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유퀴즈) 방송화면 갈무리.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에 정치권과 방송계가 시끄럽다. 윤 당선인의 예능출연이 정치색 논란으로 번지며 진행자 유재석씨에게 불똥이 튀었다.
정치인의 예능출연은 사반세기 넘게 이어지며 이미 방송계에서 익숙한 포맷이 됐으나 이번 일로 양면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됐다. 정치인에게는 방송 출연을 통해 기존과 다른 친숙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긍정 효과가 있지만 방송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냐는 비판도 뒤따라 올 수밖에 없다.
1일 정치권과 방송계에서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유퀴즈)이 정치편향으로 도마에 오르자 tvN의 모회사 CJENM을 향해 ‘국민MC’라 불리는 유재석씨 뒤에 숨지 말고 직접 이 상황을 해명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여당 간사인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성명을 통해 윤 당선인의 유퀴즈 출연을 놓고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압력을 받은 것인가 스스로 고개를 숙인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조 의원은 “
문재인 대통령,
김부겸 총리,
이재명 전 경기지사까지 프로그램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치인 출연을 거절했던 CJENM이 유독
윤석열 당선인만 방송에 내보냈다”며 “국민들이 계속 묻고 있지만 CJENM은 묵묵부답이고 유재석씨만 애꿎게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윤 당선인과 강호성 CJENM 대표가 검사시절 함께 근무했던 인연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는 점도 언급했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도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재석은 유퀴즈의 진행자일 뿐 출연자 선정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며 “유재석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적었다.
황씨는 “유퀴즈 제작진이
윤석열 외 정치인의 출연 섭외에 대해 ‘진행자가 정치인 출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을 한 모양인데 여기에 대한 해명은 제작진이 해야지 유재석이 할 것은 아니다”며 “CJ가 나서서 유재석을 보호하라”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윤 당선인의 유퀴즈 촬영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정치인의 홍보수단으로 인기 예능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2018년 처음 시작한 유퀴즈는 ‘우리네 이야기’를 담는 프로그램으로 정치색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표창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출연하긴 했으나 이 두 사람은 각각 프로파일러와 시각장애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번 사안을 두고 “국민예능을 망가뜨린 신권언유착이다”며 정치권이 방송개입에 손을 떼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CJENM의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퀴즈 제작진이 27일 방송 끝에 '나의 제작 일지'라는 제목의 에필로그를 내보내며 더욱 논란이 커졌다.
제작진은 "사람을 대하는 우리들의 시선만큼은 목숨처럼 지키고 싶었다"며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것인 우리의 꽃밭을 짓밟거나 함부로 꺾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정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이미 25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으나 이번처럼 논란이 크게 인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워낙 근소한 차이로 판가름이 났던 대선 직후 당선인 신분으로 출연한 데다가 지방선거도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에 출연 논란이 클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풍자 코미디가 아니라 정치인이 직접적으로 예능에 출연한 첫 사례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꼽힌다.
김 전 대통령은 1996년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이경규가 간다’에 출연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로 야당 당수 신분이었는데 4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제작진이 김 전 대통령의 집 앞으로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당시 김 전 대통령을 향한 ‘빨갱이’라는 이미지가 이 예능출연으로 많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노 전 대통령은 MBC의 또 다른 예능인 ‘느낌표 – 책을 읽읍시다’에 출연해 본인의 경험을 나누고 책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출연했으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SBS 예능 ‘힐링캠프’에 출연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때 이후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과 배우자 김혜경씨가 SBS 예능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에 고정출연한 적도 있고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유승민 전 의원 등이 KBS 예능 ‘냄비받침’에 출연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는
윤석열 당선인,
이재명 상임고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대선 주자들이 차례로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 출연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은 이런 방송 출연으로 대중적 인기와 친근함을 얻는다. 단상 위에 선 딱딱한 모습이 아닌 일상생활 속 친근한 모습이 전파를 타며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정치인을 출연시킨 방송 역시 화제를 모으며 평소 방송에 관심이 없던 이들을 끌어들이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집사부일체는 2021년 9월
윤석열 당선인이 출연한 회차 시청률이 7.4%로 직전 회차의 두 배를 넘겼다. 다음 주
이재명 상임고문이 출연했을 때 시청률은 9.0%까지 치솟으며 22개월 만에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에
윤석열 당선인이 출연한 유퀴즈 시청률은 4.4%로 올해 평균 시청률 4.71%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됐던 것을 고려하면 시청률 면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셈이다.
윤 당선인의 유퀴즈 출연을 두고 출연자는 물론 제작진과 방송사 역시 잃은 것에 비해 얻은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서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