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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재용 부회장은 왜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지 않았을까?
최근 국내에서 유력인사들이 잇따라 타계했다.
7일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이 별세한 데 이어 8일엔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이, 10일엔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각각 유명을 달리했다.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이들의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길을 조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부회장은 10일 방 상임고문의 빈소(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를 찾은 데 이어 11일에는 강 전 총리의 빈소(서울아산병원)를 찾아 각각 조문했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유독 구 명예회장의 빈소(서울아산병원)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 이재용과 정용진 빈소에 보이지 않아
12일 재계에 따르면 구 명예회장의 빈소에는 7일부터 10일까지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비롯해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조문을 다녀갔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과 범삼성가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이 부회장의 조문 불참을 두고 삼성그룹과 LG그룹 간의 수십년된 ‘해묵은 앙금’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재계 일각에서 나온다.
LS그룹은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범LG가’ 그룹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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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
삼성그룹과 LG그룹은 국내 전자업계 라이벌이기도 하지만 사돈기업이기도 하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셋째딸인 이숙희씨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부부사이다. 두 사람은 미국 유학 시절 만나 1956년 결혼했다.
이번에 별세한 구태회 명예회장은 구인회 창업주의 셋째 동생이다.
이병철 창업주와 구인회 창업주는 각각 고향이 경남 의령과 진주로 가까운데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나이는 구인회 창업주(1907년생)가 이병철 창업주(1910년생)보다 세 살이 많다.
경남 의령군 남강변에 가면 ‘솥바위’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강물 위에 솟아 있는데 구인회 창업주는 이곳에서 7km 떨어진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에서 출생했다.
이병철 창업주는 솥바위에서 8km 떨어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진주시 지수초등학교 동문이기도 하다.
◆ 삼성, 전자산업 진출하며 LG와 ‘앙금’
돈독했던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럭키금성(현 LG전자)이 선점하고 있던 전자업계에 삼성이 뛰어들면서부터인 것으로 관측된다.
구인회 창업주는 1959년 국내 최초로 소형라디오를 생산하며 가전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이후 전기냉장고•전기세탁기•TV수상기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초창기 국내 전자산업을 이끌었다.
이병철 창업주는 1969년 사돈기업의 알짜배기사업인 전자산업 진출을 선언했다. 이때부터 삼성그룹과 LG그룹의 앙금이 쌓이기 시작한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바라본다.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내가 (구인회 창업주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아버지(이병철)가 전자산업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중략) 구 회장은 벌컥 화를 내면서 ‘남으니까 하려고 하지’라고 느닷없이 쏘아붙였다”라고 쓰면서 이때부터 둘 사이가 소원해 졌다고 전했다.
구인회 창업주 측은 당시 59개 전자업체와 함께 삼성의 전자업 진출을 허용한 정부에 진정서를 내면서까지 반대했지만 삼성전자 설립을 막지 못했다.
구인회 창업주는 삼성의 전자사업 진출에 대해 장남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에게 수차례 섭섭함을 토로하는 등 불쾌감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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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학 아워홈 회장. |
김완희 전 전자공업진흥회 회장은 저서 ‘두 개의 해를 품에 안고’에서 양사의 신경전을 중재하기 위한 자리에서 강진구 전 삼성전자 사장과 허준구 전 금성전자(현 LG전자) 사장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웠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결혼으로 사돈기업이 된 삼성과 LG가 전자산업 진출을 두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사이가 틀어지게 된 셈이다.
이병철 회장이 평소 아꼈던 사위 구자학 회장은 호텔신라 사장을 맡으며 삼성가에서 10여년간 몸담고 있었는데 삼성이 전자사업에 뛰어든 이후 다시 LG로 돌아갔다.
◆ 삼성과 LG, "특별한 이유는 없다“
두 그룹의 껄끄러운 관계는 이맹희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때도 확인됐다.
이 명예회장이 8월 17일 별세했을 때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조문했지만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비롯한 LG가 사람들은 대부분 참석하지 않았다.
범LG가에서 참석한 사람은 허창수 GS그룹 회장 정도뿐이었다.
LG그룹 관계자는 “조문 등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알아서 움직이는 만큼 그룹에서 공식적으로 어떤 결정이 내려지거나 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도 이 부회장의 조문 불참과 관련해 “조문 등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이고 특별한 이유는 없다”며 “다른 일정이 있어 빈소를 찾지 못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