애플, 대만 미디어텍 등 대형 시스템반도체기업도 ARM 투자 참여에 발을 들일 이유가 충분하다.
최근 소프트뱅크의 실적 부진에 따라 ARM의 재무 상황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연구개발 투자 여력을 확보하지 못해 기술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떠오르고 있다.
이는 퀄컴과 삼성전자, 애플 등 ARM 고객사들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 약화를 낳을 수밖에 없는 만큼 주요 시스템반도체기업들이 ARM에 지분 투자로 자금을 적극 지원할 요인이 크다.
반면 메모리반도체 전문기업 SK하이닉스는 ARM을 인수하며 충분한 지배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투자 참여로 거둘 수 있는 실익이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가 ARM 설계 기반을 활용하는 고성능 프로세서 등을 개발하거나 생산하기 않고 있기 때문에 투자 참여로 거둘 수 있는 직접적 실익이나 수혜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만약 SK하이닉스가 ARM에 충분한 지배력을 확보해 다른 반도체기업에 제공하는 기술 라이선스 및 로열티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면 이는 새 성장동력을 키우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퀄컴이 추진하는 것과 같이 수많은 반도체기업이 십시일반 지분 투자를 통해 ARM을 인수하는 방식이 현실화된다면 SK하이닉스가 참여해야 할 이유는 크지 않다.
퀄컴이 앞으로 ARM 인수와 관련해 소프트뱅크와 정식으로 논의를 시작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면 SK하이닉스가 투자 기회를 포기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박정호 SK스퀘어 및 SK하이닉스 부회장이 ARM 지분 인수 계획을 거론하며 지분 투자 등 다양한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만큼 SK하이닉스의 투자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SK하이닉스가 ARM 일부 지분을 확보하는 데 그친다면 반도체사업에서 시너지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이를 계기로 다른 반도체기업과 협력 강화 기회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메타버스와 자율주행 등 신산업 발전에 따라 ARM의 성장 전망이 밝아지고 있다는 점도 SK하이닉스가 투자 가능성을 엿보기 충분한 이유로 꼽힌다.
향후 ARM의 기업가치가 높아진다면 SK하이닉스의 지분 투자는 금전적 이익으로 돌아오게 된다.
SK하이닉스가 과거 키오시아(옛 도시바메모리) 인수에 참여해 일부 지분을 확보한 것도 직접적 기술 협력보다 지분 투자를 통한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퀄컴이 실제로 반도체기업 연합군을 구축해 ARM 인수 시도를 본격화하고 SK하이닉스에 ‘러브콜’을 보낸다면 SK하이닉스도 긍정적으로 응답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퀄컴은 과거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추진할 때 기술 독점을 우려해 반대하는 의견을 냈던 만큼 가능한 많은 반도체기업의 투자 참여를 유도할 공산이 크다.
소프트뱅크는 내년 초를 목표로 ARM 상장도 추진하고 있는데 아몬 CEO는 퀄컴의 지분 인수와 상장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는 시각도 보이고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