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지난해부터 조선업계에 반가운 수주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다.
불황의 터널을 지나 장기 호황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말도 나온다. 신조 선박가격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어 조선사들은 수익성도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업의 최대 라이벌인 중국과 경쟁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조선업 패권을 넘겨받은 것처럼 비춰질 때도 있었는데 한국 조선업이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조선업을 육성하기 위해 막대한 금융지원 등을 통해 물량 공세를 펼쳐 왔다. 값싼 노동력과 원가, 세계적 해운사를 보유한 자체 내수시장을 등에 업고 조선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했다.
그럼에도 한국 조선업이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친환경선박 등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 품목의 경쟁력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게 LNG운반선이다. 조선업에서 환경규제의 여파가 본격화하며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려는 수요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내년부터는 이런 흐름이 더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중국도 LNG운반선을 건조하고 있긴 하다. 다만 기술력 격차는 여전히 크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된 것이 2018년 중국 후둥중화조선의 엔진 결함 사건이다.
후둥중화조선은 LNG선 그랠드스톤호를 건조했는데 이 배가 호주 앞바다에서 엔진 고장으로 멈춰섰다. 후둥중화조선은 선체 결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글래드스톤호는 폐선됐다. 이밖에 지연 인도 문제도 있었다.
한두푼도 아닌 수백~수천억 원대의 배를 구입하는 선사로서는 저렴하지만 믿기 어려운 배를 주문하느니 돈을 좀 더 지불하더라도 믿을 수 있는 한국 조선사에 건조를 맡기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한국이 처음부터 LNG선의 선두주자는 아니었다. 원래 한국도 일본을 따라잡는 후발주자였던 만큼 LNG선에서도 일본이 앞서 있었다.
LNG는 상온에서 기체 형태다. 부피를 줄이기 위해 액화해 운반을 하는데 그러려면 영하 162도씨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LNG를 담는 화물창이 중요하다.
일본업체가 전통적으로 채택했던 화물창은 갑판 위에 둥근 화물탱크를 설치한 모스 방식이다. 반면 한국 조선업체들은 선체와 화물창을 일체화한 멤브레인 방식을 도입했다.
멤브레인 방식은 모스 방식보다 적재 공간이 40% 정도 더 넓고 안정성이 높다.
결국 선사들도 경제성이 더 좋은 한국 LNG운반선을 선호하게 됐다.
재액화시스템도 한국 LNG운반선의 기술 경쟁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경쟁력이다.
LNG를 화물창에 담아 운반할 때 일정부분 증발가스가 발생한다. 선사들로서는 LNG가 증발하는 만큼 손실을 입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루에 0.1%가 날아가도 금액으로 환산하면 6천만 원 정도다.
재액화시스템은 증발가스를 다시 액화해 손실률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이다. 배를 주문하는 선사들은 배 값이 비싸더라도 LNG 손실률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액화시스템이 도입된 한국 조선사 LNG운반선을 구입할 유인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LNG운반선에서 뿐 아니라 LNG를 연료로 쓰는 LNG추진선에서도 한국 조선사가 중국이나 일본의 조선사보다 기술력이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방심하기에는 우려스러운 부분도 많다.
비록 중국 조선사가 기술적 열세에 있다하더라도 추격의 속도가 가파르다.
앞서 말한 중국의 후둥중화조선은 세계 최대 조선그룹 중국선박그룹의 일원이다. 원래 현대중공업그룹이 가장 큰 조선업그룹이었지만 2019년 중국선박공업그룹과 중국선박중공그룹이 통합돼 출범한 중국선박그룹이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규모의 경제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후둥중화조선은 최근 일본 선사로부터 LNG운반선 6척을 수주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건조 이력이 쌓이면 시장에서 수요도 늘어나게 된다. 한국 조선사의 LNG운반선보다 사양은 떨어지겠지만 가격 메리트로 이를 일정 부분 극복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LNG운반선 등이 정말 고부가가치 선박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고부가가치란 것은 팔아서 남기는 게 많다는 의미다. 물건 값이 비싸다고 고부가가치가 되는 게 아니라 저렴한 걸 팔아도 들어가는 비용이 적어 남는 게 많아야 고부가가치다.
앞서 얘기한 멤브레인 방식 화물창은 사실 한국 기술이 아다. 다시 말해 이 기술을 이용하려면 유럽 엔지니어링업체에게 높은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부르는 것들이 따져보면 그리 많은 부가가치가 나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조선사들도 이런 부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 국산화 시도를 하고 있고 조선3사 모두 독자적으로 화물창을 개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상용화에는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LNG선박 이후의 기술이다. LNG 역시 완벽한 친환경 연료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 선박건조시장에서는 수소와 같은 완전 친환경 연료가 대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의 기술 우위에 안도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