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성 기자 noxket@businesspost.co.kr2022-05-27 16: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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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누가 뭐라 해도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장애인 사원 채용입니다. 매출이 늘어나는 만큼 곧장 장애인을 동료로 모실 겁니다.”
지난 20일 받은 서면인터뷰 답변지에서 노순호 동구밭 대표는 사회적기업 동구밭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 노순호 동구밭 대표. <동구밭>
동구밭은 천연 성분과 유기농 인증 재료를 사용해 고체비누, 고체샴푸, 고체세제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 회사다. 2015년 설립됐고 2018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주력상품인 고체샴푸, 고체세제 등은 기존 액체 형태와 달리 제품을 담기 위한 별도의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또 폐지를 재활용한 재생 종이로 포장돼 쓰레기를 최소화했다.
동구밭 제품은 인터넷 자사몰과 함께 네이버 등 온라인뿐 아니라 올리브영, 알라딘중고서점 등 오프라인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2천 원대부터 7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특히 동구밭은 발달장애인 고용을 통해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만드는 지속가능한 일상’이라는 미션을 추구한다.
노 대표는 “장애인 사원과 비장애인 사원의 고용비율을 50%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2021년 기준 동구밭 전체 직원(87명) 가운데 장애인 사원은 35명이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비장애인 사원 채용이 증가해 일시적으로 장애인 사원 비중이 줄었다고 한다.
동구밭은 현재 발달장애인 채용공고를 내놓고 있다. 비누 가공·포장 업무, 디자인 업무, 사무보조 등 모두 17명을 채용한다. 채용이 마무리되면 장애인 사원 비중은 전체의 절반을 넘게 된다.
노 대표는 홍익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법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비즈니스로 사회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는 대학생 연합단체 인액터스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사실 동구밭의 시작은 텃밭 운영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동네 어귀에 있는 밭을 뜻하는 동구밭이다. 발달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농작물을 키우면서 사회성을 높이도록 돕고 이후 일자리까지 연계해주려 했다. 도시농부로도 육성할 수 있다고 봤다.
노 대표는 “대학 시절 뿌듯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2014년 인액터스 친구들과 ‘동구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발달장애인이 텃밭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농작물을 키우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텃밭을 찾는 장애인들이 늘어났음에도 좋은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도시농부를 꿈꾸는 장애인도 없었다. 수익성도 떨어져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노 대표는 발달장애인들을 직접 고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2017년 장애인들도 할 수 있는 고체 천연비누 제조 사업으로 과감히 사업방향을 바꿨다.
노 대표는 “발달장애인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 단순히 고용률만 강조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며 “많은 기업들이 발달장애인 고용 이후 근속기간이나 그들의 삶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왜 하필 고체 천연비누 사업에 뛰어들게 됐을까.
노 대표는 “발달장애인이 쉽게 만들 수 있는지, 자본이 적게 드는지, 안 팔릴 가능성을 대비해 유통기한이 긴지, 1위 가능성이 있는지 등의 기준을 고려했다”며 “사회적기업도 업계 1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물론 발달장애인들을 교육시키고 양질을 제품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 국내 천연비누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판매가 원활히 이뤄질지도 불확실했다.
노 대표는 유기농 인증 재료 등 안심할 수 있는 성분을 사용하고 거품이 풍부하게 생기도록 코코넛에서 추출한 계면활성제를 사용하는 등 품질도 뛰어난 친환경 상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또 비누 외에 고체 주방세제, 고체 샴푸, 고체 린스 등을 만들면서 상품군도 넓혔다.
사회적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국제적 인증도 받았다.
프랑스 이브 비건 인증(동물실험이나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제품)과 미국 USDA 오가닉 인증(내용물 95% 이상이 유기농 원료인 제품)도 부여받았다. 품질경영시스템인증서와 환경경영시스템인증서 등도 획득했다.
동구밭은 오랜 노력 끝에 주문자사표부착생산(OEM), 주문자개발생산(ODM) 등을 통해 거래처를 점차 넓히면서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친환경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자체브랜드 판매량도 급증했다.
매출 규모는 2019년 22억 원에서 2020년 55억 원, 2021년 110억 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직원 수도 37명에서 87명으로 증가했다.
노 대표는 “아무리 친환경적 제품이라도 사용감이 떨어지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며 “6개월간 수십만 개의 비누를 망쳐서 버리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만의 노하우와 레시피가 생겨 지금의 동구밭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동구밭이 판매하는 고체샴푸 제품 이미지. <동구밭>
성장과 함께 동구밭은 발달장애인 고용이라는 미션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하남에 새로운 공장도 지었다.
노 대표는 “공장은 발달장애인 사원들이 스스로 대중교통 출퇴근을 할 수 있도록 외곽이 아닌 도심에 설립했다”며 “발달장애인 사원은 근무시간을 자신의 역량에 맞게 조정할 수 있고 50분 근무 뒤 10분 휴게시간도 별도로 제공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분기별로 영업이익의 10%를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있다”며 “성과급 지급일에는 발달장애인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도 함께 보낸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난해까지 동구밭을 떠난 발달장애인 사원은 모두 3명뿐이다. 이들도 모두 다른 직장으로 이직에 따른 퇴사였다.
노 대표는 “발달장애인의 근속 연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인이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망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올해는 지난해 출시한 핸드크림에 이어 더 많은 화장품을 내놓기 위해 연구개발을 하고 있으며 강아지 비누 등 반려동물 상품군도 새로 내놓으려 한다”고 말했다. 은주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