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나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험할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중국 기업은 세계무대에서 다방면에 걸쳐 우리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이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이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기업이라도 이들을 이끄는 핵심 인물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리기업의 경쟁상대인 중국 기업을 이끄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영전략과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탐구해 본다. <편집자주>
노녕의 중국기업인탐구-메이디그룹 허샹젠
[1] '중국판 LG전자' 개척
[2] 국유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3] 중국시장보다 해외시장 선택
[4] 전문경영인 체제로 과감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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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은 전쟁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다. 기초 공업시설도 거의 갖춰지지 않았고 평균 소득 수준도 매우 낮았다.
곧 선풍기와 재봉틀 등 1세대 가전제품의 보급이 확대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시장이나 소비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당국의 명령대로 생산 계획, 공급 계획, 판매가격 등을 설정했다.
1990년대가 가까워지며 중국의 소득 수준이 조금씩 개선되고 소비력도 커지기 시작했다. 세탁기, 냉장고, TV 등 2세대 가전제품 보급도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중국정부가 사업에 관련한 결정 권한과 수익을 점차 지방정부와 기업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하면서 기업들도 본격적으로 경영을 시작했고 여러 가전제품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중국 최대 가전제품기업으로 성장한 메이디그룹 창업주인 허샹젠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빠른 변화를 추진했다. 특히 1990년대부터 기업 경영시스템을 과감하게 선진화하며 기술 연구개발에도 힘을 쏟아 경쟁력을 키웠다.
메이디그룹은 이를 통해 민간기업으로 전환한 중국 최초 국유기업이 됐으며 컴프레서와 변압기, 마그네트론, 컨버터 등 핵심 가전 부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생산하는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허샹젠은 목표를 공격적으로 설정하는 기업인으로 유명하지만 이를 위한 성장 전략을 명확하게 세우고 단계별로 차근차근 진행했다. 메이디그룹이 민간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 역시 순차적으로 시기에 맞춰 이뤄졌다.
◆ 중국 최초 향진기업 출신 상장사
메이디그룹은 중국 최초의 향진기업 출신 상장사다.
향진기업은 마을 주민들 혹은 농민들이 모여 설립하고 운영하는 기업이다. 대도시 기업과 비교해 정부 통제가 적었으며 농가 소득을 성장시키고 농촌과 도시 사이의 경제수준 격차를 좁히는 데 일조했다.
다만 향진기업은 대부분 인민공사(중국 농촌 행정조직의 기초단위)에 뿌리를 둔 집단소유 국유기업으로 소유권이나 지배구조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메이디그룹 역시 점차 사업을 확장하며 덩치가 커지다 보니 향진기업 특성상 책임자가 불투명하고 수익 분배 시스템도 체계화되어있지 않다는 단점이 드러났다.
중국 지방정부는 덩샤오핑 국무원 부총리의 지휘 아래 향진기업 현대화를 위한 재산권 제도개혁을 실시했다.
재산권 제도개혁은 집단소유제였던 향진기업 경영시스템에 주주제도를 도입해 재산권, 경영 주체, 책임 주체를 명확히 나누고 정부와 기업의 관할 영역을 분명하게 하는 제도다.
메이디그룹은 순더구 5대 향진기업 가운데 가장 작은 기업이었기 때문에 당국의 제도개혁 최우선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허샹젠은 다른 기업들과 달리 가장 먼저 정부에 향진기업 재산권 제도개혁 시범기업을 신청했다.
덕분에 메이디그룹은 1992년 광둥성정부가 지정한 첫 번째 개혁 시범기업으로 선정돼 정식 주식회사가 됐다. 집단소유제 향진기업에서 공사합영(지방정부와 회사가 공동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업) 민간기업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듬해인 1993년 메이디그룹은 향진기업 가운데 최초의 상장사가 됐고 상장으로 12억 위안(2299억 원)의 자금도 조달했다.
허샹젠은 이런 성과를 통해 중국 재계에서 향진기업 개혁과 상장의 선구자로 상징적 입지를 확보하게 됐다.
◆ 민간기업으로 전환한 국유기업
메이디그룹은 상장 뒤 오히려 정체기를 맞이했다. 메이디그룹이 생산하는 에어컨의 판매량 순위는 1~2위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1996년에는 순위가 7위로 밀리고 연매출도 감소세를 보였다.
다른 가전제품업체들이 시장에 난립하고 사업 확대에 성과를 내면서 메이디그룹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진 데 따른 결과다.
허샹젠은 이런 변화에 위기감을 느끼고 1997년부터 일본 파나소닉의 사업부제를 벤치마킹해 내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사업부제는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이 1933년부터 도입한 선진 경영제도로 개발과 생산, 영업을 사업부별로 나눠 각자 책임지도록 한 시스템이다.
허샹젠은 메이디그룹 안에 에어컨, TV, 주방가전 등 핵심 제품별로 5개 독립 사업부를 만들었다. 각 사업부 사장에 자체적으로 운영을 맡기고 허샹젠은 본사에서 재무, 인사, 전략 등 주요 경영상 의사결정만 맡았다.
기업 내부 인력 관리체계를 실적 중심으로 개편하는 경영 선진화 작업도 이뤄졌다. 각 사업부에서 목표치를 달성하면 임직원에 상여금을 지급했고 목표에 미달한 사업부의 관리인력은 최악의 경우 모두 사직해야 했다.
이런 구조조정을 실시한 뒤 운영 효율이 높아지고 직원들의 책임 경영의식도 강화되면서 매출 증가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8년 메이디그룹의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한 50억 위안, 1999년에는 80억 위안까지 급증했다.
허샹젠은 사업부제를 통해 중국에 흔하지 않던 전문경영인 시대를 여는 발판도 닦았다.
각 사업부를 담당하고 있던 사장들이 운영 권한을 갖기 시작하면서 전문경영인으로서 재능을 보이는 인재들을 발굴한 덕분이다.
현재 메이디그룹 회장직을 넘겨받은 팡훙보 회장도 평사원에서 시작해 사업부 사장을 걸쳐 지금의 자리로 오른 대표적 인물이다.
회장 한 명이 독단적으로 회사를 지휘하는 것이 보편화된 중국 사회에서 허샹젠의 행보는 이례적 사례로 남아 있다.
하지만 메이디그룹은 이 때까지도 반쪽짜리 민간기업에 불과했기 때문에 대주주인 지방정부가 사사건건 허샹젠의 경영에 간섭했다.
허샹젠은 이런 경영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영자 매수(MBO)를 단행했다.
메이디그룹은 2001년 4월 경영진과 노조가 설립한 투자회사를 통해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허샹젠은 이를 통해 메이디그룹 최대주주가 됐고 그룹 경영진과 임직원이 회사의 진정한 주인이 됐다.
결국 메이디그룹은 국유기업 가운데 최초로 완전 민간기업으로 전환한 기업으로 자리잡았고 중국 국유기업 개혁 역사의 상징으로 남겨졌다. 노녕 기자