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하형일 11번가 사장이 2023년 코스피 상장을 앞두고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높이기 위해 고삐를 죌 것으로 예상된다.
SK스퀘어의 자회사 SK쉴더스와 원스토어가 고평가 논란의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고 코스피 상장을 철회해 그 다음 상장 도전에 나설 주자인 11번가를 새로 맡은 하 사장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
13일 이커머스업계에 따르면 SK쉴더스, 원스토어 등 SK스퀘어의 자회사들이 잇따라 상장에 실패하며 11번가의 상장에도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11번가 역시 다른 두 자회사와 마찬가지로 미래 성장성을 내세우며 상장을 추진하고 있어 기업가치와 관련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구나 최근 매출이 정체를 보이는 데다 영업손실 규모가 확대되는 등 성장성과 수익성에서 모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11번가는 2021년 매출 5615억 원, 영업손실 694억 원을 냈다. 2020년과 비교해 매출은 3% 증가하는데 머물렀고 영업손실은 7배 이상 늘었다.
2021년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주문이 늘며 국내 이커머스시장 규모가 2020년보다 약 20%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11번가는 성장성과 수익성에서 모두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11번가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지난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생필품 판매를 주력으로 하는 업체들이 성장했을 뿐 뷰티, 스포츠, 여행 등의 품목의 비중이 큰 업체들에게는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는 코로나19가 완화되며 생필품 이외의 다른 품목의 수요가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11번가의 매출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바라봤다.
3월부터 새로 11번가를 맡은 하형일 사장으로서는 성장성뿐 아니라 내실까지 모두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하 사장은 SK텔레콤에서 투자유치, 사업개발 전문가로 평가받은 인물로 2023년 11번가 상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 사장은 3일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타운홀미팅에서 아마존글로벌스토어 강화와 직매입 사업 확대 등을 기업가치 제고 방안으로 제시했다.
아마존과 협력해 해외직구서비스를 강화해 국내 이커머스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거래액 기준 11번가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6%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1~3위인 네이버(17%), SSG닷컴(15%), 쿠팡(13%)과 2배 이상 차이가 나면서 5위 롯데온(5%)과는 차이가 크지 않다.
11번가는 2021년 8월 웹사이트와 모바일앱에서 아마존이 판매하는 상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아마존글로벌스토어를 내놓으며 국내 해외직구족을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아마존의 미국 판매상품 수백만 개를 아마존글로벌스토어에 추가했다.
하 사장은 사업자를 11번가에 입점시키는 기존 오픈마켓 사업뿐 아니라 직매입사업 확대를 통해서도 외형키우기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장에서는 쿠팡이 직매입사업(로켓배송)을 통해 외형을 키워 기업가치를 키웠던 길을 11번가도 따라가려는 것으로 보는 시선이 나온다.
직매입사업은 사업자가 신선식품, 생필품 등의 상품을 미리 매입한 뒤 물류센터에 쌓아놓은 뒤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다음날 배송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직매입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물류센터와 배송인프라의 확보가 중요하다.
다만 11번가는 직매입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쿠팡 등의 경쟁사처럼 대규모 물류센터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직매입사업을 키우지는 않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11번가는 현재 전국에 보유하고 있는 물류센터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배송업체와 제휴를 통해 직매입사업에 필요한 비용부담을 최소화해 수익성을 강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1번가 관계자는 “현재 한 자릿수 직매입사업의 매출 비중을 두자릿수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다만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직매입사업을 확대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 사장은 타운홀미팅에서 “완전히 다른 버전의 11번가로 지속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다양한 국내외 파트너와 협력하는 것을 포함해 성장을 위한 모든 전략과 투자를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11번가는 4월 국내외 증권사 10여 곳에 코스피 상장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며 기업공개(IPO) 절차 준비하고 있다. 5월 중으로 상장주관사단을 선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업계에서는 현재 11번가의 기업가치가 4조~5조 원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1번가는 2018년 9월 SK플래닛에서 분사할 때 국민연금·새마을금고·H&Q코리아로 구성된 컨소시엄 ‘나일홀딩스’에 지분 18.2%를 매각하고 5천억 원을 투자받았다.
당시에는 기업가치를 2조7천억 원 수준으로 평가받았는데 이커머스 업계 성장성이 부각되며 기업가치 평가액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11번가와 마찬가지로 2023년 기업공개를 추진하는 SSG닷컴 역시 실적이 좋지 않음에도 기업가치가 약 10조 원으로 평가된다.
그런 점에서 11번가 기업가치를 향한 투자은행업계의 평가가 과도하지만은 않다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SSG닷컴은 2021년 매출 1조4942억 원, 영업손실 1079억 원을 냈다. 2020년보다 매출은 15.5% 증가한 반면 영업손실 규모는 2배 이상 커졌다.
11번가 관계자는 “이커머스 업계에서 11번가의 영업손실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면서 “다만 상장을 앞둔 상황에서 성장성뿐 아니라 수익성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영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